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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06.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58)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 나는 교만해

1월 4일

#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나: "어제 끝장을 낸다고 그래서 슬퍼요. 그게 진심이었어요?"
시아버지: "멍청한 소리! 어제는 진심이었지만 아직은 일러, 어제는 내가 우울했거든.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자녀 없는 노인들도 많은데 나한테는 너네들처럼 착한 아이들이 있잖아"

내가 설명한 대로 생각하고 말한다. 내가 한 세뇌가 잘 먹혀 들어가고 있다. 

나: "당신 말이 옳아요. 어떤 노인들은 열 명의 자녀가 있는데 한 명도 부모를 안 돌본대요. 착한 자녀 하나가 나쁜 자녀 열보다 더 낫겠지요. 그래서 이곳 독일에 부모는 열 명의 자녀를 돌볼 수 있어도 자녀 하나가 부모를 돌보기를 어려워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속담에는 항상 진리가 담겨 있어요. 저는 한국 속담을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독일 속담을 듣는 것도 좋아해요. 예를 들어서 한국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뭐든지 시작하기가 힘들지 시작하고 보면 일이 수월해지잖아요. 예를 들어서 다리미질하기 위해 다리미판 이랑 다리미 그리고 다릴것들 다 챙겨놓고 나면 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챙겨 놓는 일만 해 놓으면 일을 중간쯤 한 것과 맞먹는다고나 할까요"



# 나는 교만해


시아버지: "앤디 어디 있어?"
앤디: "저 불렀어요? 왜 그러세요?"
시아버지: "나 네 얼굴 좀 봐야겠어. 내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니까"
나: "곧 페트라가 올 거예요"
시아버지: "네 여자 친구? 그녀는 진짜배기야"
나: "당신은 진짜배기가 아닌가요?"
시아버지: "나는 가짜배기야!"
나: "왜요?"
시아버지: "나는 못 쓸 사람이야, 옛날에는 고라니처럼 교만했거든"

고라니, 큰 뿔 달린 사슴? 큰 뿔 달린 사슴이 눈에 띄는 큰 뿔을 모두 보란 듯이 자랑하며 다니는 것처럼 보이니까 교만한 사람을 그렇게 비교하나 보다.

나: "지금은요?"
시아버지: "지금은 아니지만 쓸모없는 사람이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나: "말도 잘하는군요. 겸손하기는! 지금은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당신은 옛날에 모든 일에 충실하셨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어요. 그런 말씀 마세요"
시아버지: "내 지금의 상태는 나빠졌어"
나: "몸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지만 정신력은 예나 크게 다름이 없어요"

시아버지가 옛날에 자랑스러운 큰 뿔 달린 사슴이었다면 지금은 그 뿔이 꺾인 늙은 사슴이다. 자존심도 교만도 없이 우리의 도움이 없이는 단 한 방울의 물도 못 마시는 그런 불쌍한 사슴, 혼자 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처량한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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