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옥 Jan 06.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57)

건강한 틀니 / 나 죽고 싶어

12월 31일

# 건강한 틀니


우리가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바짝 마른 헬뭍휘셔씨가 왔다. 

휘셔: "당신 착하게 잘 지내죠?"
시아버지: "내가 착하지 않고 어쩌겠어요? 이렇게 방에만 갇혀 있는데요? 범죄행위를 하겠어요? 아님 누구를 해치겠어요? 옛날 같으면 모를까 , 그런 시기는 다 지났어요"
휘셔: "당신 귀를 빳빳하게 해야 해요"
시아버지: "귀가 빳빳하지 않으면 잘라 버리죠 뭐! 내 곁에 기옥이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독일 사람들은 침울하고 나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낙심하지 말라며 위로할 때 귀를 늘어 뜨리지 말고 빳빳하게 하라고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상심하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말이다.  

점심으로 칠면조 고기에 브로콜리, 당근, 양파, 마늘 등을 넣고 후춧가루, 설탕, 일본간장을 넣고 물을 붓고 끓이다가 국물을 녹말가루를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 밥 위에 얹어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나: "고기가 든 반찬을 먹어서 나 이쑤시개가 필요한데 이쑤시개 필요 없으세요?"
시아버지: "나는 이쑤시개 필요 없어! 나에게는 건강한 틀니가 있거든!"

대답은 지금도 줄줄이 잘 도 한다. 건강한 이 소리는 들어 봤어도 건강한 틀니 소리는 난생처음 들어본다. 시아버지가 병이 들고 나서부터는 당신이 알고 있는 표현들을 망설임이 없이 해서 새로운 독일어 표현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워낙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그런 표현들이 새롭고 흥미롭다.

시아버지 틀니를 매일 씻으면서 시중에 나와 있는 칫솔이 수백 가지이지만 틀니를 닦는 칫솔의 종류는 얼마 되지 않고 대개는 우리 이를 닦는 칫솔을 약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고 면적이 큰 틀니를 닦는 데는 불편해 틀니를 닦는 면적이 큰 실용적인 칫솔을 한국과 독일에 특허를 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경험이 부족해 그것이 시장화하지는 못했다. 특허를 내는 사람 중에 단지 몇 퍼센트만 특허를 팔거나 물건을 만드는 데 성공한단다.  



2002년 1월 3일

# 나 죽고 싶어

 

시아버지는 오늘따라 무척 우울해 보인다. 

시아버지: "나 이제 더는 살기 싫어. 끝장을 낼 거야!"
나: "뭐를 끝장을 내요?"
시아버지: "내 목숨을 , 이젠 지쳤어!"
나: "어떻게 끝장을 내요?"
시아버지: "목을 자르는 수밖에 없어, 네가 나를 도와줘야겠어"
나: "제가 도와 드려요? 그럼 제가 뭐가 되는데요?"
시아버지: "살인자!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 아 나는 슬퍼… 너네들이 내겐 전부야!"

하며 신음을 한다. 아무리 가도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가는 기분인가 보다. 병이 나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모두 다 어둡고 암울하기만 하니까,  

남편은 매일 아버지에게 몇 년 몇 월 며칠 요일까지 말하며 아버지와 대화거리를 찾고 질문을 해서 말하기를 연습한다. 어떤 때는 잘 대답하다가도 화가 나면 갑자기 한 여름에 벼락같이 화를 내며 대답하기를 거부한다.  

앤디: "새로 나온 유럽의 화폐를 뭐라고 하나요?"
시아버지: "유로!"
나: "잘 맞췄어요. 당신 두뇌가 녹이 슬면 안 되니까 우리랑 자꾸 연습을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것도 못 해요. 그러길 원해요?"
시아버지: "아니, 아니"
나: "아니면 당신께 우리가 말도 안 붙이고 침대에 누워 있게만 할까요?"
시아버지: "아니, 아니"

우리가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한 덕분인지, 시아버지를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아버지의 정신력이 아직 좋은 것을 보고 놀라워한다. 

작가의 이전글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5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