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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쌤 Oct 18. 2021

사람좋아 사람싫어

    나는 사람을 마냥 좋아하다가도 어느 순간 사람이 마냥 싫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스스로 농담 삼아 '강아지모드와 인간극혐기를 오간다'고 말하곤 한다. 이게 뭐랄까, 살짝 주기처럼 오락가락 하는 듯 하여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읽게 된 책에서 어렴풋이나마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특히 양육을 잘 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자녀가 사람에 대한 관심을 지니도록 키우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자란 자녀들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우리가 자나 깨나 추구하는 사랑이나 인정이라는 것도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불행한 관계 걷어차기 (장성숙 저, 스몰빅라이프 출판)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이고, 자잘한 상처를 받게 되더라도 잠시 주눅은 들더라도 다시 사람 곁을 맴돌며 먼저 애정을 베푼다. 사람마다 마음을 열고 마음을 주는 속도와 기준은 제각기 다르기에, 나의 방식이나 속도를 강요하기보다는 그저 기다리기도 하고 잊을 만 하면 찾아가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사람들이 평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그리도 재밌었고,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 깊이 탐색하면서 그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슴 벅차고 소름이 끼치기도 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진심으로 다가가고 그 사람도 진심으로 화답했을 때 마음이 함께 울리는 그 진심의 공명이 그토록 나를 가슴 뛰게 했었다. 사소한 경험들이지만, 천주교 문화가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그 공동체 속에서 경험한 진심이 통하는 순간들이 어쩌면 나를 상담이라는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그러한 문화는 나에게 따뜻함과 평화로움, 그리고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는 선과 악이 함께 있지만, 악을 조절하고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의 이성과 자제력을 믿는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악함이 드러나는 사건보다 선함이 베풀어지는 순간들이 더 많다고 믿는다. 어찌보면 낙관적일지도 모르는 이런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상담을 할 때 어떤 사람이 오든지 애정과 신뢰를 갖고 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는 왜 사람에게 피곤함을 느끼며 멀리하려 하는 것일까? 기대감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앞세우다 그것에 맞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이 그렇게 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것 또한 그만큼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한다. 기대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한 관계 걷어차기 (장성숙 저, 스몰빅라이프 출판)


    그러나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그로부터 악하거나 이기적인 면모를 보게 되었을 때 실망하곤 했던 것 같다. 분명 선과 악은 공존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내가 만나는 내담자가 혹은 내가 어울리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내 생각만큼 선하고 도덕적이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실망하고 믿음이 깨어진 것에 대해 상대는 모르게 홀로 원망하고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의 작용으로서 사람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한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작용으로서 실망감, 배신감, 그리고 사람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일지도. 


    내가 지닌 사람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은 영아기에 주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세상에 대한 기본적 신뢰(basic trust)를 갖게 된 덕분일 것이다. 이로 인해 나는 사람에 관심이 많고,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고자 하며, 나 역시도 사랑받고자 한다. 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며, 관계에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은 내가 지닌 덕목일 것이다. 


    그러나 기대는 기본적 신뢰와는 다른 것 같다. 기대는 내가 상대에게 부여하는 것이며, 그 기대에는 상대의 입장과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즉, 기대는 온전히 나의 생각이고, 나의 것이다. 상대는 그대로인데, 내 기대가 크면 상대의 작은 실수에도 혼자 실망하게 될 수도 있고 내 기대가 작으면 오히려 상대의 작은 선행에 감사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기대'는 인간관계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될 때가 많은 것 같다. 가족상담에서도 가족구성원 간의 '기대'는 매우 영향력 있는 요인으로 심리적 개입의 주요 대상으로 다루어진다. 인간극혐기에서 벗어나고 사람에 대한 피로감에 쉽게 휩싸이지 않으려면 나의 기대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기대 수준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밖에 있는 사람과 상황은 똑같은데, 혼자서 기대했다가 실망하면서 내적인 에너지를 소모해온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모든 기대를 내려놓는 것도 좋은 방향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게 전혀 기대가 없다면, 그것은 사람에게 전혀 관심이 없게 되는 것일 수도 있기에. 항상 모든 것은 적절해야 좋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도, 사람에게 갖는 기대도 모두 적절해야 한다. 내 기대의 적정선을 찾는 것은 나의 몫일 것이며, 나에 대한 완벽주의와 더불어 계속해서 다루어야 할 나의 과제일 것 같다.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은 누구든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살기 마련이다. 이 속에서 사람은 그 때마다 어딘가에 기댈 수 있어야 제대로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다. 즉, 우리는 절대로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로서 어려서는 부모에게 의지해 자라고, 결혼해서는 배우자에게 의지해 안정을 이루고, 나이 들어서도 뭔가에 기대야 꼿꼿하게 나이에 걸맞게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대야 한다'는 것은 속이 허하지 않도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기댈 데가 없어 속이 허한 사람은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 쉬운데, 그렇게 되면 한평생을 무난하게 살기 어렵다. 

-불행한 관계 걷어차기 (장성숙 저, 스몰빅라이프 출판)


    비록 '기대'는 어느정도 내려놓더라도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야 한다.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사람은 그 때마다 어딘가에 기댈 수 있어야 제대로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은 홀로 온전할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며, 사람 사이에서 살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 그러기에 서로에게 적절한 기대를 갖고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야 한다. 행복한 삶이란 게 별게 아니라, 유아독존보다는 상부상조하며 그렇게 살아 누군가와 함께 나이 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복이나 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관계에 달렸다. 가족관계나 동료관계에서 이해받고 지지를 받으면 받은 만큼 즐겁고, 배척을 당하면 당한 만큼 삭막해져 불행을 느끼기 마련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룩했어도 주변에 사람들이 없으면 외로워 견디기 어려운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무엇보다 우리의 행, 불행을 결정짓는 인간관계를 좋게 만들어 가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 이를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불행한 관계 걷어차기 (장석숙 저, 스몰빅라이프 출판)


    <놀면 뭐하니?> 프로에 오징어게임의 오일남 역할을 맡으신 오영수 배우님이 나온 영상을 봤다. 나이 들어서 바라는 것은 크게 없고, 가족과 같이 잘 문제 없이 잘 살아가는 것이 염려이면서 기대이면서 바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언제 행복한지를 물으니, 가족끼리 같이 앉아서 식사하면서 아이는 아이들대로 자기 얘기를 하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자기 얘기를 해 가면서 그렇게 사는 가정이 가장 행복한 가정이 아닌가 하면서, 얼마 안 되는 식구지만 가족끼리 다 같이 있을 때가 행복하다고 담담하게 답하시는 모습이 실로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어줄 가족과 친구가 있는 삶이, 그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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