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키우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을 ‘그린핑거’라고 한다. 나의 시어머니는 ‘그린핑거’다. 시가에 가면 베란다에 식물이 가득한데, 식물마다 시든 존재가 하나도 없다. 시어머니의 식물들은 모두 잎을 반짝거리고, 겨울에도 꽃을 피운다. 어머니께 비법을 여쭈어 보았다.
“글쎄다. 비법이랄게 있을까? 천 원 가게에 파는 영양제를 사 두고 필요할 때마다 주는 것 뿐인데….”
시어머니는 무심한 듯 대답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하신 말씀에서 정답을 찾았다. 매일 식물을 살피고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이 시어머니가 ‘그린핑거’가 된 이유이다. 어머니는 매일 베란다에 식물들을 보며 알아차린 거다. 시들어 가는 화분이 없는지, 물이 부족한 화분이 없는지, 충분히 시간을 두고 관찰하셨을 거다.
첫째 아이를 낳고, 육아와 살림에만 전념하며 전업주부로 살고 있을 때, 점점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좁은 집 안에서 작고 고운 생명에게 내 모든 감각을 쏟아냈다. 밤이 되면 종일 바쁜 시간을 보냈음에도 의미가 없게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아이가 뒤집고, 기고, 앉고, 서고, 걷기까지 모든 과정은 경이로웠지만 허한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육아와 살림은 월급으로 계산되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전 아나운서 이금희는 어느 신문 기사에서 한 일화를 소개했다. 이금희 아나운서는 KBS에서 18년 동안 ‘아침마당’을 진행하느라 매일 아침 새벽 출근을 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하차 통보로 새벽 출근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알람 설정을 하지 않았더니 9시에 일어나게 되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몸에 배어 일을 그만 두었어도 자동으로 눈이 떠질 줄 알았는데 늦잠을 잤다. 이금희 아나운서는 자신을 철저한 ‘월급형 인간’이라고 했다. 월급이 들어와야 몸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월급형 인간’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 같다. 종일 일하고 지치도록 일했음에도 표시도 인정도 못 받는 것 같은 좌절감을 맛보았으니 나 역시 ‘월급형 인간’이 아니었나 싶다.
지친 내 하루를 건져 올려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그 수단으로 밖에 나가지 않아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책 읽기를 택했다. 아주 잠깐씩 읽다가 마는 과정이 반복되었어도 자꾸 책에 손이 갔다. 책을 쓴 작가가 수없이 인생의 허들을 넘었던 순간을 읽으며 공감했다. 그리고 위로받았다. ‘나보다 더 힘들었던 사람도 있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내 지루한 날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조금씩 자라게 했다. 시어머니가 식물을 관찰하며 사랑을 주었던 것처럼 나도 나 자신에게 조금씩 책이라는 영양분을 쏟아부었다.
황보름 작가는 《매일 읽겠습니다》에서 ‘공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공감하기 위해 책을 읽고, 공감받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남에게 헤아림을 받고, 남을 헤아리는 경험은 인간의 개별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더 많이 공감받을수록 더 많이 공감할수록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고 했다.
나도 책을 읽으며 많은 공감을 받았다. 책에 나온 단어들이, 문장들이 나의 몸속 깊은 곳에 와 닿아 미세한 감각들과 만남을 이루었다. 어느 날은 문장 하나에 마음이 꽂혀 종일 그 문장을 되새기며 흐뭇해했다. 그 문장들이 담긴 책을 내가 발견했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비용으로 따지면 만 원이 좀 넘는 책이 한 달을 열심히 일하고 받은 월급의 가치와 맞먹을 정도의 성취감을 느꼈다.
겨울이 지나는 길목에 ‘입춘’이 온다. 아주 깊은 땅속에서 얼어붙은 많은 불순물을 이기고 가장 뜨겁게 입춘이 온다. 그 땅에는 많은 새순이 깊이 몸을 숨겼다가 어느 날, 선물처럼 ‘짜잔’하고 나타난다. 책은 내 마음의 얼음을 깨고 반가운 손님처럼 다가왔다. 나를 향해 숨 쉬는 언어를 가득 안고,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