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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Feb 12. 2023

마음이 작아질 때마다 펼치는

몇 년 전 엄마는 무릎 수술을 일 년 사이에 3번이나 했다. 식당을 혼자 운영하던 엄마는 가냘픈 무릎이 상하는지도 모르고 일만 했다. 엄마의 식당은 손님이 앉는 자리까지 가려면 높은 턱을 딛고 올라서야 했다. 턱은 길이가 50cm쯤 되었다. 가게 인테리어를 엄마의 먼 친척분이 했다고 들었다. 엄마가 젊었을 때는 그 턱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지 몰라도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을 때는 엄마에게 부담스러운 턱이 되었다. 나도 그 턱을 넘을 때면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엄마는 오죽했을까. 어느 날부터인가 턱 아래에는 넓은 벽돌이 놓였다. 턱에 올라서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는 돌이었다. 그 돌이 생긴 후에는 ‘헉’하는 소리가 덜 나왔지만 또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는 디딤돌도 소용이 없도록 엄마의 무릎에 신호가 왔다.      



나는 엄마가 수술하러 들어간 수술실 앞에 앉아 있었다. 가족 중 엄마의 수술 날에 온전히 하루를 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수술실 앞에서 엄마는 이동 침대에 누워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엄마, 수술 잘하고 와.”     

늘 씩씩하던 엄마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누워있는 걸 보고 있으니 내 말이 종이 인형처럼 흔들거렸다. 엄마는 하하 크게 웃었다. 긴장된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웃는 일뿐이었다. 엄마의 손을 꼭 한 번 잡았다. 엄마의 손이 차가웠다. 나는 긴장하면 손, 발이 차가워지곤 하는데 엄마를 닮았나 보다. 엄마의 차가운 손은 엄마가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엄마가 수술실로 들어간 후 수술실 앞 안내 화면에 ‘정〇남님, 수술 준비 중’이라는 메시지가 뜨다가 곧 ‘정〇남님, 수술 중’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엄마의 긴장된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내가 더 긴장되었다. 자꾸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고, 목이 말랐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던 시기라 마스크를 벗고 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도 없었다. 사람들이 없는 계단 통로로 가서 물을 마셨다. 물을 많이 마신 탓인지 계속 화장실에 들락거렸다. 1시간쯤 지나자 서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꽤 많은 보호자가 내 앞과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더니 엄마 나이쯤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통화를 하며 수술실 복도로 들어섰다. 아주머니는 통화를 하며 주변을 살펴보더니 내가 앉아 있던 맞은 편에 앉았다. 통화 내용을 듣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아주머니가 가까이 앉아 있어서 통화 내용이 그대로 들렸다. 아주머니는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데 딸이 수술해야 해서 왔다고 했다. 집에 남편만 두고 왔는데 밥이라도 제대로 챙겨 먹을지 모르겠다며 걱정이었다. 사위가 휴가를 냈으면 좋았을 텐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단다. 아주머니는 딸의 병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일주일쯤 꼼짝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아주머니의 표정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위로의 말을 건넸는지 ‘고마워’라는 말을 드문드문했다. 아주머니의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다. 아픈 사람을 수술실로 밀어 넣고 기다리는 사람의 초조는 일 분을 한 시간처럼 느껴지게 하는 마법이 되었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수술을 마칠 예정된 시간은 멀리 있다. 불안감으로 자꾸만 마음이 작아졌다.     



책이라도 읽으면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아서 책을 한 권 가지고 갔다.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라는 책이었다. 책에 써진 것에 의하면 박완서 작가는 밤에 글쓰기를 즐겼다. 밤에 쓰는 글은 맛난 것을 아껴 가며 핥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런 밤 글쓰기가 더욱 맛깔나게 느껴지는 건 남편의 코골이 소리 덕분이라고 했다. 바닥에 엎드려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쓰는 일은 편안함을 준다면서. 규칙적인 코 고는 소리가 있다면 여왕님이 팔자를 바꾸자고 해도 바꾸지 않을 만큼 행복함을 느낀다며 오래도록 행복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코 고는 소리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결혼 전에 엄마가 늦은 시간까지 식당 일을 하고 들어오면 엄마는 녹초가 된 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반쯤 열려 있는 엄마의 방문 사이로 ‘아이고’ ‘아야’하는 앓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잠의 세계에 입문하며 노크하듯 선잠이 들었다가 이내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엄마의 코골이가 시작되면 엄마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는 증거였다. 엄마가 끙끙 앓는 소리가 평소보다 길게 나는 날이면 나는 불안했다. 어떤 날은 엄마가 근육통에 시달리다가 앓는 소리를 내며 잔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더 아플까 봐 걱정되었다. 엄마는 새벽 4시면 일어나 식당으로 갔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는 이미 출근하고 없어서 밤새 끙끙 앓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엄마 어디 아파? 왜 밤새도록 끙끙 앓았어?”

“내가 그랬어?”     


엄마는 내가 전화하면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생선이 탄다며 전화를 빨리 끊었다. 그럴 때면 또 무사히 하루가 지난 것 같아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가 결혼한 후에도 엄마에게 전화하면 생선을 굽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생선을 굽고 있느냐는 질문이 엄마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가 되었다.     



엄마가 70살이 되면서 엄마의 몸은 고장 난 신호를 한꺼번에 보내왔다. 눈이 아파서 양쪽 눈 수술을 하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결국 무릎 수술도 했다. 내가 안도의 숨을 쉬었던 수많은 날의 후폭풍을 맞는 것 같았다. 엄마를 수술실에 보내 놓고 읽은 박완서 작가의 책에서 엄마의 편안했던 밤의 코골이가 떠올랐다. 멀고 먼 추억에 있는 엄마의 코골이 소리는 엄마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눌러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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