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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20.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75)

솔직한 유럽 사람들

6월 28일


요즈음 시아버지는 하루 종일 말이 없다.

처음에는 시아버지가 망설임과 예의란 단어를 잊어버린 듯 너무 활동적이어서 코끼리가 사기그릇 파는 가게에서 움직이고 아무 데다 부딪치듯 해서 걱정이더니 이제는 하루 종일 우리가 말을 걸지 않으면 한마디도 안 하려 든다. 언어를 담당한 세포들이 나태해져 쉬고 싶은 모양이다. 

나: "나 집에 왔어요"
시아버지: "나도 집에 왔어!"
나: "맞아요. 우리 아버지도 우리 집에 왔지요, 얼마나 다행이에요"
앤디: (흠흠흠 휘파람을 불자) 
시아버지: "조용히 해"

아들 노랫소리가 귀에 거슬리는지 화가 나서 크게, 비교적 발음도 정확하게 말한다. 말수가 적다가도 화가 나면 갑자기 참지 못해 발끈한다.  

앤디: "기옥이 노래하면 그런 소릴 안 하면서 왜 내가 노래하면 그래요?"
시아버지: "난 기옥이를 좋아해!"
앤디: "나보다 기옥이를 더 좋아해요?"
시아버지: "응"

병이 든 이후론 세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진실만 말한다.

시아버지가 지금 솔직한 것은 지나치지만 나는 유럽 사람들의 솔직함에 놀란적이 많다.

예를 들어 친구들 여럿이 수영을 하러 가기로 했는데 한 여자가 생리가 시작해 못 갈경우 솔직하게 남자들 한테도 생리 때문에 못 가겠다고 하거나 자기 브래지어의 크기 얘기를 하거나 분만할 때 일을 적나라하게 설명하곤 한다. 남녀 칠세 부동석이란 속담이 있고 이성을 꽤 의식하고 말조심하고 사는 우리네 사고방식이랑은 천지차이이다. 그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솔직하기 때문에 있게 되는 장점이라면  자기 얘기 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뒤에서 쉬쉬하며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뭔가 비밀스럽다 싶으면 호기심이 발동해 뒤에서 이 얘기 저 얘기 상상까지 곁들여 가며 불어난 얘기를 해 중상이란 말이 생겨난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어떤 여자가 한번 이혼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여자가 솔직하게 자기가 한번 결혼을 했었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지만 그 여자가 그 사실을 숨기려 들거나 말하려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여자에 대해 상상에 상상을 더하며 그 여자 뒤에서 이러쿵저러쿵하며 말하는 게 사람의 심리가 아닐까?  

시아버지가 요즘 들어 부쩍 하루 종일 침대의 창살과 삼각형을 잡았다 놓았다 해서 오른손에 굳은살이 생겼고 오른쪽 팔로 팔씨름을 해보면 힘이 많이 생겼음을 알 수 있고 근육도 많이 생겨 오른 팔의 윗부분이 닭의 허벅지처럼 툭 튀어나왔다.

굳은살 때문에 나는 철로 된 삼각형을 스펀지를 넣고 도톰하게 쌌다.

남편 앤디와 나는 하루 종일 누워있으면 답답할 것 같아 아버지를 휠체어에 자주 앉히려고 한다. 옷 입혀야지 벨트 매야지 휠체어에 앉히는데 일이 많고 시간이 한참 걸려 우리는 아버지가 되도록이면 오래 휠체어에 앉아 있기를 원한다.

그런데 오늘은 두 시간도 안돼 침대로 가겠단다. 

앤디: "좀 더 앉아 있어요. 그러는 게 당신 엉덩이에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 엉덩이에 상처가 생겨요"
시아버지: "내 엉덩이에 대해선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아"

하루 종일 말을 안 하다가도 말대답은 지금도 청산유수같이 막힘없이 잘도 한다.

하지만 남편 앤디도 말싸움을 하면 지지 않는다. 
앤디: "내가 당신 기저귀 갈면서 당신 엉덩이를 얼마나 자주 봤는데요"

시아버지는 아들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지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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