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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쌤 Nov 13. 2024

일이 너무 많아

녹아내리는 중

[집안일과 바깥일]


10월 중순 경부터 업무가 미친듯이 몰아치고 있다. 일이 왜 이렇게 많지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업무 시간 동안 화장실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지나가는 이 시점이 되니 일이 많은 것에 대해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지금 당장 일이 너무 많은 것은 어쩌다보니(?) 내가 맡은 Wee센터의 업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10월, 11월에 몰아치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지난 수술과 다가올 수술로 일정 부분 안하던 집안일을 조금이나마 돕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안일과 바깥일(?)을 병행하면서 든 생각은, 집안일과 바깥일에 과연 경중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집안일을 소홀히 해오던 지난 시간 속에서는 내가 진로를 준비하고 설계하던 시점인 만큼 이제막 바깥일이라는 것을 새롭게 형성하고 꾸려가는 시기였기에 그럴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스스로 타당화를 해보면서도, 사실은 은연 중에 바깥일이 더 중요하고 위대한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야근하느라, 집안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 일을 하고 와서 피곤해서 집안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을 하느라 바빴던 지금까지의 나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잠시이든 길게이든 주부가 되어 집안일을 주로 하게 될 미래에 대해 걱정스러웠고 중요하고 위대한 그 바깥일을 나만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파워게임에서 밀리지는 않을까 나 스스로에게 불만족스럽고 위축되지는 않을까, 그러나 둘 다 동시에 잘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괴로웠던 것 같다.


아직 제대로 집안일을 해봤다고 말하기엔 멀었지만 조금의 집안일을 해보게 되면서 느낀 점은, 집안일도 바깥일못지 않게 위대하고 중요하고 오히려 내 삶을, 우리 가족의 삶을 지탱해주는 주춧돌같은 몹시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중요한 바깥일을 하느라 지치고 힘들어서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내 일상은 서서히 무너져가기 시작한다. 신을 양말과 닦을 수건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고, 바닥을 뒹구는 먼지와 머리카락 속에서 마음은 더 복잡해져 간다. 지저분하고 산만한 집안에서는 편안히 휴식할 수도 없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보자면, 사실은 집안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집안일은 나를 돌보는 일과 같은 맥락이라고 느껴졌다. 나를 돌보지 않고 남들이 요구하는 업무들을 해내는 데에만 치중하면, 지속가능할 수가 없다. 집안일을 하지 않고 바깥일만 해서는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니라는 말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쓸고 닦고 치우고 빨고 말리는 일련의 집안일은 나를, 또 내가 머무는 삶의 공간을 돌보는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집안일을 하며 내 삶을 가꾸고 꾸려가기 위해서 바깥일을 덤으로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전하고 쾌적하고 편안한 집에서 나를 돌보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까, 돈을 벌 수단으로 바깥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점차적으로 일과 진로라는 것이 참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일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아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패기넘치던 나의 학창시절에 비해서 월급쟁이가 되어 일을 시작한 지 4년차인 지금에는 일의 스펙트럼과 무게, 그 의미가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



[말하는 일]


지금 닥친 너무 많은 나의 일들에 내가 강사가 되어 강의를 하는 것과 다른 강사님의 강의를 지원하고 준비하며 연수를 운영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서 ‘말하는 일’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되짚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의 키워드로 빼보았다.

되돌이켜보면, 작년 이맘때쯤 모교 대학교에서 교직과정 교수님의 부탁으로 1회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교직과정을 이수 중인 후배들을 만나는 것이 긴장되고 ‘학생 정신건강의 실태와 학교 상담의 실제’라는 몹시 무거운 제목을 의뢰받고 고민이 많았지만, 스스로에게도 좋은 자극과 기회가 될 것 같아 수락했었다. 그 당시에도 학교에서 수많은 사안과 업무들에 치여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을 쪼개어 겨우겨우 준비해서 갔고 떨려서 심장이 마구 뛰었던 기억이 있다. 학교일로도 바쁜데 그 외로 마음과 정성을 들여 준비하면서 부담스럽고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정신 없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이 때는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대학생 후배들을 만나는 자리이다보니, 현장에서 내가 해 온 업무와 체감되는 현안들을 나누면서 내가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만큼 많이 성장했고 경험했구나를 스스로 오히려 더 느낄 수 있었고 뿌듯하기도 했었다.


올해에는 알고 지내온 선배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감사한 기회로 2회의 강의를 맡아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전국의 학교폭력 피해 전문 지원기관에 종사하는 상담자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피해 우수 개입 사례 소개’라는 더욱 어려운 주제로 의뢰를 받아 전보다 더더욱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기로 어렵사리 결정을 했다. 이전의 강의와는 달리, 아직 내가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보다 더 경력이 많으신 분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강의를 준비하면서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고민을 많이 하다가 내 모습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료이자 후배 상담자로서 가장 최근까지 학교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경험한 최근의 중요한 쟁점들이 담긴 사례들을 전국의 다양한 기관에 계시는 상담자분들께 소개해드리는 자리인 것으로 생각을 바꾸어 접근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조금은 마음이 차분해졌고, 더 나아가서 나중에 미래에 또 강의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때는 지금보다 성숙하고 무르익은 전문성과 연륜으로 나의 경험과 언행에 조금 더 자기확신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올해 Wee센터에서 맡은 업무에 100명 이상의 꽤나 큰 규모로 진행되는 역량강화 연수나 온라인 실시간 교사 연수 등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 있다보니 직접 강사님도 섭외해보고 또 강의 준비 과정을 돕고 지원하면서 1년간 강의-말하는 일과 밀접하게 지내오고 있는 것 같다. 강의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느끼는 것은 강의라는 말하는 일은 섭외가 들어오는 것부터 시작되므로 나 혼자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서 하는 것과는 달리 타인의 섭외 즉 선택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점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섭외기관의 요구와 필요에 맞추어 강의대상자-청자의 수준과 수요에 맞게 내용을 구성해야 하므로, 성공적 강의로 다음에도 이곳이든 다른 곳에서든 섭외를 받을 수 있는 강사의 역량에는 단지 당일 말을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섭외기관과 강의내용, 강의대상, 주의사항, 수요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잘 소통하는 것이 포함된다는 점이었다. 강의를 주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거나 대학 교수가 되어 대학생들에게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계속해서 타인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불안정한 시간들을 견디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여러 요구들에 맞추어가는 과정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넘쳐나서 강의를 한다기보다는 현업에서 차곡차곡 하루하루를 쌓아 나가 얻은 경험들로 나의 조언이 필요해 도움을 청해 오는 사람에게 적재적소에 알맞은 말을 해줄 수 있는 자문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려면 우선 지금 내게 우선인 것은 현재 나에게 주어지는 삶의 경험들을 온전히 느끼고 견디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하면서, 모든 것은 결국 돌고돌아 언젠가 어떻게든 내게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마음 속에서 얻을 수 있었다.


[소소한 대대]


어렸을 적부터 언어적 재능이 있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스스로도 말하고 쓰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나의 일에는 말하고 쓰는 일이 계속해서 포함되어 있으리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글쓰는 것도 취업과 함께 시작했으니, 어언 4년차 작가(?)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실제 가진 것보다 많이 과장되게 포장하고 꾸며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나의 현재 시점들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담아내어 기록하고 진솔하게 나누면서 그렇게 현재들을 모아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소소한’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서 청소년상담사 3급 합숙연수에서 집단상담 별칭으로 ‘소소’를 쓴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소소로 긴 시간 참여하며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진솔하게 나눈 뒤에, 친밀해진 구성원 한 분이 나를 소소가 아니라 ‘대대’라고 불러준 적이 있었다. 원래는 누가 나한테 대단하다고 하면 절레절레하면서 부담을 느끼기 일쑤였는데 그 때만큼은 마음이 따뜻했던 것을 보면, 처음부터 대대한 게 아니라 소소가 모여 대대가 되는 것은 마음에 퍽 들었던 모양이다. 소소한 것이 사실은 오히려 대대한 것이고, 소소가 모여 대대가 되는 것이라는 뜻으로, 소소한 대대라는 말을 만들어봤다.




일이 너무 많아서 화도 나고 지치고 힘들다는 감정에서 시작한 글이 이렇게나 길어졌다. 일에 대한 생각은 늘 현재 진행형으로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어서 앞으로도 종종 나누고 기록해보고 싶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은 일이 너무 많다.  녹아내리는 중.. 회계가 마감될 12월 둘째주까지 달려..무사히 Wee센터에서의 첫 해를 마무리지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수술과 건강회복도 부디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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