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번째 : '톡이 유출될까 봐요'

울산남구여자중장기청소년쉼터 김현주 소장

by 김밀


크리스마스 캐럴 모음을 듣고 있던 연말, 개와 늑대의 시간 즈음, 그는 내가 하고 있는 학원으로 찾아왔다. 나만큼이나 성격이 급한 그는 파일부터 내밀었다.


- 아이들 인적사항 다 들어 있잖아요. 카톡으로 보냈다가 혹시나 유출될까 봐요.


그런 일이 오천만 분의 일이나 될까, 뭐 이런 생각을 했다가, 이런 사람이라면 역시 안심이다, 하면서 파일 안에 있는 A4지를 꺼내서 같이 들여다봤다. 앞으로 청소년 쉼터를 나와야 하는 자립준비청년과 생활비가 필요한 학생들. 이름, 나이, 쉼터에 들어오게 된 사정, 어려웠고 불편했겠다 하고 끝내버리기엔 모질고 악하고 잔혹했던 일상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학교 생활 대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부모에게 학대를 받거나 계부에게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하거나, 검은 봉지를 쓴 채 관계를 했고 임신을 했더니 나 몰라라 하는 개새끼를 만난 친구까지. 시발개새끼.


연말이면 라디오를 통해 이틀간 모금 방송을 한다. 하루 두 시간의 방송, 이틀간 이천만 원 정도 되는 성금을 모으고, 친구들에게 전달을 하는데 지난 연말에도 그 일로 소장과 마주한 것이다. 일단은 지역에서 꽤 인기가 있는 디제이 선배 덕분에 이런 모금이 가능하고, 두 번째로는 500만원 또는 250만원이 입금된 친구들 명의의 계좌 내역을 SNS에 공개하면서 투명성을 확보하고, 세 번째로는 마음을 받아줄 친구들을 추천해 주는 그가 있어서 수년째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연말에 이 일을 할 때마다 신발에 들어온 작은 돌처럼 불편한 게 하나 있다. 그는 꿈에도 모를 일이겠지만 나 혼자 꿉꿉한 일. 그는 종종 ‘고마운 애청자분들에게’, ‘도움을 주신 청취자분들에게’로 시작되는 아이들 편지를 전해주는데 나는 그 편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러브하우스’가 떠오른다. 어려운 형편의 집을 찾아가 짜잔, 하고 새 집으로 바꿔주던 예전 티브이 프로그램. 원래 살던 가족들이 ‘깜짝’ 혹은 ‘과하게’ 놀라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게 영 거북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 그저 미소만 머금고, 속으로만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당시 그 프로그램 보고 어느 시청자가 쓴 비평문 제목은 이랬다. ‘가난에 대한 올바른 대접.’ 순수한 편지를 그리고 진짜 기쁘고 놀라운 집주인을 꼬아서 보는, 왜곡된 내 시선에 문제가 있음을 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쩌랴.


언젠가 쉼터에 방문했을 때, 아이들 방 체리빛 몰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을 할 때는 ‘이 사람 진짜’ 라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만든 수세미나 아로마 스프레이 등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회사를 찾아올 때는 애틋함과 고마움이 전해진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기를.’ 손글씨 밑에 있는 쉼터 책자에 새겨진 문구도 눈에 들어온다. ‘잘하고 있어 자라고 있어.’ 나도 잘하고 싶고, 자라고 싶다. 요즘 회사에서 똥오줌을 못 가리고 있어서 진짜 진심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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