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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27.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46)

풍선이 터지듯 / 모두 다 과분해

7월 21일


아침식사로 나는 작은 빵과 녹차와 반숙이 된 계란을 주고 시아버지가 사과 중에 제일 좋아하는 연두색 사과에 약간 노란빛이 나는 사과를 깎아 접시에 놓았다. 접시를 다 비우더니, 

시아버지: "나 너무 많이 먹었나 봐! 이상해 나는 아프고 나더니 죽을 정도로 먹어, 이러다간 풍선이 터지듯 배가 터져 죽을 거야!"
나: "그럼 우린 아버지가 없게요?"
시아버지: "내가 없으면 너네들한테 더 낫지"
나: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좋아하는데요"
시아버지: "그렇단 얘기지 뭐"


7월 22일


  

오늘도 시아버지는 혼자 끊임없이 뭔가 더듬거리며 얘기한다.

나는 남편에게 작은 소리로 

나: "아버지가 꼭 '우도'같아"

우도는 30살 먹은 남자인데 태어날 때부터 정박아였고 심신장애자로 휠체어에 타고 있으면서 남의 도움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지능이 세 살에서 다섯 살 정도 되는데 우리가 그 집을 방문하면 우도는 그 육중한 몸을 좌우로 흔들어 그가 탄 휠체어의 한쪽 바퀴가 공중에 뜰만큼 들썩들썩 흔들며 반가워하며 우리를 반기지만 같이 대화를 나눌 정도의 지능은 되지 않아 인사만 나누고 일상적인 얘기만 하고 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텔레비전에 음악프로를 즐겨 보거나 응접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혼자 한없이 중얼거리곤 한다.

내가 조심스럽게 작은 소리로 아버지를 우도 같다고 했는데 알아 들었나 보다. 옛날에는 귀가 어두워 귀가 어두운 사람이 늘 그러듯 시끄러울 정도로 큰소리로 말을 했고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곤 했는데 병이 나고부터는 다시 귀가 밝아졌다. 누가 내 얘기하나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인 것 같다. 그래서 신경이 특히 귀의 신경이 발달했나 보다.  

시아버지: "우도 얀슨 말이지? 네 말이 맞아! 나도 우도처럼 정신이 나갔으니까, 너네들이 말 안 해도 다 알아, 내가 멍청한 소리만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남의 얘기하듯 하는 아버지 때문에 사뭇 놀라워하며 말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다는 사춘기에 소녀들처럼 생각 없이 킥킥하며 웃었다. 아버지 앞에서 웃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정말 웃고 싶을 때 웃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시아버지: "웃을 일이 아니야, 울 일이지! 내가 너네들한테 짐이 되는 게 유감이야! 나한테는 모두 다 과분해"
나: "과분한 게 아니라 마땅하지요. 당신은 항상 좋은 아빠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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