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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23.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42)

나 무서워 / 시아버지의 무릎

7월 6일

# 나 무서워

  

오늘 하루 종일 내 이름이 아버지 방에서 들려온다. 

짜증 난 얼굴로 아버지 방으로 가자  

시아버지: "내가 자꾸 불러서 너 화났어? 나 침대 창살 틈에 끼어서 못 나오니 나 좀 꺼내 줘야겠어"

뭔가 꽉 막힌 곳에 끼어 있는 것으로 상상하나 보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얼굴 표정이 진심인 것을 보면 답답하고 불편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다. 병든 어른을 돌보면 추측도 해야 하고 분석도 할 줄 알아야 하기에 요즈음 나는 나 혼자 어쩔 수 없이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듯하다.  

나: "아 그러세요. 그렇게 답답하면 제가 도와 드려야지요. 창문도 열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게 하고요. 당신 몸을 다른 쪽으로 눕힐게요. 그리고 왼쪽 어깨 밑에 쿠션을 넣을 테니 쿠션을 바닥에 내던지지 말아요"

저녁에 또 우리 이름을 자주 부른다. 아직도 우리 이름은 잊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세상 사람 이름 다 잊어도 우리 이름은 잊지 않겠지. 우리가 없으면 아버지의 삶이 확 변할 테니까, 

나: "무슨 일이에요?"
시아버지: "나 무서워 내 곁에 있어줘!"

가끔 공포증 증세를 나타낸다. 시아버지의 심리상태는 병으로 말미암아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테니 갑자기 두려워하는 증세를 보이는 것도 당연하겠지 생각해본다. 나는 시아버지의 무서워하는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방에 있으면서 마실 것도 주고 손도 잡아 주고, 우리 아버지가 최고라는 말도 하고 내방으로 돌아와 잤다. 



7월 10일

# 시아버지의 무릎

 

나와 앤디가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변을 침대 창살과 이불에 묻혀 놓았다.  

앤디: "왜 이런 짓을 했어요? 우리 약을 올리려고 작정을 했군요?"
시아버지: "아니야 간호원들 약 올리려고 한 짓이야"
앤디: "당신 보통 때는 이치적이잖아요"
시아버지: "내가 이치적이라고? 언제부터?"
앤디: "아버지 오늘 매우 와일드하군요?"
시아버지: "응, 그런데 내 아이들, 너네들은 나한테 무척 관대하지?"
앤디: "그렇고 말고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엉덩이를 때려 줬을 거예요"
시아버지: "그런 벌을 받아 마땅하긴 해"
앤디: "베개랑 쿠션을 자꾸 바닥으로 떨어 뜨리고요"
나: "그럼 베개는 누가 줏어요?"
시아버지: "당연히 네가 줏어야지, 네가 나를 위해서 모든 일을 하잖아"
옆에서 지켜보던 엘리 할머니가 베개를 주워 올렸다. 
시아버지: "엘리 미안해요"

아버지는 잠옷 바지를 일분 간격도 안 두고 끊임없이 올렸다 내렸다 해서 오른쪽 무릎이 붓고 빨개지면서 염증이 생겼다. 아야 아야 하면서 끝없이 소리를 지른다. 나는 얼음 봉지를 무릎에 올려놓고 약을 바르고 수선을 피웠다. 

나: "왜 자꾸 잠옷 바지를 올렸다 내렸다 해요?"
시아버지: "응 흥분이 돼서"

마음이 진정이 안돼서 그렇게 끊임없이 같은 행동을 되풀이 하나보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한동안은 언제나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젠 잠옷 바지를 무릎까지만 올렸다 밑으로 내렸다 해서 무릎이 약간 당겨져 90 도정도의 각도를 이루고 있어 무릎이 제대로 펴지지 않아 걱정이다. 각도가 진 무릎에 냉장고에서 막 꺼내 차가운 젤이든 비닐봉지를 올려놨는데 그게 자꾸 떨어져 붕대로 살짝 싸매 떨어지지 않게 했다.  ,급할 때 독창력이 생긴다, 는 독일 사람들의 말은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응급상황이 발명을 하게 한다는 진리가 담긴 옛말이다. 한 시간 후에 베개가 또 바닥에 떨어져 있다.  

앤디: "이번에는 내가 베개를 안 주워드릴 거예요"
시아버지: "그럼 내일까지 그냥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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