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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13.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67)

유머감각은 여전하다 / 진정제는 필수품

4월 25일

# 유머감각은 여전하다


150킬로그램을 족히 나갈듯한 덩치를 한 헬무트 네링씨가 왔다.

시아버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네링씨가 느닷없이 그이답게 뻔뻔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네링씨: "언제 일어나실 건가요?"
시아버지: "(비밀 얘기라도 하듯이 작은 목소리로) 나 일어나면 안 돼! 내 며느리가 나 일어나는 것을 금지했거든"

틀니 대신 사과를 집을지언정 유머 감각은 여전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4월 26일

# 진정제는 필수품


시아버지가 너무 조용해서 3일째 진정제를 안 줬다.

우리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중얼중얼하면서 연신 입을 놀리며 턱을 떨곤 했다.

그러더니 시아버지 입술이 새까매지고 목구멍까지 까만 피가 묻어 있어 응급의사한테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 의사는 환자가 숨 쉬는데 지장이 없으면 세 시간 있다 온다고 해 입 전체에 피가 묻었는데 응급 상황이 아니냐고 묻자 진찰실이 환자로 꽉 차 지금 갈 수 없다고 매정하게 군다. 전화를 끊고 수건을 적셔 입술을 닦고 살펴보자 시아버지는 떨다가 입술을 세게 물어 다친 곳에서 끊임없이 피가 나오고 있던 것이다. 

말은 안 하고 조용하긴 했지만 그동안 진정제를 밥 인양 꼬박꼬박 받아먹다가 갑자기 진정제를 끊어 금단의 증상이 생겨 턱을 떨며 입술을 깨물어 피가 났던 것이다. 

나는 얼른 진정제를 전보다 줄여 줬다. 65세 정도의 나이를 먹은 헬뭍 네링씨의 동생 게르하르트 씨는 시아버지처럼 왼쪽이 마비됐고 병 증세가 비슷하지만 진정제가 필요 없다고 하던데 원래 천성이 와일드한 시아버지는 병이 들자 진정제는 필수품이 되었다. 그야말로 고삐 풀린 동물 그것도 광적인 동물을 연상케 할 정도였으니 진정제 없이 본인이나 타인 모두에게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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