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딸과 나의 둘째 딸은 ‘절친’이다. 학기 중에는 토요일에만 가던 컴퓨터 방과 후 수업을 방학 때는 토요일에 가지 않고 주중에만 가게 되었다. 방학 동안 둘은 매일 만나 컴퓨터 수업을 들으러 갔다. 컴퓨터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각자 다니는 학원에 가야 하니 제대로 놀 시간도 없었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개학이라 실컷 놀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목요일에는 다른 날보다 수업이 늦게 있는 날이다. 지난 화요일부터 목요일에는 학원 가기 전까지 조금 놀자고 했다. 아이들은 내 말을 듣고 설레 했다. 사실 컴퓨터 수업이 끝나면 놀 수 있는 시간은 딱 두 시간밖에 되지 않는데 기대를 하니 좀 당황스러웠다.
드디어 목요일, 방과 후 마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마칠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저 멀리서부터 실내화 주머니를 흔들며 내게로 왔다. 이미 한껏 신나는 중인 것 같았다. 나는 별것 없는 오늘의 코스를 아이들에게 공지했다. 첫 번째 코스는 짜장면 먹기였다. 아이들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짧은 시간에 메뉴를 요래조래 바꾸면서 수다를 떨었다. 친구 딸과 나는 간짜장을 먹고 둘째 딸은 새우볶음밥을 먹었다. 딸은 제일 비싼 거 시켜놓고 제일 많이 남겼다. 먹을 만큼 먹고 숟가락으로 남긴 밥을 사방으로 흩뜨리더니 이렇게 하면 조금 남아 보여서 사장님이 기분 안 나쁠 거라고 한다. 밥을 다 먹고 일어설 때 친구 딸이 의자를 식탁 안으로 싹 밀어 넣었다. 딸도 그 모습을 보고 따라 하며 둘이 재밌다며 웃는다. 자리 정리도 잘하니 이제 다 키운 것 같다.
두 번째 코스는 ‘다이소 쇼핑’이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여자 사람은 다이소에 가면 좀비가 된다. 다이소에 들어가면 아무 생각 없이 바구니에 담게 되니 다이소 좀비라고 한다. 아이들이 필요한 물건을 담았다.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문구류 코너이다. 집에 필통이 열 개가 넘는데도 필통 진열대 앞에 서 있는 걸 보니 잔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느새 짐이 한가득 되었다. 아이들은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는지 더 신나게 재잘거렸다.
다음 코스는 소품 가게였다. 예정에 없던 코스였는데 밖에서 보니 예쁜 것들이 많아서 들어갔다. 다이소엔 없는 귀엽고 예쁜 소품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캐릭터 양말을 하나씩 사고 사실 별로 꽂을 일 없는 머리핀을 하나씩 샀다. 서로의 머리에 핀을 꽂아 보며 재밌다며 낄낄대는 모습이 귀여웠다.
마지막 코스는 후식을 먹을 차례였다. 딸이 후식까지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오늘은 엄마가 풀코스로 쏠게”라고 했더니 뭔 말인지 몰라서 눈이 가늘어진다. 잘 모를 때 딸이 짓는 표정이다. 친구 딸이 “다 사준다? 이런 뜻인가 봐”라고 해석을 해주었다. 그때서야 딸은 “아~”한다. 커피숍에 도착해서 아이들은 각자 원하는 음료수를 시켰다. 아침과 밤은 꽤 시원해졌지만 낮은 여전히 더위가 느껴졌다. 시원한 음료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으며 오늘 산 물건을 하나씩 꺼내 구경했다. 음료수를 먹으면서 둘이서 손장난을 하며 깔깔댔다. 아이들 학원 갈 시간에 맞춰 놓은 휴대전화 알람 시계가 울렸다. 아이들은 벌써 갈 시간이라며, 금방까지 깔깔대던 웃음을 멈추며 걸음을 터덜터덜 걸었다.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놀다가 학원 가는 게 너무 싫었을 텐데 싫은 티 아주 조금만 내고 자기 할 일 하러 가는 아이들이 참 예뻤다. 초등학생 아이들도 많이 바쁘다. 종일 학원만 돌다가 집에 간다. 예전처럼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가 많이 없다. 아이들도 자기들만의 문화에 젖어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고 따라 한다. 요즘은 친구 만나려고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던데 유행도 학원에서 생기는 모양이다. 실컷 이것저것 사주며 돈 썼더니 풀코스가 뭐냐며 되물으며 가느다랗게 눈을 뜨는 딸의 얼굴이 생각나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