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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10.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61)

king lion / 나는 착하다

1월 19일

# king lion


시아버지: "나는 매일 너네들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해, 내가 아주 눈을 감으면 너네들을 더는 보지 못하잖아!"
나: "그러니 삶에 좋은 점도 있지요. 말해보세요. 인생은?"
시아버지: "아름다운 거야!"

시아버지가 병석에 있으면서도 이젠 긍정적인 면을 볼 정도가 됐으니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는 중이다. 긍정적인 상황에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부정적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겠는가? 

간호원이 와서 시아버지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기고 휠체어에 앉혀 놓고 갔다.

시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시아버지의 빨랫감을 정리하고 있었다. 시아버지의 잠옷, 수건, 이불 시트 등 빨랫감은 세탁기에 일주일에 두 번 빨 정도의 분량이다.  

시아버지: "내 빨랫감이 많지? 나를 그렇게 잘 보살펴 줘서 고마워!"

긍정적인 것만 아니라 고마워하고 고마움을 표현할 줄도 안다. 

누군가를 예뻐하고 좋아하면 별명을 붙여 주고 싶은 충동이 생기나 보다.

그동안 죽을 고비를 넘긴 우리는 이제는 아버지를 병든 사람으로서도 좋아하게 됐다. 나이에 맞는 지혜로운 노인이기도 하다가 어떤 때는 철없는 아이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성을 잃은 사자 같은 아버지에게 사자왕{King Lion}이란 별명을 붙여,

'시아버지가 정신없이 먹을 땐 밥 먹는 사자

화가 나면 포효하는 사자 

틀니를 빼고 나면 이 빠진 늙은 사자

잘 때는 잠자는 사자'



2월 1일

# 나는 착하다


나: "우리가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너무 번거로워서 안 가기로 했어요"
시아버지: "너네들을 생각해서 내가 기뻐했을 텐데 … 하지만 나한테는 잘 된 일이지!"
나: "나중에 가도록 하죠 뭐 , 우리가 여행을 가면 잠깐 동안 임시로 양로원에 있다가 우리가 돌아오면 다시 집으로 오던지 집에 있으면서 간호원과 친지들의 도움을 받던지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시아버지: "집에 있는 게 좋겠어"
나: "그럼 그렇게 계획해 보도록 하지요. 아 참 오늘 낮에 제가 아버지가 언제나 빵을 사던 빵집에 갔었는데 주인 바이난트씨가 당신께 안부를 전하라고 하더군요"
시아버지: "안부는 전해서 뭐하게? 빵집 주인이면 작은 빵이라도 하나 보내 주든지 안 하고"
나: "나 지금 가서 잘게요. 피곤한데도 요즈음 잠이 잘 안 와요"
시아버지: "나도 다 알고 있어. 나 때문에 잠도 못 자는 거지? 내가 나쁜 사람이야!"
나: "아니에요, 당신 때문에 잠을 못 잔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당신은 참 착해졌어요. 웬 그런 말을 해요. 그런 얘기 하면 내가 슬퍼져요. 그러지 말고 나는 착하다고 해봐요"
시아버지: "나는 착하다, 나는 착하다"
나: "하루에 열 번씩 연습해요. 옛날에 비하면 당신 정말 착해졌잖아요"

시아버지는 우리가 자신 때문에 뭐든지 못 하고 하다못해 내가 잠이 안 온다고 해도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갖겠다고 고집한다. 우리가 자신 때문에 묶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불편해하는데 원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지금 처한 상황이 마음에 안 들어 모든 책임을 혼자 지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시랴?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의 심기를 북돋워 주려고 아버지가 할 줄 아는 것을 언급해 영리하다고 하고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며 격려한다. 자꾸 반복하다 보면 순진한 아버지 그 말이 믿어져 무거운 죄책감의 상자를 내려놓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생을 마치기를 바란다. 그렇게 시아버지를 설득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또 하나의 역경의 문을 통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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