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잠시 비정규직으로 일했을 때가 있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시린 기억이다. 그날은 설 명절이 시작되기 하루 전이었다. 사무직 전체에서 비정규직은 나 혼자였다. 명절이라 회사에서 명절 선물이 나왔다. 정직원들에겐 백화점 상품권이 나왔고 비정규직은 2단으로 많은 생필품이 들어있는 선물 세트가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무직 사람들은 내가 비정규직이었다는 걸 잘 몰랐다. 내 몸의 반을 차지할 것 같은 선물 세트를 받고 퇴근 준비를 했다. 옆에서 함께 일하던 정규직 언니는 작은 가방 속에 상품권을 쏙 넣었다. 언니는 오늘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 언니와 함께 통근 버스가 세워진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사람과 커다란 선물 세트를 받은 사람들이 통근 버스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확실히 보이는 풍경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선물 세트를 들고 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어머, 너 계약직이었어? 나는 네가 정규직인 줄 알았는데….”
실험실에서 일하는 동갑내기인 친구가 나를 보며 말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뒤돌아보았다. 사람들이 어떨 때 쥐구멍을 찾는지 알 거 같았다. 나는 그 상태로 완전히 증발해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 붉은 덩어리가 쑤욱 올라왔다. 다른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게 민망했다. 속마음과 다르게 나는 바보 같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곁에 있는 언니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통근 버스를 타고 언니와 저녁 먹기로 한 장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니는 나를 치킨집으로 데리고 갔다. 곧 치킨 한 마리와 하얀 거품이 이글이글하게 올라온 맥주 두 잔이 언니와 나 사이에 놓였다. 평소 술을 안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날은 왠지 술을 한 잔 마셔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맥주를 벌컥 마셨다. 내가 맥주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자 언니도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언니의 작은 가방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이거 받아.”
“이게 뭐예요?”
나는 언니가 내민 봉투를 열어 보았다. 언니가 받은 상품권 중 일부가 들어 있었다.
“언니, 이걸 왜 저한테 줘요? 전 못 받아요.”
“아냐. 받아. 네가 받아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 우리 같이 일하는데 같이 받아야지. 반 나누기 좋게 두 장 들어 있네.”
눈에서 뜨거운 것이 줄줄 흘러내렸다. 고마움과 민망함, 그리고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나의 자존심까지 그 뜨거운 것에 보태져 얼굴 전체를 뒤덮었다. 목젖 안에서 감당할 수 없는 서러움까지 밀려와 꺼이꺼이 목울음을 울었다.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맥주 한 잔과 치킨 한 마리가 사라질 때까지 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회사에서 나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더 좋은 조건이 보장된 곳에 가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6개월 뒤, 여름이 다가오던 즈음에 그 회사에서 퇴사했다. 언니는 내가 더 좋은 곳에서 일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퇴사는 했어도 언니와는 가끔 연락하며 지냈다. 그 회사에서 유일하게 나의 처지를 알고 보듬어 준 사람이었다. 그 사이 언니도 나도 결혼했다. 아이도 둘씩 낳았고 서로 출산하면 찾아가 축하해 주기도 했다. 나는 남편 회사 사택으로 이사하느라 시골 동네로 이사 왔고 언니는 번화가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을 때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니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 왔다. 아이 키우느라 일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연락을 통하지 못하던 시기였는데 언니가 먼저 전화를 걸어주니 반갑고 고마웠다. 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아이들 교육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언니는 집 근처에 있는 학습지 회사에서 영업직 교육을 받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 교육을 받아 보라고 했다.
“언니, 저는 지금 하는 일이 있으니 다음 기회에 받을게요.”
“지금이 기회야. 너, 아이들도 너처럼 살게 키울래?”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처럼 산다는 게 어떤 거길래, 내가 어떻게 사는 것처럼 보이길래 언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할까? 순간 뒤통수 테러를 당한 듯 멍해졌다. 내가 멈칫하고 말을 하지 않으니 언니도 당황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너 지금 사는 곳이 시골이니까 아무래도 교육적으로 안 좋잖아. 애들 잘 키우려면 시내로 나와야지. 언제까지 거기서 살 거야? 언니가 걱정돼서 그래.”
언니의 걱정은 이해했다. 학원이 많고 교육하기 좋은 곳에서 살기 좋은 걸 누가 모르겠는가. 언니가 내 마음 상하게 하려고 한 말이 아닌 것을 안다. 같이 회사에 다닐 때도 따뜻하게 보듬어 준 사람이 바로 언니였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 번화가가 아니고 시골인 곳에 살고 있어도 잘 살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는 집과 동네가 누가 보기에도 번듯하면 좋겠지만 시골에 살아도 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언니와 전화를 끊고 오래도록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남들이 보기에 잘 사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걸까? 내 마음에만 만족하며 사는 건 안 되는 건가?
김은덕 백종민 작가는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에서 습관에 관해 이야기했다. 좋은 습관을 하나, 둘 늘려가고 나쁜 습관을 하나둘 없애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가까워지는 거라고. 마음이 흔들릴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책을 읽는다고 했다. 독서는 자신을 위로하는 치유의 과정이며 머릿속으로 천천히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책에서 그 답을 찾았다. 책에 써진 많은 말에 나를 대입하고 어떻게 하면 그 답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좋은 동네에 살고, 좋은 집에 사는 게 모든 성공의 기준은 아닐 거다. 나는 언제나 흔들리기 쉽고, 상처받기 쉬운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매일 책을 읽으며 나를 다잡아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언제나 책은 나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고, 실패를 줄일 수 있게 해 주었다. 내 실수와 잘못된 생각의 틈으로 책에서 보았던 많은 글이 나의 뿌리를 단단하게 지탱하게 해 주었다.
책을 사서 읽는 것이 가장 저렴하게 나를 일으키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틈틈의 시간을 독서로 채우는 내가 꽤 현명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를 이끌며 사는데 책은 꽤 똑똑한 역할을 해주었다.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며 사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집중하는 게 남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것보다 훨씬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더는 남의 말에 휘둘리며 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