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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03.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54)

왜 웃지 않아요? / 

12월 15일


# 왜 웃지 않아요?


시아버지: "너 양파를 많이 먹었구나?"
나: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알아맞추셨어요? 영리하기는"
시아버지: "나는 너네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바보가 아니야!"

우리는 기회를 찾아 조심스럽게 자주 아버지를 칭찬한다. 하는 일 없이 누워만 있고 타인의 도움이 없인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에도 혼자 못 가니 자 중심이 없어서 자신이 쓸데없고, 바보고, 우리한테 짐만 되는 그런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교육시킨다. 사람은 동물과 달라 육적인 필요만 충족돼줘야 행복한 게 아니고 감정적인 필요 역시 채워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아버지의 먹고 마시는 것 말고도 아버지의 행복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까지 책임진 것이다. 시아버지는 언제나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웃음이 뭔지 어떻게 웃는 건지도 잊어버린 듯하니 행복을 느끼게 하고 웃을 수 있게 하는 것은 크나큰 숙제요 간호를 책임진 나의 바람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경우야 말로 밑져야 본전이니까, 시아버지가 이제는 우리 이름을 자주 안 부르고 기저귀도 찢지 않아 살만하니 욕심을 부려 보는 것뿐이다.  

나: "왜 웃지 않아요?"
시아버지: "나 웃을 수 없어!"
나: "왜요?" 
시아버지: "나는 슬퍼!" 
나: "그럼 행복해할 만한 점이 없어요?"
시아버지: "아니! 없어" 
나: "행복해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어요?"
시아버지: "아니, 없다니까" 
나: "그러면 우리가 사라져야겠네요"
시아버지: "언제?"
나: "지금 당장요. 우리가 언제나 당신 곁에 있는데도 슬프기만 하다면 우리가 이 집에서 당신과 살아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시아버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나: "왜 말이 안 돼요? 제 말이 맞죠. 우리는 여행도 안 가고 집에만 있으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우리 집은 텅 비워 놓고 당신을 돌보느라 여기서 사는데 당신께선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처럼 얼굴을 길게 하고 찡그리고 슬프다고만 하시잖아요"

독일 사람들은 슬퍼하는 사람은 긴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사람이 웃으면 얼굴이 옆으로 퍼지니까 짧아지기 마련이니 웃는 얼굴에 비하면 슬퍼하면서 얼굴을 내려뜨리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시아버지의 상반신 전체가 보일 정도로 길고 큰 거울을 가지고 와 시아버지의 긴 얼굴이 더 길게 보이게 하며 말했다. 

나: "여기 거울 속에 당신의 얼굴을 직접 보세요.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이 얼굴을 이십사 시간 동안{과장법을 써서 잠자는 시간도 빼지 않고 말함} 보아야 하는 당신이 사랑하는 우리도 생각해  주셔야죠. 당신을 아들과 며느리인 제가 불쌍해서 잘 돌봐 드리고 있잖아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통증도 없고 당신 상태가 상대적인 의미에서는 괜찮은 편이죠. 입맛도 언제나 좋고 우리말도 이해하고 좋고 싫은 것도 표현하고 어머니는 {시어머니} 그런 것 모두 못 하신 것 잘 알잖아요. 독일에만도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양로원에서 외롭게 지내는지 아세요? 자녀들이 아주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자녀들을 둔 노인들은 복이 많은 축에 속한 대요. 그런데 당신은 집에서 이렇게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잘 살고 있잖아요? 내 말이 어디 틀렸어요?"
시아버지: "네 말이 맞아! 맞아!"

시아버지는 내 말이 맞다며 사뭇 놀랍다는 듯이 잘 듣더니 그때부턴 눈에 띄게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려 애쓴다. 그러는 아버지가 너무 귀엽고 그 모습이 표정 없는 사람이 사진 찍을 때처럼, 아이들이 사진 찍을 때 열심히 웃으라고 부추기는 부모들 말에 따라 억지로 웃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렇게 부자연스레 웃다가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는데 습관이 되어 언젠가 자연스레 활짝 웃는 기적이 있을 때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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