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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20.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33)

너희들 뽀뽀를 벌었어 / 수다스러운 아스트리트

6월 2일

# 너희들 뽀뽀를 벌었어


나는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아버지 방으로 간다. 똑바로 누워 있는지 목이 마른 지 쿠션이 제대로 놓여 있는지 살펴보고, 나갔다 집에 들어와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성껏 관심을 갖고 변함없이 대하자 처음에는 내 아들 내 아들 하더니 이젠 환자로써도 나를 좋아한다. 

시아버지: "너는 참 착한 여자아이야!"

앤디가 두 시간 동안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를 침대에 눕히자 아버지가 아들 볼에 '쪽'하고 뽀뽀를 한다.  

시아버지: "앤디가 뽀뽀를 벌었어"
나: "나는요?"
시아버지: "너도 마찬가지야 이리 와! 뽀뽀해줄게"

시아버지는 내게도 뽀뽀를 했고 앤디와 나는 즐겁게 소리 내 웃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자격지심이 발동하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시아버지: "나를 비웃는 거야?"
나: "아뇨, 당신이 언제나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서 웃는 거예요"

시아버지가 예민하기가 날달걀 같아서 조심스럽다. 요즈음에는 집에서 마음 놓고 웃지도 못한다.




6월 3일

#수다스러운 아스트리트


나: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침마다 당신 얼굴을 보니 기뻐요. 오늘 제가 브리깃 떼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가야 하는데 아스트맅이 오기로 했어요"
시아버지: "그 여자 오지 말라고 해"
나: "왜요?"
시아버지: "그 여자 너무 말이 많아"

옛날엔 시아버지가 아스트맅이랑 원만하게 지냈는데 병든 이후론 그녀를 싫어한다. 아스트맅은 세상에 법이 없어도 살 수 있을 만큼 착하고 순수한 여자인데 누구와 같이 있든 언제나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폭포처럼 컴마도 마침표도 없이 이야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단점을 가졌다. 건강했을 땐 그녀와 대화가 됐는데 병이 나서 머리가 나빠진 이후로는 그녀의 수다를 이해하지 못해 그녀와 함께 있기를 싫어한다.

그래도 혼자 사는 그녀가 와줘서 우리는 고맙다. 누군가 와주는 것은 우리에게 잠시만이라도 우리를 들들 볶는 아버지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나는 브리깃 떼 집에 가서 아스트맅과 함께 집에 두고 온 시아버지를 까맣게 잊고 녹차를 마시고 생크림이 중간에 든 롤케이크를 먹으며 긴장감이 풀려 숨을 깊이 들이쉴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이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본인도 모르게 짧게 숨을 쉬는 것 같다. 그러면 심장과 뇌는 물론이고 몸에 산소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러 가끔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숨을 내쉬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집으로 오자 아스트맅이 집으로 갈 채비를 하면서 시아버지에게 물었다. 

아스트맅: "나 다음에 다시 와도 돼요?"
시아버지: "몰라!"
아스트맅: "나 또 와도 돼요?"
시아버지: "너 우리 집에서 잘 먹었지"

시아버지는 뭔가 맘에 안 들면 그대로 표시한다. 다시 오라 소리가 하기 싫어서 모르겠다고 하거나 네가 밥 먹으려고 우리 집에 오려는 거냐며 맘씨 좋은 아스트맅을 그렇게 대하는 게 민망했다.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내색해야 직성이 풀린다. 시아버지 속은 납작한 접시에 담긴 물과 같다. 깊이도 없고 넓지도 못하고 누구나 다 들여다보듯 알 수 있다. 너무 투명해서 시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두 훤하게 다 보인다. 

나: "아스트맅이 오는 게 그렇게 싫어요?"
시아버지: "그 여자는 너무 수다를 떨어서 탈이야!"
나: "그렇지만 그 여자 무척 착하잖아요. 잘 아시면서, 당신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내 가지고 왔는데, 아니면 다음에 아스트맅을 오지 말라고 하고 혼자 계실래요?"
시아버지: "아냐 아냐 그 얘기가 아냐"

시아버지가 걷지 않은 게 벌써 다섯 달 반이다. 건강했을 때도 다리가 상체보다는 가늘었지만 이젠 아예 걷지 않아서 살도 없고 근육도 없어져서 다리가 무척 가늘어졌다. 

나: "아버지, 당신 다리가 아주 가늘어요, Miss Germany 다리 같아요"
시아버지 : "너 내 다리가 부럽구나!"
나: "그럼요, 부럽고 말고요. 내 다리는 못 생겼어요. 그래서 나는 미니스커트 한번 못 입어 봤어요"

저녁에

앤디: "오늘 누가 왔다 갔어요?"
시아버지: "페트라 , 아스트맅"
나: "엘리는 안 치세요?"
시아버지: "엘리는 식구에 들어가서 안 쳐도 돼"

엘리 할머니가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일을 도와주니 식구로 쳐도 된다는 영리한 시아버지, 말씀은 여전히 아나운서가 뉴스를 진행하듯이 잘하면서 우리 이름을 자꾸 불러서 우리를 짜증 나게 하는 건 여전하다. 

나: "우리를 또 힘들게 하는군요. 자꾸 그러면 우리가 정신병에 걸려 정신병원에 가야 될지도 몰라요. 그러기를 원하세요?"
시아버지: "내가 미쳤어! 내가 바보야! 내 지붕이 고장 났어!"

하면서 집게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르친다. 지붕이 집에 제일 윗부분에 있듯이 몸에 머리가 제일 윗부분에 있어서 머리를 지붕이라고 한다. 머리에 그러니까 뇌세포가 망가져 머리가 고장 났다는 의미이다.  

나: "보통 미친 사람은 자기가 미쳤다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 당신은 미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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