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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27.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45)

너는 너무 착해서 나를 야단치지 않을 거야 /나는 쓸모없고 정신도 나갔어

7월 17일

# 너는 너무 착해서 나를 야단치지 않을 거야


오늘은 시아버지가 이상하게도 한 곳만 응시하며 하루 종일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만 하며 중얼중얼한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난난난, 넨넨넨'하다가 가끔 어떤 단어들은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아 불안정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이유를 몰라 어쩔 줄 몰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가 물었다.  

나: "누구랑 얘기하는 거예요?"
시아버지: "내 동생 마틸데랑, 그 나쁜 여자 같으니라고, 나를 가만히 있게 두지 않아!"

시아버지는 뭔가 동생과의 일을 상상하면서 현실감각을 잃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년 전에 죽어 없는 자신의 여동생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그녀와 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불을 바닥으로 떨어 뜨리는 것은 여전하다.  

나: "자꾸 이불을 바닥에 떨어 뜨리면 야단칠 거예요!"
시아버지: "너는 날 야단 안 칠 거야, 너는 그러기엔 너무 착하니까!"



7월 19일  

# 나는 쓸모없고 정신도 나갔어


나: "제가 독일에 온 지 딱 15년이 됐어요. 파티를 열까요?"
시아버지: "그러지"
나: "나한테 뭘 선물하실래요?"
시아버지: "네 남편이 좋은 선물 아냐? 그 애는 착한 남자니까"
나: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그리고 전 착한 시아버지를 뒀지요"
시아버지: "말도 안 돼! 네 시아버지는 쓸모가 없어, 그리고 정신도 나갔어"

저녁에 시아버지가 내손을 쓰다듬으며,  

시아버지: "너는 최고의 며느리야, 내일 나 병원에 갈게 , 너네들 휴가 가서 좀 쉬도록 하게"

말썽은 부려도 당신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당신이 병원에 가 있을 테니 휴가라도 갔다 오라고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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