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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30.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49)

배가 고파 죽었어 / 사물을 보는 관점

8월 4일

# 배가 고파 죽었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늘 그러듯이 아버지 방으로 먼저 갔다. 

시아버지: "죽었어!"
나: "누가요?"
시아버지: "내가 죽었다고"
나: "당신 살아 있잖아요"
시아버지: "나 죽어 간단 얘기야! 나 기분이 아주 나쁘거든!"
나: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빠요?"
시아버지: "나 배가 고프거든!"

배가 고파서 죽겠다는 표현을 강조해서 '배가 고파 죽었다'라고 표현한다. 

부모와 자녀의 역할이 바뀐 지 오래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뭐를 해야 하고 뭐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고 아버지의 신체적, 감정적 상태를 타진하고 그 필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면에서 부모의 역할을 맡았다. 



8월 5일

# 사물을 보는 관점


시아버지는 잠깐씩 10분 정도 자는 것 빼고는 밤새도록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소음을 낸다. 진정제를 더 많이 줘도 소용이 없어 우리는 한숨도 못 자 몸 컨디션이 안 좋은 채로 출근을 해야 했다. 


8월 6일 


어제저녁에 시작한 이야기가 아직도 안 끝났나 보다. 오늘 낮에도 계속 가끔 오분에서 십 분 정도 끄떡이는 것 빼고는 그 긴 이야깃거리를 계속 이어간다. 건강할 때 이렇게 수다스럽지 않았는데 어쨌든 병의 힘이 놀랍다. 사람을 엄청나게 바꿔 놓았다.

그런다고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달리 방법이 없어서 내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발코니로 나가 막 시작된 저녁 하늘을 보며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이해할 수 있는 쪽으로 긍정적으로 논리를 세워야겠다. 잠을 못 잤다고 약이 올라봤자 스트레스받는 건 나니까. 

우리는 아이들을 키워 보지 않았지만 아이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애기 젖 줄랴 아프면 병간호하랴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병든 시아버지를 모시면서 하루 이틀 잠을 못 잔다고 뭘 그렇게 흥분하고 있나 스스로를 책망하니 화가 눈 녹은 듯 사라지고 피곤하긴 하지만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문젯거리가 있을 때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알았고 문제를 보는 각도에 따라 같은 문제가 크게 보이기도 하고 작게 보이기도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보다 더 큰 문젯거리를 안고 있는 사람과 비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면 내가 들어야 할 짐의 상자는 더 작아 보일 수 있으니까.

이번 일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뭔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게 있을 때 되도록이면 그것을 빨리 해결하든지 해결책이 없다고 여기면 그 힘든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문젯거리에는 퍼즐과도 같이 맞는 해결책이 있기 마련인데 시간을 내서 그 답을 찾아내야 한다. 답을 빨리 찾을수록 무거운 짐을 오래 지지 않고 수월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융통성이 필요하다. 융통성은 사람이 살아나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자동차에 윤활유와 같다. 우리 삶을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게 가꾸어 나가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돌처럼 딱딱한 옹고집쟁이보다는 푹신한 스펀지나 고무처럼 인간관계에 있어서 때에 따라 움직여 주고 맞춰 나가면 부딪혀 소리가 나고 깨지는 것과 같은 불협화음이 적어 질게다. 세상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다. 독불장군처럼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로만 세상이 가득 차 있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물 없는 사막처럼 메마를 것인가?

독일 속담에 '나도 살고 남도 살게 하자'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나만 위주로 살아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시아버지를 돌보면서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듯이 문젯거리를 한 가지 해결했나 생각하면 또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젯거리가 대두된다. 하나의 파도가 모래사장에서 거품을 일구고 사라져 버리고 나면 그다음 파도가 밀려오듯이 말이다. 시간적으로 감정적으로 끝없이 스트레스를 받아 피곤해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자신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갖게 되면 해결은커녕 문젯거리가 점점 더 커져 보일 것이고 나는 고통의 구덩이 속으로 빠져 들어 헤어져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가 악순환되기 전에 적극적으로 기분 전환하는 일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창문을 모두 닫고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곤 한다. 이웃이 듣는다고 생각하면 있는 힘을 다해 힘껏 노래를 부르는데 신경이 쓰인다면 말이다. 노래가 잘 불러지고 난 후에 만족감이 나를 행복하게 하니까, 독일에 있는 한 도시에서 합창단원들을 노래하기 전에 피와 노래하고 나서 피를 검사, 비교했더니 노래하고 나서 피의 성분이 좋게 달라져 있어서 노래하는 게 면역성을 갖게 하는 등 건강에 좋다고 한다. 우울할 때일수록 경쾌한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라도 춤을 추듯 몸을 흔들어 대는 것도 기분을 좋게 하는데 적격이다. 공기가 좋은 곳으로 나가 운동을 할 수 있으면 바람직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예 운동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집에서라도 정규적으로 움직여 주는 게 좋다. 운동을 할 때는 심장이나 뇌에 산소량이 더 많이 필요하므로 창문을 열어 놓는 것을 잊지 말고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 쉬기를 몇 번 하고 나면 기분도 한결 나아진다.

속이 상할 때나 기분이 좋지 않거나 놀랬을 때 심장이 마구 뛰고 운동을 해도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기분 나빴을 때 심장이 뛰는 것은 불유쾌하지만 운동을 할 때 심장이 뛰는 것은 유쾌하다. 기분이 좋게 심장이 뛰는 것은 몸에 좋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없어도 공기 좋은 곳에서 잠깐이라도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친구들과 만나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도 기분전환에 좋은 방법이다.. 이상은 내가 힘들 때 나에게 도움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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