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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27.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44)

자격지심

7월 15일


우리는 아우토반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도르트문트에 갔다가 저녁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시아버지 곁에는 두 명의 아줌마가 번갈아 가며 시중을 들었지만 우리가 오자 아버지는 무척 반가운 모양이다.  

시아버지: "너네들을 보니까 좋아서 눈물이 날 지경이야"

그리고 아들 이름은 잊어버렸는지 끝없이 '기옥, 기옥'하며 내 이름만 부른다. 

나: "오늘은 왜 자꾸 내 이름만 부르세요?"
시아버지: "네가 앤디보다 착하니까! 나 네가 보고 싶어서 혼났어!"
나: "딱 한 번만 부르고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려요"
시아버지: "나는 네가 나를 잊어버렸는 줄 알았지"
나: "당신 같은 환자를 누가 잊어버려요? 절대로 당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테니 그런 걱정은 마세요"

시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간호원 '가비'가 아파서 다른 간호원이 왔다. 까만 단발머리를 한 순수하고 착해 보이는 '페트라'가 가비보다는 성심껏 시아버지 몸 관리를 해주고 갔다.

'가비'는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건성이고 시간도 짧게 이십 분 정도 할애하고 장부에는 삼십 분으로 기입해 놓곤 한다. 다음에 기회를 봐서 얘기를 해 봐야겠다. 

가비도 아프고 옆에 사는 아줌마 게르티도 아프고 모두 아픈데 86살 먹은 엘리 할머니는 여전하다. 

시아버지: "모두 아픈데 엘리는 안 아파"
나: "당신 말이 맞아요. 엘리는 86 세이니 제일 나이가 많은데 건강하지요"
시아버지: "그래 네 말이 맞아, 엘리는 나이가 제일 많은데 제일 건강해!"
나: "시장하시죠? 내가 곧 음식을 만들게요"
시아버지: "무슨 음식을 만들건대?"
나: "밥이랑 두부반찬 , 그런 것도 먹죠?"
시아버지: "그럼 나는 뭐든지 다 먹어"
나: "식욕이 언제나 좋으니까요. 옛날에는 조금씩만 먹더니 웬일이에요?"
시아버지: "다행으로 여겨!"
나: "다행이고 말고요"
시아버지: "네가 음식을 항상 맛있게 만들어서 그래"
나: "아 우리 아빠 참 외교적이네요"
시아버지: "너 나 놀리는 거야?"

자격지심이 발동해서인지 또 발끈한다. 자기가 내 칭찬하는 것은 괜찮고 내가 당신 칭찬하는 것은 내가 놀리는 것으로 여긴다. 어쨌든 어떤 때는 열 길 물은 알아도 얕은 아버지 속은 모르겠다. 아버지 속은 접시에 담긴 물이라고 생각하고 단순하게 대하기에는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하다. 어쨌든 아버지 앞에서 계속 각별히 웃는 것과 칭찬하는 것을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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