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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쌤 Oct 02. 2024

나는 여전히 날 몰라

2024년의 4분기가 어제부로 그 문을 열었다. 이제 올해도 3개월 남짓뿐이 남지 않았다니 믿기 어려운 심정이었다. 이제 10.1.자로 나는 3월에 이동한 근무지에서 만 7개월을 가득 채웠고, 1정 연수를 받기 시작할 무렵즈음부터 시작한 상담이 9월 30일자로 마무리되어 그 소회를 적어보려고 화면을 켜보았다. 이번 상담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바는 ‘내 마음공부’였고, 아무리 소중한 사람들이든지간에 남이 하는 말이나 내게 주어진 어쩔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들을 모두 차치하고, 내 내면의 욕구와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 주요한 바람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상담에서 내가 처한 어쩔 수 없는 현실과 내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역할들에 대해 서럽고 벅찬 마음을 많이 토로하고 슬퍼했던 것 같긴 하다. (머쓱) 그래도 그만큼 힘들었으니 어쩔쏘냐 싶기도 한 그런 마음이다.

주요하게 알게 된 나의 조각 중 하나는 나는 굉장히 관계지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할 때에도 떠오르는 많은 고민점은 나의 선택/미선택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감정적, 현실적 포함), 나의 선택/미선택이 추후 기존의 대인관계에서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한 예측, 나의 선택/미선택으로 상대방이 느낄 감정(실망, 기대, 질투 등), 나의 선택/미선택으로 인해 축소 또는 확장될 대인관계 등일 때가 많다는 것을 생각을 거듭하면서 알게 되었다.

더불어 사회생활 4년차인 지금의 나를 힘들게 하는 나의 조각 중 하나는 ‘과하게 내 책임으로 가져오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도 한 번 관련해서 글*을 썼던 것 같은데, 나는 상황이 얼어붙거나 분위기가 싸해지거나 나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기분이 상하거나 불쾌해지면 그 원인이 내가 아니더라도 내가 해결해주어야 할 과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그 원인을 어떻게 해서든지 나에게로 끌고 와 아무도 묻지 않는 책임을 혼자 지고 마음의 짐을 만들어 스스로 상처받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음식점을 갔는데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서 상대방이 불만족하고 불평하며 기분나빠한다면 나는 그 음식점을 찾아본(추천한) 나에게 잘못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곧잘 좌불안석이 되곤 했다. 또는 강아지가 간식을 허겁지겁 먹다가 사레들려서 켁켁 기침을 하며 힘들어 하면, 그 간식을 주고 또 장난으로 중간에 뺏으려고 했던 나때문에 강아지가 급하게 먹다가 걸렸다는 자책이 우선 떠오르고 마는 식이다. 어떤 자리에서 내가 힘들어서 이 일을 못하겠다고 말하게 되면 그로 인해 싸해지는 분위기를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혀서 웬만하면 그냥 내가 하고 말아버리는 것. 내가 못하겠다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상황은 벌어나지 않았을텐데 하고 생각하는, 그런 패턴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무엇이든 선택을 내리는 것이 내게는 정말이지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포커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영향력(relationship and influence)인데다가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나의 몫으로 끌고와서 책임을 지려고 하니, 그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 일이겠는가. 생각하다보니 이 얼마나 나에게 불공평한 처사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부정적인 결과(상대방의 부정적 감정, 싸해진 분위기, 갈등 등)는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치고, 그 결과가 이루어지기까지 수많은 요인들이 상호작용했을텐데도 또 나머지 요인들은 없는 셈치고, 오직 나의 말과 행동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니. ‘내가 다르게 말했었더라면, 내가 좀 더 빨리 행동했었더라면, 내가 더 강하게 말했더라면, 내가 좀 참았더라면’하고 생각하는 그 수많은 원인들은 심지어 일관성도 없다. 내가 무슨 카멜레온도 아니고 그 인과관계를 시시때때로 정확히 예측해서 내 말과 행동을 그때그때에 맞게 완벽히 조절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치면 그 자리에 같이 있던 다른 사람들은 있으나마나 하는 존재들이며, 오직 나만 그 상황을 바꾸고 타개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건데 그것 자체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힘들게 많은 가능성을 타진하고 어떤 영향을 미쳐서 어떤 결과가 이루어질지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끝에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한들, 모든 사람들의 칭송과 인정, 승인을 받을 수는 없다. 어떠한 비판이나 비난의 소리를 듣게 되면 또 다시 그 원인을 나에게로 돌려서 다시 replay를 하는 이 끝없는 쳇바퀴의 수레를 끊지 않으면, 앞으로 나는 더더욱 힘들어지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선택과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늘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나에게 이러한 면모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만으로 상담회기가 끝나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이 고리를 끊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알아차림’인 만큼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믿어보려고 한다.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다른 것들을 다 어쩔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과거의 내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말이 맞다. 벌어진 상황의 책임이 나의 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상황을 해결할지 소극적으로 두고 볼지도 나의 선택이며, 지금부터의 내 말과 행동은 내가 또다시 새롭게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와 영향은 다 알 수도 없고 또 다 내 책임만도 아니다.

계속 되뇌여야 겨우 될까말까한 알아차림을 앞으로는 좀 더 빈번하게 순간순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블로그에 끄적끄적 기록을 남겨본다. 나는 여전히 나를 잘 모르겠다. 나야말로 내가 평생 공부해 가야 할 분야가 아닐까 싶다. 또다시 외부로 에너지를 쏟기 보다는 나를 자꾸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과 역할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하니, 이것 또한 밸런스가 필요하겠구나 싶다. 인생도 포트폴리오로 꾸려가며 주기적으로 리밸런싱이 필요한 바구니가 아닐까하고.


*관련된 예전의 글(2022)

https://brunch.co.kr/@d952d66b6f774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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