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에는 항상 아이들과 남편이 먹을 국이나 찌개를 끓여 놓고 나온다. 어떨 때는 아무것도 해놓고 나오지 못할 때도 있는데 웬만하면 뭐라도 해놓고 나오려고 노력한다. 날이 추워지면 딸들은 유난히 따뜻한 국물을 찾는다. 아침에 따뜻한 국과 밥을 즐겨 먹는다. 딸들이 좋아하니 피곤해도 해주게 된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을’이라고 하더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오늘은 된장찌개를 끓였다. 아니, 된장찌개와 청국장 사이를 끓였다고 해야 맞는 걸까? 딸들은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남편은 청국장을 좋아한다. 된장찌개를 하면 남편이, 청국장을 하면 딸들이 마음에 걸린다. 한 가지 딱 정해서 강단 있는 요리를 하면 될 것을 유독 이 두 가지 메뉴에서는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요리에 ‘요’자도 모르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기도 하다. 찌개를 끓이기 전 냉장고를 뒤져보니, 예전에 시어머니께서 주신 청국장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지난번에 다 먹고 청국장이 담겨있던 병을 분리수거한 것이 생각이 났다. 얼마 전 사두었던 시판 된장과 청국장, 그리고 어머님이 주신 집된장을 섞어 찌개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청국장에 고기를 넣지 않고, 두부와 호박 고추만 넣어서 만드신다. 어머니의 청국장을 먹으면 담백하고 건강한 맛이 난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부대끼지 않는다. 나의 청국장에는 쇠고기, 호박, 양파, 조갯살, 두부까지 모두 들어간다. 있는 것 다 때려 넣는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친한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언니가 조갯살을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 줘서 먹어보고 반해서 나도 된장찌개에 조갯살을 넣게 되었다. 냉동이지만 쫄깃한 맛이 식감을 풍부하게 해 주어서 딱 마음에 든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좋아한다.
저녁에 잠시 쉬는 시간이 있어 집에 다녀왔다. 남편은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와서 소파에 퍼져 있었다. 온 김에 저녁을 차려 주고 가려고 밥 먹겠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있다가 먹겠다고 했다.
“된장에 청국장을 풀었어”
누워있던 남편이 웬일로 청국장을 끓였냐며 슬며시 부엌으로 오더니 찌개를 데우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찌개를 보고 불을 껐다. 국그릇에 찌개를 몇 국자, 밥 한 그릇을 떠 오더니 호로록 소리를 몇 번 내고 식사를 끝냈다. 남편은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설거지까지 끝냈다. 남편이 식사를 끝내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학원으로 왔다.
저녁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딸들이 나를 반기며 오늘 찌개가 정말 맛있었다고 했다. 딸에게 청국장 맛이 나지 않았냐고 물었다. 딸은 이제 청국장 맛이 익숙해진 것 같다며 앞으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집에서 수업할 때는 청국장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내가 상가로 나간 후에야 우리 집은 청국장 끓이기가 허락된 집이 되었다. 정석대로 끓이는 청국장은 가족 모두가 즐기기에 힘들다. 된장 반, 청국장 반, 된장과 청국장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상태가 되어야 가족 모두의 입맛에 맞출 수 있다. 어떻게 만들었든 모두에게 만족감을 주었으니 오늘의 찌개는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