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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23.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39)

이젠 살만해요 / 내가 내 그림자를 뛰어넘다

6월 22일

# 이젠 살만해요

  

나: "아버지 당신 언제부터 침대에 누워있는지 알아요?"
시아버지: "글쎄 두 달 됐나?"
나: "아뇨, 육 개월이 지났어요"
시아버지: "그래? 시간이 빨리 지나갔구나! 어떤 때는 무척 힘들었어"
나: "그랬을 거예요. 그런다고 해서 내가 당신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렇게 말한다면 옳지 않겠죠. 갑자기 걷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다는 것을 건강한 사람들은 제대로 상상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당신은 제일 힘든 고비를 넘긴 것 같아요. 이젠 인내심도 생겼고 옛날보다 조용해졌으니까요. 이젠 우리도 당신과 함께 살만해요"
시아버지: "고마워!"



6월 23일

# 내가 내 그림자를 뛰어넘다

  

남편 앤디가 오후 근무를 할 때는 간호원이 오후에 또 한 번 오게 해 기저귀를 갈게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나도 시아버지 기저귀를 갈아야 할 것 같아 결심하고 냠편에게 아버지가 변을 봤을 때 나를 불러 내가 보는 앞에서 갈라고 했다. 준비운동도 없이 찬물에 뛰어 들어가지 않으려고 말이다. 기저귀를 가는 것을 보고 특히 냄새도 맡고 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나는 아이를 낳아 본적도, 키워 본 적도 없으니 아이 기저귀를 갈아본 적도 없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아 본 적도 없는 우리는 어른 기저귀를 먼저 가는 일을 해야 하는 우리 입장이 왠지 아이러니하게 여겨졌다. 남편 앤디가 자기 아버지 변을 본 기저귀를 가는 것을 나는 지켜보면서 마음의 준비 덕인지 의외로 쉽게 여겨졌다. 이 나라말로 나는 내 그림자를 뛰어넘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뭔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냈을 때 자기의 그림자를 뛰어넘었다고 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그만큼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에 그런 말을 쓴다. 남편 앤디 역시 자기의 그림자를 뛰어넘었다. 기저귀 갈 때마다 구역질을 하며 창문을 열고 수선을 떨면서도 용감하게 군말하지 않고 그것이 숙명인 듯 그 일을 잘도 해냈다. 이젠 내 차례도 돌아와 그의 짐을 덜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서로 번갈아 해 한 사람이 질리도록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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