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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Wee record

각자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옳아

by rimmie

Wee센터에서 보내는 2년차,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서 느꼈던 점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지금도 예전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잊고 있었던 학교에서의 기억과 나의 고민들을 다시 볼 수 있어 좋듯이, 나중에 이 글도 다시 꺼내보면 나의 고민의 조각과 흐름이 다시금 떠오르겠지. 작년에는 처음 발령받고 와서 어떻게든 오자마자 타임라인에 맞춰서 일을 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올해는 1~2월에 1년치의 사업계획 수립에도 참여하고 업무분장 회의에도 자리할 수 있어서 조금은 준비된 마음으로 2025학년도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학교에 있을 때는 교육청의 각종 팀과 과에서 내려오는 이미 정해진 운영 계획을 숙지하고 그 속에서 학교현장에 맞게 내용을 내실화하고 적용하는 데 초점이 있었던 반면, 교육청 Wee센터에서는 학교를 대상으로 사업들을 좀 더 주도적으로 구상하고 계획할 수 있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야 할 때도 있고 가이드라인 또는 지침을 만들고 안내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다고 느꼈다. 학교에서는 학교현장을 제대로 모르면서 취지만 좋은 새로운 사업과 지침들을 만들거나 없애고 도움을 청해도 마땅히 해결해주지 않는 교육청에 답답함을 느꼈고 욕하기도 했었는데, 막상 교육청에 오고 보니 이곳도 사람이 일하는 곳이고 인력도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매 순간 찾아가고 있음에도 마냥 욕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미워지기도 했다. 또 학교에서는 잘 모르겠거나 불만이 있으면 교육청이나 다른 기관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건의할 수가 있었는데, 교육청의 Wee센터에서는 내가 그 질문과 건의에 답해야 하는 포지션이 되다보니 난처하고 곤란할 때가 많았다. 나라고 모든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니고 모든 의사결정을 만인에게 납득시킬 수도 없는 상황에서 특수한 상황에 대한 질의와 건의와 항의를 받고 답변을 해야 한다는 것은 꽤나 큰 압박감을 주었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쿵쿵 심장이 뛰기도 하고 답변을 해놓고도 '아 이렇게 이야기할걸' 후회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나는 같은 사람인데, 학교에 있을 때와 교육청에 있을 때 같은 상황임에도 이렇게 다른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하면서 각자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옳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다보니 학교나 다른 교육청에서 문의나 건의가 들어올 때, 현재 교육청의 상황에서는 수용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그들의 입장에서 어떤 것이 어렵고 이 건의를 하는 배경과 의도가 무엇인지 너무 이해가 되어버려서 그를 해결해주지 못하고 "어렵습니다, 불가능합니다"라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 나를 정말 힘들게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현재 교육청 Wee센터의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답을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고, 전화기 너머의 불만과 항의가 나라는 개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을 할 뿐이라는 것을 계속 되새기면서도 마음이 참 힘들었다. 교육청에 있어보니 학교마다도 상황이 다르고 학교 안의 구성원마다도 입장이 달라서 모두의 주장과 건의를 아름답게 수용하는 최고의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각자의 성향이 다르고, 하나의 상황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도 달라서, 한 쪽의 입장만을 취할 수도 없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는 상위기관의 난처한 입장도 이제는 알아버리게 되었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전부 다 안된다고, 어쩌면 모두에게 해당 부분은 안된다고 답을 할 수밖에 없고 또 해야 하는 입장이 바로 이 자리라는 것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교육청에서는 또 일방적으로 정책을 내려보내거나 자체적으로 지침을 만들라고 하는 교육부를 욕할 수밖에 없는데, 이쯤되니 교육부에서 일해보면 또 그 나름대로 사정과 상황이 있겠지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가도 나도 사람인데 모두를 이해만 해서는 비난할 수도 욕할 수도 없고 결국 나만 힘들고 말텐데 억울한 심정도 들었다. 그래서 그냥 어쩔 수 없구나, 업무상 나의 자리에 오는 항의와 민원은 나라는 사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고 계속 되뇌이고 나도 내 자리에서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들은 다른 업무상 자리에 항의하고 건의할 수도 있는 것이구나,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 살 수밖에 없고 또 그러지 않고는 살아낼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힘들면서도 이렇게 다양한 입장에 앉아보는 경험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주고 나의 입장에만 매몰되어서 억울하고 피해받았다고 느끼는 상황들을 줄여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나만 옳다면 그로써도 억울할 것이고, 다들 다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는데 나는 힘들어서는 안된다고 채찍질하면서 남들은 이해하고 나만 소외시켜도 그 또한 괴로울 것이기에. 이 힘든 시야의 확장을 나의 경험으로 잘 흡수해낸다면, 모두를 이해하면서도 나또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해주면서 그 어느 때보다 내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그리고 반대로 여러 유형의 건의와 민원을 들어보면서, 같은 내용이더라도 단지 불만과 부정적 감정만 늘어놓기보다는 교육청의 상황에 맞는 대안도 함께 제시하는 건의가 수용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도 배웠다. 올해 맡은 담당업무에 프로그램 개발이 있어서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최소한의 개발로직에 대해 배울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나이스 시스템에서 오류를 발견해서 나이스 광장에 오류사항 질의를 올리고 대안을 제시하였고 그대로 수용되어 기능개선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일이었겠지만 내게는 큰 뿌듯함을 준 경험이었다. 사실 가장 편한 방법은 민원과 건의와 의견과 경험을 듣는 창구를 최소화하고 일방적으로 top-down의 전달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은 힘들고 번거롭고 어렵지만 현장의 목소리와 의견을 경청하고 가능한 것은 수용하여 변경하고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기에, 적어도 내 자리에서 내가 맡은 업무에서는 소통을 하고자 노력하다보니 이러한 일련의 힘든 감정들을 느꼈던 것 같다.


탁상행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의 현장과 행정의 현장이 서로 소통하고 머리를 맞대고 자주 의견을 주고받아야 한다. 서로 배척하고 욕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발전과 성장과 포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이려나. 아직 정답은 모르겠지만, 각자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옳은 것이다. 그래서 각자가 다 나만 옳다고 외치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옳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서로를 향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코 앞만 봐서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더라도 멀리 거시적으로 보아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어떤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덜 위험하고 더 유익한지 같이 논의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건 너무 거창하니까, 나는 나부터, 내 자리에서부터, 내 업무에서부터 작은 변주를 주어가면서 그렇게 내 가치를 지켜가볼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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