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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27.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83)

동서

9월 12일


우리가 아버지를 모시고 나서 처음으로 슈퍼마켓에서 동서 '우술라'를 우연히 만났다.

나는 악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특별히 반갑지 않다는 표시를 내고 물건을 고르고 있었지만 자존심은 어디다 팔아먹은 듯 마음씨가 좋은 남편 앤디는 서서 자기 형수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사람들은 그런 남편을 보고 쓸개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을게 틀림없다. 형이나 형수나 우리가  편찮으신 아버지를 모시며 고생하는지 알면서도 단 한번 찾아오지 않는 그런 매정한 사람들과 나는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다. 마음씨도 나쁘고 부모에 대한 도리도 모르는 사람들이 잖은가? 형수와 헤어지고 나서 남편이 내게 그런다. 형수 , 우술라, 가 그러더란다. 시아버지가 자기 남편은 안 예뻐했고  많이 때렸고 동생만 예뻐했다고 그러면서 그래서 자기는 남편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 집에 사는 시아버지를 찾아올 수 없다고 했단다. 한국말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는 말이 있듯이. 남편이 옛날 얘기 운운하면서 자기 병든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는다고 자기도 병든 시아버지를 찾아올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실처럼 가느다란 핑계를 대며 나쁜 남편을 더 나쁘게 만드는 그런 여자랑 나도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 우술라, 는 시부모가 가깝게 사는데도 불구하고, 시어머니가 아플 때도 일 년에 한 번 정도 찾아왔었다. 시어머니가 건강할 때 자기 아이들을 키우다시피 했는데도 말이다. 남편이 나쁜 사람이라도 병든 자기 아버지를 방문한다면 싸우자고 하거나 야단치지 않을 텐데도 말이다. 

남편 앤디는 자기 형이 우리 집에 찾아 오지 못 하는 것은 자기가 우리더러 말리고 큰소리를 쳤는데 우리가 잘 모시고 있으니까 면목이 없어서 못 찾아오는 것이라고 한다. 큰소리는 쳐도 겁이 많고 뒤끝은 없다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여자 같았으면 그동안 얼마든지 병든 시아버지를 찾아왔을 것이다. 이 나라에 , 말은 기적을 일으킨다, 는 속담이 있다. 한국에도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시숙과 동서가 우리를 찾아와서 단지 친절하게 힘들지 않느냐고만 물어와 줘도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도움 같은 것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시아버지에게 물었다. 

나: "슈퍼에서 '우술라'를 만났는데 큰아들이 아버지한테 매를 많이 맞았다면서요?"
시아버지: "응, 그 애가 매 맞을 짓을 했지, 하고말고" 
나: "앤디만 예뻐했어요?"
시아버지: "아니, 아니, 절대로 그게 아냐"

아이처럼 순진한 표정이 단호한 표정으로 변한다. 순한 양 같은 눈빛이 갑자기 사자의 눈빛으로 말이다. 두 아들을 불공평하게 키우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마음에 안 들어 항의라도 하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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