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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Dec 06. 2022

지금 막 출발했습니다

 

     오랜만에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언니들을 만났다. 한 명은 늦깎이 신입생이었고, 한 명은 복학생이라 나이 차는 나지만 같은 학기에 수업을 듣게 되어 친하게 지내던 언니들이다. 코로나로 자주 만나지 못하고 통화로만 소식을 전하다가 셋이서 함께 모이게 되었다. 한 언니의 집에 모이기로 해서 다른 언니 한 명과 만나서 함께 이동했다. 우리 집에서 언니 집까지의 거리는 같은 지역이지만 자동차로 가도 40분 이상이 걸리는 거리였다. 공교롭게도 비까지 내려서 더 만남이 늦어진 상황이었다. 언니들과 만들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였다.      



     집으로 초대해 준 언니는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 안 정리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우리가 간다고 하니 분주하게 집을 정리하고 청소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집에 누군가 온다고 하면, 있는 그대로 보여주긴 그랬을 것이다. 같은 주부의 입장으로 충분히 이해한다. 아파트 입구가 여러 군데여서 입구에서 조금 헤매긴 했지만 길눈이 밝은 언니가 있어 비교적 순조롭게 도착할 수 있었다. 출발할 때 사 간 커피와 빵을 먹으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시간은 금세 지나가 버렸다.      


     이른 점심을 먹어야 수업 시간에 늦지 않을 수 있었다. 서둘러 배달앱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제일 빠르게 올 수 있는 중국집에서 시켜 먹자고 했는데 초대해 준 언니가 집에까지 왔는데 그럴 순 없다며 초밥을 시켜 주었다. 여유를 두고 주문을 한 거였기 때문에 먹을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시간이 다 돼 가도록 주문한 음식이 오지 않았다. 1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주문한 음식점에 전화해 보았다. 아파트 이름과 동, 호수를 이야기하니 금방 출발했다고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다. 어느 식당이든 주문한 음식이 오지 않아 전화하면 항상 ‘금방 출발했다’고 한다. 음식 준비가 늦어져서, 배달이 늦어졌다고,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인데 꼭 약속한 듯이 그렇게 말한다. 금방 출발했다고 해놓고서는 금방 오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내가 ‘아직 출발 안 했나 보군’이라고 했더니 함께 있던 언니들도 본인들도 많이 겪어 봤다며 내 말에 동의했다.      


      전화를 끊고 30분이 지나도 음식이 도착하지 않았다. 다시 음식점에 전화를 걸려고 휴대전화를 여니 우리를 초대한 언니에게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음식을 집 앞에 놓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배달 기사는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았다. 문 앞에 두고 가라는 메시지를 적지도 않았는데 초인종을 누르지 않은 배달 기사 덕에 점심시간이 더 늦어졌다. 우리는 음식을 주문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짜증이 났지만 빨리 먹어야 일어날 수 있었다. 언니가 사 준 밥을 여유롭게 즐기며 먹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현실은 허겁지겁 물 마시듯 밥을 삼켜야 했다. 우리를 초대한 언니는 언니가 미안할 일이 아닌데 자꾸 미안하다고 했다. 시간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면 이해했을 일이지만 촉박한 상황에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화가 난다. 결국 음식점에도 배달 기사에게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여유가 없었던 탓이지라고 생각하니 또 마음이 평온해졌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불쾌함을 꿀꺽 삼켜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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