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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Nov 30. 2022

나의 컴퓨터


2020년,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남편이 노트북을 새로 사주었다. 과제를 하려면 나의 전용으로 쓸 컴퓨터가 반드시 필요할 거라며 공부해야 할 나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남편의 말처럼 입학 후 새로 산 노트북은 나의 좋은 공부 파트너가 되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자료가 새 노트북에 담겼고, 이제는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일주일 전, 잠시 수업이 비었을 때 학원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갑자기 노트북 화면이 느려지면서 배터리를 충전하라는 안내 메시지가 뜨더니 그대로 꺼졌다. 분명 어젯밤에 휴대전화를 충전하면서 노트북도 함께 충전하고 잤는데 배터리 충전이 되지 않았다니 당황스러웠다. 노트북 충전기가 집에 있어서 학원에서 당장 충전이 불가능했다. 좀 전까지 쓰던 글을 날아갔다고 생각하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 가서 다시 쓰자고 마음먹었다.     



퇴근 후, 노트북부터 충전기와 연결했다. 충전기와 노트북을 연결하니 바로 화면이 켜졌고 날아갔다고 생각했던 글도 그대로 화면에 재생되었다. 그런데 노트북과 충전기를 연결해도 충전이 되지 않았다. 충전기가 이상이 있나 싶어 충전기 어댑터도 새로 사서 꽂아 보았지만 충전기 문제가 아닌 듯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배터리 수명이 다 되어서 그럴 수도 있으니 가까운 서비스 센터를 찾으라고 했다. 노트북은 충전기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겨우 화면이 켜지니 서비스 센터를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동네에는 내 노트북 브랜드의 서비스 센터가 없다. 차로 30분쯤 나가야 있어서 시간을 따로 내야 했다. 추석 연휴가 끼어있어서 당장 갈 수가 없었다. 급한 건 휴대전화로 처리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요즘은 휴대전화가 컴퓨터와 같은 역할을 하니 큰 불편함은 없었는데 매일 글 써 놓은 것들이 날아갈까 봐 조마조마했다.     

오늘 드디어 남편과 함께 서비스 센터를 찾았다. 마음이 급해서 일찍 움직였더니 순번이 1번이었다. 서비스 센터의 업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였다. 노트북의 문제점을 직원에게 이야기하고 기다렸다. 15분쯤 지나니 직원이 나의 이름을 불렀다. 직원은 화면이 켜지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사설 업체에 가서 안에 있는 자료를 복구시켜 다른 곳에 옮겨 다시 오던지, 안에 있는 자료를 다 포기하고 다시 ‘윈도’를 깔지 결정하라고 했다. ‘자료 포기’라는 말에 화가 치밀었다. 만화에 대략 난감인 상황을 표현할 때 인물의 얼굴에 빗금이 쳐지는 것처럼 내 얼굴에도 빗금이 쳐지는 것 같았다.      



나는 77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매일 글쓰기를 했다. 2020년 8월 1일부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2020년 8월 1일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 휴가를 가서 첫 글을 올렸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한다. 2021년에도, 2022년에도 여름 휴가지에서 글을 쓰는 일은 여전했다. 놀면서도 글쓰기에 정성을 쏟은 나에게 자료를 포기하라니. 물론 서비스 센터 직원이 내 컴퓨터를 고장 낸 것은 아니다. 스스로 해결이 되지 않으니 서비스 센터를 찾아온 것인데 자료를 다 날리라 하니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사설 업체는 또 뭐란 말인가!     



남편이 노트북을 이리저리 만져 보더니 직원에게 컴퓨터 자체에서 업데이트를 하고 있으면 컴퓨터가 안 켜질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직원은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남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업데이트가 되고 있다는 메시지가 컴퓨터 화면에 떴다. 직원도 당황스러워했다. 나는 배터리가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배터리 교환만 해줄 수 없냐고 물었다. 업데이트가 끝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컴퓨터 업데이트가 끝나고 직원이 컴퓨터 화면에서 배터리 수명 상태를 보더니 배터리 문제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순간 어찌 남편보다 모를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직원이 그 회사의 모든 기계를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배터리 교환 가격은 12만 원이었다. 내 글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12만 원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쓴 글들에 이렇게 애정이 깊다니. 데이터 복구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것 같은 슬픔이 느껴졌다. 글 쓰는 일은 이미 습관을 넘었다. 이제 매일 쓰지 않으면 찝찝한 마음이 든다. 여태 지켜온 시간들이 아까워 쉬지도 못한다. 그 시간이 모여 출간에도 도전하는 용기가 생겼다. 좋은 습관이니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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