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여러 개인적인 사정으로 폭풍과 같은 한 달을 보내고나니 벌써 11월의 끝자락에 와 있었다.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잎이 가을비와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고 훅 추워진 월요일, 삼삼하게 일기같은 글이나 써보려고 브런치에 들어왔다.
글쓰기의 치유적 효과에 대해 상담공부를 하면서 들어봤는데, 나에게 글쓰기는 다소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마음이 정리가 다 되고 파도가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글자를 읽고 쓸 수가 있다. 폭풍이 몰아칠 때 내 감정을 쏟아내듯이 글을 써내려가야 치유와 정화가 이루어질텐데, 나는 마치 내가 태풍의 눈에 있는 마냥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한 듯, 괜찮은 듯하게 꾹꾹 눌러삼키고 버티다가, 끝끝내 그러다가 폐허가 되어 버린 고요한 도시가 되고서야 글을 쓸 마음이 생긴다. 이건 좋지 않은 습관인 것 같은데. 글쓰기가 아니라면 치유적 효과를 가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지금 내 생각으로는, 누구와 같이 말고 오롯이 혼자 나의 심장박동을 느끼는 운동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도 익숙해질 때까지 처음에는 꾹꾹 참아야 될테고, 혼자는 재미없다는 생각도 털어버려야 할테고, 그리고 무엇보다 행동으로 옮겨야 할텐데 이런저런 핑계를 찾아 자꾸만 지친 몸을 이끌고 나가려는 게 혹사는 아닐까하며 미루게 되었던 것 같다.
혼자 바로 서는 것. 경제적 정서적 독립. 지금 현재 나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어려운 발달 과업이자 목표가 될 것 같다. 나는 내가 보살피고 돌보고 책임져야 할 존재가 생기면, 그것이 가족이든 연인이든 학생이든 반려견이든지간에 나를 거의 돌아보거나 돌보지 않고 오롯이 그 상대에게 온 관심과 마음을 써버리는 경향이 있다. 지나치게 이타적인 걸 수도, 이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의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아니면 그 사이 어딘가 애매한 상태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습관은 내게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안 남길지언정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상처와 자책을 남기는 것 같다.
모든 것은 균형이라고 느낀다. 어떠한 관계에서든지 나라는 사람의 경계를 잃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나는 모두에게 마음을 쓰지는 않지만 한정적인 내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마음을 써버려 나에게 남은 마음이 없을 때가 많다. 그렇게 텅 비어버린 마음은 때로는 홀가분하게, 때로는 뿌듯하게 느껴지지만, 화수분도 아닌 내 마음의 바닥이 보일 때는 한 순간 나를 놓아버리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이건 매우 무의식적인 것이라서 순간순간 알아차리기조차 어려운데, 이번에는 정말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에 남긴다.
내가 마음을 쏟은 그 사람들이 내게 소중하듯이, 그 사람들에게 나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그들도 나를 지키고 싶어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나아가 나를 희생해서 그들을 구하는 거 말고, 너와 내가 함께 나아지고 싶다. 내가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그렇게 속삭여주는 나의 어머니, 나의 상처에 눈물을 보이며 속상하다고 말해주는 언니, 언제든 내가 마음을 열고자 하면 그 자리에 있어주는 친구들이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만 나도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 마음을 글에 고이 접어 남겨두고, 두고두고 곱씹어봐야 할 것 같아서 아직 글을 쓰고 싶지 않은데도 글을 써보는 중이다. 인생이 결코 쉽지가 않아서 앞이 캄캄하고 어깨가 무겁지만, 내 인생을 아무리 피하고 모른 척 해봐야 결국 돌아와야 하는 현실이기에 아프지만 마주하고 무섭지만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