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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03.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55)

희귀한 딸국질 / 나는 한국 여자

# 희귀한 딸국질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시아버지가 슬퍼하고 우울증이 생겼고 자주 눈물을 보이더니 세 달쯤 지나선 딸꾹질을 일주일 동안 연거푸 했다. 보통 딸꾹질과는 달리 한번 시작하면 열몇 번씩 숨이 넘어갈 듯 연거푸 하는 이상한 딸꾹질이었다. 그것도 하루 종일 딸꾹질을 해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어 의사에게 가 보았지만 의사도 이유도 모르고 그러니 치료방법도 모른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그런 딸꾹질은 의사들도 잘 모르는 분야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옆에서 계속 지켜보면서 시아버지에게 심리적인데 문제가 있다고 단정했다. 그래서 내가 시아버지를 설득시켜야 한다고 마음먹고 당신이 아내를 돌보면서 최선을 다했는데 이제는 당신 스스로를 돌볼 차례라고 하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없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고생했으니 당신이 이렇게 슬퍼하는 것을 어머니가 알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문제는 당신 자신이라고 꼬집어줬다. 스스로가 외롭다면서 자기 연민의 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는 것은 믿음 없는 사람보다 못하다고 감히? 나무랐다. 시아버지는 내 말은 그야말로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단 한국 속담처럼 나를 무조건 신뢰하는 편이라 솔직히 당신을 위해서 하는 어떤 충고도 받아 드리는 편이다.

그렇게 집에만 있지 말고 기분전환도 하면서 바쁘게 지내라고 에드문트도 만나고 헬뭍도 만나며 밖에서 식사도 하라고 일러 드렸다. 우리는 없는 것 없이 다 있고 당신 돈 절대로 바라지 않으니 돌아가실 때 가져갈 것이냐고 말하고 여행도 하고 멋있는 옷도 사 입어 돈 없는 가난한 노인네처럼 하고 다니면서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주의 깊이 듣더니 내가 보기에 마음을 단단하게 먹는 것 같았고 거짓말같이 그 순간 숨이 넘어갈 듯한 희귀한 딸꾹질도 뚝 끊겼고 그 이후로는 당연하게도 가끔 우울해하는 것 빼고는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내가 전화를 하면 여보세요 소리만 들어도 시아버지가 얼마나 명랑한 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 시아버지 같으면 웬 시아버지한테 충고질이냐고 할 거고 내가 버릇없는 못 된 며느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 시아버지는 다행히 독일 사람이고 혼자 사는 노인네들은 당신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가족이 옆에서 코치를 해주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본인 자신을 위해 한 말들이었고 효과가 있어 다행이었다. 어쨌든 시아버지는 내게 고마워했고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말을 잘 들었다. 시아버지와 우리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항상 휴가도 함께 다녔고 시아버지는 우리만 의지하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나는 한국 여자


그 이후로 내 충고대로 돈을 쓰기 위해 입을 옷을 사고 싶다며 내게 같이 시내 가겠느냐고 물었다. 그동안 시아버지는 양복은 물론이고 하다 못해 신발까지 나랑 같이 가서 내가 좋다고 골라 주는 것만 샀다. 

하지만 내가 시아버지랑 밖에 나가면 사람들은 우리를 주의 깊게 보고 나를 동정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늙은이가 돈 주고 가난한 동양 여자를 사 와서 같이 사는가 보다 라는 눈빛을 보내면서 말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이 든 독일 남자와 필리핀이나 타일랜드에서 온 젊은 여자랑 사는 부부들이 가끔 눈에 띈다. 잡지를 보고 가난한 동양 여자를 돈 주고 비행기 삯 주고 사 온다는 말이 사실과 무근한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나는 한국 여잔데...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시아버지랑 다니면 여지없이 우리는 눈에 띄는 어울리지 않는 한 쌍으로 사람들 눈에 부각되어 그 눈길이 싫어 처음에는 시아버지랑 조금 떨어져 걷곤 했는데 자상하고 눈치 없는? 시아버지는 자꾸 내 옆으로 다가와서 언제부터인가는 사람들 눈길을 무시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나한테 동정의 눈길을 보내든 시아버지한테 노인네 젊은 여자랑 살아서 좋겠다고 생각하든 상관을 하지 않기로 하고 신경을 쓰지 않으니 편안하게 시아버지와 함께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되도록이면 내 남편이랑 셋이 같이 다녀 사람들이 우리 관계를 자연스럽게 알리고 싶어 하는데 내 남편은 자기가 관심이 있어하는 전자제품, 예를 들어 스테레오, C.D나 사진기, 자동차 등 만 보려고 하고 나랑 떨어져 다니기가 일쑤여서 나만 따라다니는 시아버지는 언제나 내 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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