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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23.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40)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버지가 그립다 / 당신은 명예직으로 일하잖아

6월 25일

#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버지가 그립다

  

내가 처음으로 시아버지 기저귀를 갈려고 하자

시아버지: "앤디 없어?"
나: "앤디는 직장에 가고 없어요. 내가 기저귀 가는 일을 못 할 것 같아요?"
시아버지: "아니, 그 얘기가 아냐 , 너는 뭐든지 잘하니까!"
나: "그건 지나친 칭찬이고요 대개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마음만 먹으면 못 해낼일이 별로 없죠. 나는 당신을 돕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해 낼 자신이 있어요. 아! 대변을 보셨군요"
시아버지: "간호원이 올 때 대변을 봤으면 좋았을걸!"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니 습관이 되면 못 할 일이 없을 성싶다. 구역질도 하지 않고 처음 기저귀를 갈고 나니 큰 고비를 넘긴 것 같다. 시아버지의 아랫도리를 보는 것도 처음에 뭔가 극복할 때 늘 그렇듯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지만 그다음부턴 별다른 느낌도 없이 의사가 환자를 대하듯 아님 간호원이 환자를 돌보듯 쉽고 당연하게 여겨진다. 처음에 찬물에 들어갈 때 차게 느껴지던 물이 일단 물속에 들어가고 나면 더는 차게 느껴지지 않듯, 불유쾌한 어떤 일도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것에 파묻혀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힘들거나 별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물론 부모의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일을 좋아서 선택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기며 누구든 그 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선의로 식구를 위해서는 하기 싫은 결정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그 이후론 기저귀를 가는 일이 힘들지 않아 부모들이 자기 아이 기저귀를 갈듯 그렇게 부담 없이 한다. 다행히 전혀 구역질도 하지 않으면서 그 일을 하게 되어 그때부터 기저귀 가는 일은 주로 내가 맡아서 하게 됐다. 아이 기저귀는 주로 엄마가 갈듯이 말이다. 

우리는 정상적인 아버지가 그립다. 우리가 하는 일을 인정해주고 전처럼 같이 여행도 다니며 깊이 있는 대화도 나누고 상대해주는 그런 아버지가 그립다, 지금의 아버지는 침대란 사슬에 매여 꼼짝도 못 할뿐더러 얘깃거리가 제한돼 있다.



# 당신은 명예직으로 일하잖아


한 사이람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고 자녀를 낳고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느새 우리들의 부모들이 늙어있어 자녀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건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다.

시내에서 스페인 식당을 하는 이태리 여자 조바나아버지도 얼마전에 중풍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얼마전에 돌아가셨단다.   조바나가 우리집에 오더니 시아버지가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침대를 바꿔놓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제안이어서 우리는 즉시 침대를 돌려 밖을 볼 수 있게 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발코니를 볼 수가 있게 되었고 발코니에서 빨래를 너는 엘리 할머니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엘리 할머니: "침대가 이렇게 놓여 있는 게 당신한테 더 나은 것 같아요"
시아버지: "그래요 이젠 당신이 발코니에서 빨래 너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엘리 할머니: "그럼 내가 몇 시간 일했는지 알 수 있겠네요?"
시아버지: "그러지 않아도 내가 전부 잘 적어 놨어요"
엘리 할머니: "그럼 돈 계산은 언제 할 건데?"
시아버지: "당신은 명예직으로 일하잖아요?"
엘리 할머니: "당신은 역시 참 영리해"

시아버지의 이런 핑계는 천재적이다. 명예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돈을 받지 않는 법이라는 것을 그렇게 즉흥적으로 대답할 줄을 우리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시아버지가 갑자기 병든 사람이 아니고 정상이 아닌가 착각이 되거나 혼돈되어 우리들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심각해지더니, 

시아버지: "{엘리 할머니에게} 나는 돈 없는 가난한 사람이야, 내가 돈 계산을 안 한다고 나를 야단치지 않을 거지?"

가난한 사람이라면서 동정을 호소한다. 자기가 가난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고 엘리를 이용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걱정 할 필요가 없는데 순진한 시아버지 엘리 할머니가 정말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나 보다. 엘리 할머니가 가고 나서, 

시아버지: "나 말조심해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엘리가 화를 낼 거야"
나: "괜찮아요. 명예직이란 말 아주 적절하게 잘했어요. 누군가 명예직으로 일하면 돈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그 생각을 미처 못했는데,, 우리 아버지 똑똑하기는, 우린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상으로 뽀뽀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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