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하는 일은 덜 힘들다 / 한스 할아버지와 비교
8월 1일
우리가 아버지를 집에서 모신 지 벌써 오 개월이 넘었다. 뭐든지 서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버지를 돕고 싶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아버지를 돌보니 그렇게 힘들지 않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원해서 하는 일이다. 우리가 아버지를 미워하고 억지로 이런 일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을까 생각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춥고 바람 부는 때 그 험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것도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이면 보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 힘들고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산을 타듯이, 우리는 남이 볼 때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제는 습관이 됐을 뿐 아니라 아버지를 예뻐하고 연민의 정을 가지고 대하니 그렇게 힘들지 않다.
아버지의 발음이 점점 나빠져 우리가 어떤 때는 못 알아들을 정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번갈아 가며 아버지에게 말을 시킨다.
나: "아버지 나이가 몇이죠?"
시아버지: "일흔일곱"
나: "거의 정확하게 맞추셨어요. 우리 숫자를 세어 볼까요. 하나"
시아버지: "하나"
나: "둘"
시아버지: "둘"
이런 식으로 삼십까지 세자,
시아버지: "아이 어려워 고만해"
정신 집중하는 게 어려운 모양이다. 남편 앤디는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어디 사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텔레비전을 볼 때도 끊임없이 아버지가 아는 쉬운 것들을 질문해 두뇌가 움직이고 발음을 계속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다.
앤디: "분데스 리가에서 뛴 유명한 한국 축구 선수가 누구죠?"
시아버지: "붐근 차 * 차범근을 여기서는 그렇게 부른다*"
앤디: "아주 정확하게 잘 맞추셨어요. 아유 우리 아버지 머리도 좋으시기는"
8월 3일
# 한스 할아버지와 비교
한스 할아버지가 그를 돌보는 레기네란 여자와 함께 가게로 나를 찾아왔다.
나: "내 이름이 뭐죠? >
한스 할아버지: "릴로? 아니, 아니 나 몰라!"
나: "내가 어디서 왔어요?"
한스: "먼 곳에서 왔지"
저녁에 나는 시아버지에게 한스 씨가 내게 찾아왔다는 얘기를 하며 내 이름도,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더라고 했다.
시아버지: "멍청한 사람 같으니라고, 그래도 내가 낫지"
이런 식으로 해서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자 중심이 생기게 되면 그보다 더 한 사람 흉도 볼 마음의 각오가 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