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아무개 이야기:어쩌다 마주친 사람》-96-

'어머니의 콩나물/새송이ㆍ팽이 전/영농 수료증'

by 추재현

2026년 2월 21일 토 요일

1) 어머니의 콩나물

전라남도 고창 유년시절을 외할머니를 도와 농사를

지어오신 경험이 있으셨던 나의 어머니는

풀천지에 '준비된 농업의 선구자'셨다.


내가 기억하는 콩나물은 콩나물콩을 사다 길러먹는 거였다.

어머니께서는 콩나물을 잘 길러 수시로 다양한 나물ㆍ국ㆍ찜ㆍ볶음... 을 해주셨다.


빛을 차단하고 콩이 물 빠지게 하여 받은 물을 수시로

주며 한 번씩 갈아주면 콩나물시루에서 하루가 다르게

크던 쭉쭉 뻗어 나가던 풍성한 콩다발


풀천지생활하며 '쥐눈이콩나물'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러다 두 가지 작은 콩나물콩까지 짓는 게 메주콩ㆍ서리태ㆍ팥과 같이 털어 갈무리하기가 번거롭다.


더 몸에 좋은 '쥐눈이콩나물콩'만 심어온지 몇 해

팔기도 하고(원물과 청국장ㆍ가루) 약식초콩/콩나물 길러먹기엔 콩이 자꾸 남아 여러 해 더 심지 않고 묵은 콩만 물을 주고

기르니 해가 지날수록 덜 자라기 시작했다.


콩농사가 한 번씩 노린재트랩을 써도 노린재가 극성을

떠는철을 만나면 진액을 쪽 빨려 망칠 때가 있는데

쥐눈이콩이 실패하여 종자가 사라지게 되었다.


거의 해마다 심고 다양하게 해 먹어 소비가 잘 되는

메주콩ㆍ서리태 (메주ㆍ두부ㆍ청국장, 밥...)

, 밀.. 곡물류는 눈싹이 잘살아 있는 반면에 소비가 잘 안돼 한 해 두 해 안습니다 보면 기능이 떨어져

사라지는 작물류도 있다.


24년도에는 콩나물을 사 먹기 시작했고

25년도 몇 해 묵은 '쥐눈이콩'심으며 다시 종자확보

하려 했지만 콩나물도 잘 자라지 못한 묵은 거라 그런가

실패했다.(다른 콩들도 노린재극성과 날씨가 맞지

않았는지 덜되었고 어머니 점점 건강이 악화되어

도저히 거둘 수 없어 처음으로 심은 콩들 전부 예치기)


2) 새송이ㆍ팽이 전

재료는 싼데 음식점에서 사 먹으면 비싼 '버섯모둠전'

통밀가루에 죽염소금 살짝 크린백 속에 흔들어 섞어

계란물(미림 조금, 죽염소금, 후추, 계란) 거품기로

잘 풀어 부치면 육전을 먹는듯한 풍미와 식감이 있다.


3) 영농 수료증

가업승계농 24년~26년_나

1년 차 한 달에 백만 원

다음 해부터 90만 원씩 농사를 지으며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던 지원이

올해로 끝이 난다.


부족한 농가살림에 큰 보탬이 되어주었고

선정되어 혜택을 받으려 맞추는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영농일지와 돈 쓴 내역

그리고 해마다 영농교육받은 증빙서류를 제출하는데

난 내가 기록하고 배우는 게 좋아 초과달성하여 보낸다.


영농교육은 한해 20시간 온라인으로 하면 반만 인정되어 40시간을 받으면 되는데 난 65시간이나

더 하였다.


생각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되는데 수강료를

내는 게 아니고 거꾸로 받으니 이 얼마나 이득인가

당장 삶에 적용하기엔 시간 걸리지만 머릿속에 남아

필요한 시점에 나은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동생과 나는 봉화군청과 면에 서로 제출해야 할

서류가 밀려 하루 서류작업 하고 아버지는 나무손질하여 파쇄하셨다.


(큰 밭에 빼둔 참나무 땔감용에서 아까운 건 고추말뚝

크기로 여러 개 더 포클레인과 기계톱 이용/트럭 실어

/비가림시설 내부에 우물정으로 '표고목'을 더 쌓았다.

~파쇄기 뒤편 '깻묵파쇄기'를 나 혼자 네귀퉁 바퀴를

끌어 구부엌 뒤에 임시로 옮겨 파쇄할 공간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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