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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20.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37)

나 도망 안 가요 / 되새김질하는 동물

6월 16일

# 나 도망 안 가요

 

또다시 며칠 사이에 자주 쿠션과 베개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나: "쿠션과 베개를 던지는 일을 다시 시작했어요?"
시아버지: "저절로 떨어지던데 내가 꼭 붙잡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베개가 저절로 떨어지는 것으로 상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한 번은  
시아버지: "내가 떨어 뜨렸어"
나: "그래요, 솔직해서 좋아요 그렇지만 계속해서 떨어뜨리진 말아요"

오후에  

시아버지: "기옥 기옥 앤디 앤디"
나: "왜 그러세요?"
시아버지: "나 똥 눌 거야"
나: "그럼 볼일이 끝나면 불러요"
시아버지: "그러면 네가 도망갈걸!"
나: "언제 우리가 당신 도움이 필요할 때 못 본체 하던가요?"

시아버지 { 침묵 }



6월 18일

# 되새김질하는 동물

  

점심으로 갈은고기를 넣고 토마토소스를 넣어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였는데 허겁지겁 여기저기 온통 빨간 소스를 묻히고 먹고 나더니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는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선수 쳐 먼저 한다. 

시아버지: "나는 먹을 것만 보면 계속 먹으려고 해! 완전히 병적이야! 나는 뭐든지 먹어치우는 동물 같아"

뭐든지 먹어치우는 동물? 글쎄 그런 동물이 뭘까? 남은 음식은 물론이고 뭐든지 주는 대로 먹는 돼지? 아님 정글을 청소하듯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는 하이에나 같은 동물?  

앞에 거울이 있어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탄하듯이, 놀랍게 남이 보고 할 만한 소리를 한다. 그리고 식사할 때 음식 씹는데만 정신을 집중해 앤디는 자기 아버지가 밥 먹을 때는 친구도 몰라보고 적도 몰라 볼 거라고 한다. 그러니 아예 말을 부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나와 두 번째로 기저귀를 안 찢겠다고 약속한 이후로 기적처럼 단 한 번도 안 찢었다.

그런데 내가 보니 기저귀를 만진다.  

나: "당신이 기저귀는 차고 있어도 기저귀는 당신에게 금기이니 만져서는 안 돼요"
시아버지: "네 말이 맞아, 내손이 기저귀에서 떨어져 있는 게 좋아"

저녁에  

앤디가 틀니를 꺼내 틀니통에 집어넣었다. 아버지는 살이 많이 빠졌어도 틀니가 맞아 다행이다. 시아버지랑 가깝게 지내던 , 무쩨, 씨는 병이든 이후 틀니가 맞지않고 헐렁거려 말을 하면 틀니가 덜그렁거리며 반쪽이 튀어나오곤 해 재밌는 희곡을 연상케 했다.. 암이 들어 곧 죽을 텐데 왜 이를 새로 해 돈을 들이냐면서 죽을 때까지 전혀 맞지 않는 틀니로 식사를 하는 지극히 실질적인 사람이었다. 틀니를 꺼내고 나면 아버지는 입에 남은 음식찌꺼기를 다시 씹곤 한다.  

나: "아직도 먹고 있는 거예요?"
시아버지: "응 심심해서 , 그리고 나는 되새김질하는 동물이야"
뭐든지 먹어치우는 동물 그리고 되새김질하는 동물이 어떤 동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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