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옥 Jan 17.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70)

건강보험회사

5월 6일

# 건강보험회사


토마토소스, 햄, 파인애플, 양파가 얹힌 피자를 먹이고 나서 빨개진 입을 휴지로 닦으며  

나: "당신이 무슨 음식을 드셨는지 모든 사람이 다 알게 할 필요는 없죠"
시아버지: "내가 뭐 금지된 것을 먹었나?"
나: "아! 우리 시아버지는 말도 잘한다니까요 그러는 당신이 맘에 들어요"
시아버지: "사람은 대꾸를 할 줄 알아야지! 당하고만 있을 순 없으니까"

돈 얘기는 꺼내고 싶지 않지만 시아버지를 돌보기 때문에 건강보험에서 간호하는 가족 앞으로 매달 돈이 나온다 

그 돈이 추진력이 되어 아버지를 맡겠다고 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고 지금도 돈 때문에 모시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시아버지를 모시기로 결정할 당시에는 병들어 극성맞은 아버지를 어떻게 모시나 가슴 졸이면서 아버지를 모셔야만 한다는  사실만 너무 크게 부각되어 다른 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 초점은 광적이 다시 피한 아버지를 어떻게 맡나 생각만 해도 기절할 것 같은 과제를 놓고 돈문제 같은 것은 얘깃거리가 아니었다. 아니 시아버지에 대한 애정이나 의무감 같은 게 동기가 되지 않았다면 처음에는 우리가 아버지를 양로원으로 모셨을 것이고 그럴 경우 우리가 돈을 양로원으로 지불해야 한다 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나라는 미국과 달라 노인네들이 양로원에 갔을 때 노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자녀들이 비용을 지불할 것을 강요한다. 

지금은 최고로 어려운 장애물은 넘은 셈이다.

하루하루 그날그날 새롭게 대두되는 문젯거리들을 해결할 것은 해결하고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받아들이며 시아버지를 보살핀 지 이제 일 년이 넘어 이제는 병든 부모를 모시는 게 어떤 것인지 병든 사람을 보살펴 본 사람들과 말을 섞어도 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시아버지가 십 년을 사시면 어쩌겠느냐며 그래도 시아버지를 모시겠느냐고 질문해온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생각해서 하는 얘기지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는 어른을 하루도 모실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오늘 우리가 아버지를 모실 수 있으면 모시고 내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겨 모실 수 없으면 양로원엘 모시고 가면 되는데 왜 오늘, 내일을 그리고 십 년 후를 생각해 지금 골머리를 섞여 흰머리가 생기게 하느냐고 대답한다.  사람은 계획을 잘해야 하지만 병든 노인을 모시면서 얼마만큼 계획을 잘 짤 수 있단 말인가.   병든 아버지의 편의는 생각하지 않고 나의 안일만 생각하고 노인들의 인생도 인생인데 그의 인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인생만 중요해 나의 편의만 생각한다면 ,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나무도 물도 없는 메마른 사막 같을까? 사막의 물 같은 신 선한 것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애정,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게 아닐까? 

산꼭대기만 보고 산이 높다고 아예 산을 오르는 일을 모두 다 포기한다면 누가 높은 산을 정복할 것인가?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산 정상에 올라선 등산가처럼 우리는 하루하루 아버지를 모시며 지내련다. 

아버지가 얼마나 살 것인지 주사위를 던지듯 하며 얼마나 더 살 것인가 추측이나 짐작하지 않으며 그날그날을 맞으련다.

남편 친구의 부인 긴 금발을 항상 풀어놓고 다니며 잘 난척하는 산드라는 시부모 친정부모 모두 70대 말, 80대 초반인데 나중에 그분들 중 누구를 모시게 될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냉정하고 교만한 여자가 대단한 효녀나 효부인 것처럼 자기가 친정부모, 시부모를 다 떠맡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암시를 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노인네가 우리 시부모처럼 중풍에 걸려 오래 누워 사는 것은 아니잖냐고 많은 노인네들이 심장마비나 암에 걸려 갑자기 아님 빨리 죽지 않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바른말을 했다. 정말 의로운 사람이 그런 말을 했으면 그렇게 바른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산드라는 시부모와 한 집에 살면서도 인사도 안 하면서 지내고 시부모가 초인종을 눌러도 문을 안 열어 줄만큼 쌀쌀맞단다. 그러면서 의인이 아니면서 의인인 척한다. 

(참조.. 그리고 친정아버지는 2004년에 병원 몇 번 다녀오더니 자녀들의 간호한 번 못 받고 심장병으로 인해 돌아가셨다.)

우리가 긴 여행을 하거나 자주 집을 비우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도 다른 벽지를 봐야 하고 바람을 쐬야 하니까 

독일 사람들은 여행도 못하고 언제나 집에만 있는 사람들은 똑같은 벽지만 보고 산다고 투정한다.

우리랑 친한 사람들을 불러 시아버지를 돌봐 드리라고 하고 외출을 하곤 한다. 산책을 하거나 외식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방문하거나... 어떤 때는 하루나 이틀 와서 자줄 사람을 구하고 이제는 처음과 달라 잠깐씩은 아버지가 혼자 있을 수 있으니까 이십사 시간 지키지 않아도 양심에 가책이 들지 않는다. 양로원에 있다 해도 잠깐씩은 혼자 있어야 할 테니까, 우리가 조금씩 상황에 맞게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소한 일에 쉽게 죄책감을 갖게 되면 장기적으로 누군가를 돌보게 될 때 심리적인 압박감을 받아 도움이 안 된다. 

시아버지는 이제 전처럼 극성맞지 않고? 많이 조용해서 처음에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누워서 떡먹기다.  

작가의 이전글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6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