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뤼미쌤 Oct 27. 2021

나를 떠나간 존재들에 대하여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컨디션이 안 좋은 혼자 있고 싶은 날에는 어김없이 그들에 대한 생각이 든다. 그들이 원해서 나를 떠나간 것은 아니겠지만 어찌되었든 저 멀리 떠나서 내 곁에 더 이상 없는 존재들. 반대로 생각하면 더 이상 내가 곁에 있어줄 수 없는 존재들.

사람은 참 어리석다. 없어져봐야 있었던 것의 소중함과 귀함을 알게 되다니. 평범한 하루하루, 지겨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잃어보지 않고는 그만큼 느끼기 어렵다. 크게 아파봐야 우리는 신을 찾으며 빌고 원래대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사별을 맞이할 때에도 신을 원망하며 그와 함께 했던 별거 없던 순간들을 펑펑 눈물로 떠올린다.

요즘 주변에서 장례식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주변인의 연령대가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유난히 귀가 쫑긋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다소 어렸을 때 맞이한 사별은 죽음에 초점화를 일으키는 것 같다. 한 번 소중한 사람을 잃은 다음에는 “죽음”과 관련된 일들을 허투루 넘기기 어렵게 된다. “죽음”과 “사망”, “장례식”과 같은 단어는 그저 단어가 아니라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어떤 감각과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차갑고 딱딱한 촉감, 생기를 잃고 누워 있는 이미지, 종이컵과 종이접시에 담긴 전과 육개장,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울음소리. 이런 감각과 이미지는 곧잘 나에게 어떤 감정을 촉발시킨다. 어떤 때는 울렁이게, 어떤 때는 한없이 가라앉고 차분해지게, 또 어떤 때는 사무치게 슬프게도 만드는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을 함부로 아무에게나 드러낼 수는 없다. 나에게 있었던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 서로 그렇게  가까워지지 않은 타이밍에 단지 그런 화제와 소재가 나왔다는 이유로 갑자기 감정부터 쏟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배려도 나의 소중한 마음에 대한 스스로의 존중도 그 무엇도 아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죽음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에게 직접 건네든, 그런 이야기가 지나가듯이 들려오든 나는 최선을 다해 모른척한다. 내 나잇대는 아직 일반적으로 사별을 경험하지 못한 나이기에, 그런 기대치에 맞추어 그저 옅은 미소를 띠고 잔잔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을 뿐이다.

한 때는 내게 있었던 거대한 사별들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다시는 새로운 그 누군가와 친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피하고 근황을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 존재가 사라졌는데 세상은 그저 그대로 돌아가는 사실이 너무 원망스러웠던 나머지, 나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 일을 언급하지 않고 묻어버리면 정말 그 존재들이 나로부터조차 사라질 것처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일을 모른다면 나를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이 일을 안다고 해서 나를 오롯이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며, 내 마음은 내가 잘 알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차차 느꼈다. 그러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들이 사라진 존재가 아닌 척, 아직 내 곁에 있는 척, 죽음의 소식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이 정도인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게 되었다. 가면을 적절히 쓸 수는 있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괜찮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척들 사이에서 한 번씩 지치고 한 없이 가라앉게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시간이 더 많이많이 흐르면 진정으로 괜찮아질 수 있겠지. 살면서 더 많은 죽음과 이별을 맞이하게 될 것인데, 잘 해낼 자신은 없다. 무언가 잃고 나서 느끼는 끝없는 상실감과 허전함, 이전의 소중함에 대한 후회와 그리움, 세상에 대한 원망 이런 것들을 다시 다 느끼고 괜찮은 척할 자신은 결코 없다. 자신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과거에 커다란 상실과 이별을 겪었고 이것이 내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므로, 앞으로도 나는 종종 죽음과 관련한 사건과 일들에 과민반응할 것이고 겁을 먹을 것이고 눈물을 지을 것이다.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떠나간 존재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고 계속 기억할 것이다. 그게 남아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사람좋아 사람싫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