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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24.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78)

대머리ㅡ헬리콥터 착륙지점

7월 12일

# 대머리ㅡ헬리콥터 착륙지점


나: "아버지 웃게 재밌는 얘기 좀 해 봐요!"
앤디: "대머리는 헬리콥터 착륙지점이에요, 왠지 알아요? 대머리가 판판하니까요, 함부르크 사람들이 번개가 치면 왜 미소를 짓는지 알아요? 사진 찍히는 줄 알고요. 플래시가 터지는 줄 아는 거죠. 아빠 한번 따라 해 봐요.. 휘셔 후리츠 휘 쉬트 후리셔 휘쉬"

(어부 후리츠가 싱싱한 물고기를 낚는다는 말이다.)

독일 사람도 발음하기 어려운 말들을 만들어 연습하며 그런 말들은 혀를 꺾는 문장이라면서도 재밌어한다. 한국말로 간장공장 공장장은 장공 장장이고 된장공장 공장장은 강공 장장이다라는 식으로



7월 16일


우리는 아버지의 기억력을 테스트하고 솔직한 의견이 듣고 싶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주로 아버지가 알고 있는 사람이나 사건들에 대해서 묻는다. 아버지는 누가 독일에 수상이고 누가 수상 후보자인지 이름까지 알고 있다.

칭찬을 해서 바닥에 떨어진 아버지의 자 중심을 키워 줄 절호의 기회이다. 

앤디: "우리 아빠 똑똑해라"
나: "우리를 그렇게 자꾸 놀라게 하는군요, 어쩜 그렇게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해요?"
시아버지: "(오른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사람은 머리를 쓸 줄 알아야 돼"

하며 깊게 한숨을 쉰다. 내가 인정받을 짓도 하는구나 '다행이다'라는 뜻이 담긴 그런 안도의 한숨 같은 것 말이다. 

앤디: "아버지 취미가 뭐예요?"
시아버지: "먹는 것"
앤디: "두 번째 취미는요?"
시아버지: "그것도 먹는 것"
나: "솔직하기는.. 병들고 나서부터 어쩔 수 없이 취미가 그렇게 바뀌었지요. 그 전에는 사교적이어서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것도 좋아하고 축구도, 여행도 좋아하셨잖아요. 우리랑 하이델베르크도 갔었고 함부르크에 가서 오페라도 보고 미국 여행도 함께 했었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저를 뚫어져라 쳐다봐요?"
시아버지: "쳐다보면 안 돼? 나는 너를 이렇게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내가 얼마나 더 너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잖아!"



7월 20일


간호원이 와서 아버지 몸 씻겨 주고 머리도 감기고 얼굴에 로션도 발라서 아버지 얼굴이 윤기가 흐르고 오늘따라 눈도 반짝인다. 

앤디: "아버지 오늘 멋있어 보여요!"
시아버지: "조용히 해, 듣기 싫어!"

콤플렉스 때문인지 우리가 칭찬하면 발끈해서 칭찬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든다. 칭찬은 우리의 사기를 돋워 주지만 과분하거나 너무 자주 하는 칭찬은 연극 같아서 삼가야 한다는데 과분하거나 자주 하는 칭찬도 아닌데 역정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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