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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13.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66)

쉴 때도 됐지요 / 대리 간호원 / 경기를 일으킴

3월 30일

# 쉴 때도 됐지요


시아버지는 일주일 정도 전부터 손놀림이 서툴러 물 잔도 못 잡고 마른 빵을 손에 쥐어줘도 떨어 뜨려 우리는 시아버지 먹고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시중을 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눈만 뜨면 자동적으로 철대를 잡았다 놨다 하면서 운동은 끊임없이 해서 다행이다. 오른손을 머리 밑에 넣고 쉬는 것 같은 자세를 하면서 우리에게 시중을 들란 모습이 와일드했던 처음과는 다르게 편안해 보인다.

이태리 여자 조바나가 '평생 동안 일했으니 쉴 때도 됐지요'한다. 

나: "그렇고 말고요, 우리 아버지가 우리 집에 왕이에요. 시중들라고만 하거든요. 농담을 해 웃고 살아야지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인생에 웃을 수 없는 심각한 일이 많은데요"



4월 3일

# 대리 간호원


인도에서 온 간호사 '조'가 시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간호원 '가비'가 교육 때문에 당분간 오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나: "가비가 오지 않아 슬퍼요?"
시아버지: "아니 아니 대리 간호원이 있어서 괜찮아!"
나: "대리 간호원요? 누군대요?"
시아버지: "너지 누구야?"

시아버지가 점점 말수가 없고 조용하고 반응도 별로 없고 한탄도 안 하고 우리를 부르는 것도 잊은 듯하다.

사람 마음은 이곳 사월의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걸까? 우리 이름을 몇 천 번씩 부를 때에는 귀를 막고 살고 싶었는데 우리 이름을 전혀 안 부르니 그것도 이상하게 못 마땅하다. 계속 이렇게 나가다간 우리가 우리 이름을 잊어버릴 것 같아 걱정이다. 



4월 22일

# 경기를 일으킴


근육의 마비로 한 달에 한번 정도 전에 안 하던 경기를 일으킨다. 음음음,,, 이상한 괴음을 내며 천정 한 곳만 응시하며 눈알이 옆으로 돌아가고 팔을 떨면 우리 집은 비상상태다. 일이 분 정도 그러고 나면 힘이 빠져 땀을 흘리며 축 쳐진다. 약을 주고 오랜만에 덤으로 진정제도 먹였다. 경험이 없는 우리는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아버지 손도 잡아 보고 토끼장에서 막 나온 토끼처럼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 경기를 잠깐 세게 하고 나면 어떤 때는 한두 시간 몸을 약간씩 떨며 정신을 못 차리는 등 약한 경기 증세를 보인다. 큰 지진이 있고 나면 여진이 있듯이 말이다. 


4월 23일


약기운인지 하루 종일 잘 잤고 땀을 많이 흘려 잠옷을 갈아 입혔다. 시아버지는 언제나 땀을 흘리고 나면 그다음 날 몸이 가뿐해지고 병이 낫는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4월 24일


우리의 예상이 적중했다. 

나: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상태가 좀 나아졌어요?"
시아버지: "응"

아침식사로 치즈가 얹힌 토스트 빵 한 조각을 먹이고 사과를 먹이려고 보니 틀니 주는 것을 잊어버려 시아버지 입에 하얀 이가 없이 텅 비어있음을 알았다. 나는 재빨리 틀니를 솔로 닦고 짓궂게도 시아버지의 지능을 테스트하기로 했다.

나는 닦은 틀니를 아버지의 입에 금방 넣지 않고 막 닦아 아직 물기가 있어 반짝이는 틀니를 빵과 사과가 놓인 접시에 나란히 놓았다. 내가 봐도 식욕이 돋게 하는 좋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 "접시 위에 빵과 사과 그리고 틀니가 놓여 있는데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을 집어요"

시아버지는 틀니는 아랑 콧 않고 사과를 집으려고 해 나는 접시를 얼른 돌려 틀니가 코앞에 보이게 하고 틀니를 쉽게 집을 수 있게 했지만 여전히 손을 뻗쳐 사과를 집으려고 해서 소용없는 짓이다 싶어 나는 기권하고 틀니를 입에 넣고 빵과 사과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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