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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13.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26)

나는 먹보 / 마음에 드는 방문객


5월 6일

# 나는 먹보


아버지가 또 기저귀를 찢어서 앤디가 기저귀를 갈면서 아버지를 야단쳤다. 

나: "기저귀 찢었다고 앤디가 야단치던가요?"
시아버지: "앤디 말이 맞아, 일이 좀 많아?"

67세 먹은 남을 돕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아니타 아줌마가 점심때와서 감자떡을 만들어 시아버지를 두 개 먹였다. 이 나라식으로 만드는 감자떡은 감자와 양파를 강판에 갈고 밀가루 파슬리 계란 소금을 넣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어 한국의 빈대떡처럼 구워, 익힌 사과를 얹어서 먹는 독일의 전통음식이다. 아니타는 오후 내내 우리 집에서 시아버지 시중도 들면서 저녁나절에 또 두 개의 감자떡을 먹였다. 그리고 내 몫으로 두쪽을 남겨놨다. 내가 집에 오자마자 시아버지는 배가 고프다고 타령을 한다. 아니타는 이미 집에 가고 없었다. 

시아버지: "나 배고파!"
나: "{시치미를 뚝 떼고} 오늘 저녁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시아버지: "아니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어, 아니타가 만든 감자떡이 있으면 그게 먹고 싶은데..."
나: "그 감자떡은 내 몫으로 아니타가 남겨 놓은 거예요. 시장하면 빵을 드릴게요. 그런데 나 먼저 아니타와 전화 좀 하고요"

전화하고 나서, 

시아버지: "아니타가 나더러, 먹보라고 하지 않아?"
나: "왜요?"
시아버지: " 나 솔직하게 고백할게, 오늘 저녁에도 감자떡을 두 개 먹었거든"
나: "오늘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배고프다고 저한테 그랬잖아요?"
시아버지: "그건 거짓말이야! 하느님은 위급할 때 하는 거짓말은 용서하실 거야"

그러면서 얼굴이 빨개져서 감자떡 먹고 싶다고 거짓말은 할지언정 아직 양심은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존심 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사소한 먹는 것 때문에 거짓말을 다하니, 옛날 같으면 굶으면 굶었지 그런 거짓말은 안 했을 텐데, 병으로 인해 사람이 이리 치사해지니 병의 힘이 막강하긴 한가보다. 



# 마음에 드는 방문객


방문객이 시아버지를 찾아와서 하는 말 중에 시아버지를 돌보는 입장에 있는 우리의 마음에 드는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

우선 마음에 드는 것은 환자를 격려해주고, 환자가 처한 상황이 힘들 거라는 것에 대한 이해심을 보여 주면서도 환자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게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환자는 어차피 자기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하니까, 환자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을 언급한다거나, 예를 들어서 우리 시아버지 경우엔 식사를 잘한다는 것이나 말을 잘하는 것, 예를 들어 한스 할아버지는 손발은 움직여도 말할 줄 모르고 사물 판단을 못 하는 점을 언급해 말할 줄 아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등 연기를 하는 것이다. 집에서 돌봄을 받아서 다행이라는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들을 언급해서 환자의 초점을 긍정적인 것에 맞추게 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입장도 생각해주는 사려 깊은 사람들이 고맙다. 우리에게 환자와 함께 있을 테니 나갔다 오라고 하거나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하는 경우도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돌보는 사람이 없인 환자가 여지없이 양로원으로 가야 하니까 환자를 돌보는 사람을 생각해주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환자에게 얼마나 힘들겠냐며 혀를 끌끌 차면서 시종일관 환자 앞에서 환자가 불쌍하다고 한다. 그러면 환자는 자신에 대한 연민의 정이 더 생겨 우울증이 더 심해질 것이다. 다른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좋은 점만 봐도 힘든 처지에 당신이 얼마나 힘들겠냐며 환자가 처한 상황을 일깨워 줘서 도움이 될 게 없으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네들이 자유롭게 세계 여행한 얘기만 늘어놓아 꼼짝 못 하는 환자가 더 불행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은 환자의 사기를 돋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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