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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Mar 27. 2023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첫 책을 출간하고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줬던 사람 중에 나의 보물, 나의 아이들이 있었다. 딸들이라 그런지 평소에도 아빠 엄마에게 살갑게 구는 아이들이었다. 책을 직접 받으니 벅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아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 책이 나왔다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꽤 한 모양이었다. 둘째는 학교에 책을 매일 가져갔다. 둘째가 내 책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첫 장부터 자신의 이야기가 나와서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아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고민을 첫째 아이의 조언으로 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둘째는 그 일을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언니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 일화가 책으로도 나오니 어깨가 으쓱해진 것 같았다. 둘째의 친구들도 내 책을 사서 읽어 보는 친구가 있었다. 둘째는 친구가 엄마 책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 읽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매일 집중하며 글 쓰던 엄마가 더욱 자랑스럽게 여겨졌다고 했다.

일이 늦게 끝난 어느 날이었다. 집에 들어가니 아이들은 숙제를 마치고 이를 닦고 있었다. 별일 없었던 듯 내게 인사를 하고 둘째는 잠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웬일인지 큰아이는 자러 들어가지 않고 공부방에 남아 앉아 있었다. 무얼 하는가 싶어 공부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자지 않고 왜 공부방에 들어와 있는 거야? 내일 학교에 가려면 일찍 자야지.”

“엄마, 연재 오늘 학교에서 기분 안 좋은 일 있었대.”

“왜? 무슨 일?”

“자기 반에 어떤 애가 있는데 그 애가 엄마 책에 써진 연재 이야기를 보고 왕따 당한 거 자랑하려고 책에 쓴 거냐고 비꼬듯이 다른 친구한테 뒷담화했대.”

“….”

“분명 왕따 당한 내용이 아닌데 그 애가 그렇게 말했대. 연재는 엄청 속상해서 울려고 했어. 그 애가 엄마 책 내용을 비난한 거니까 엄마 속상할까 봐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나도 그 얘기 들으니 기분이 안 좋았어.”


어쩐지 내가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왔을 때 둘째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피곤해서 그런가?’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 미처 살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는 연재한테 뭐라고 얘기해 줬어?”

“그 애가 대놓고 한 말이 아니고 뒤에서 한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 뭐”


큰아이는 어쩐지 더 속상한 얼굴이 되어 읽던 책을 만지작거렸다.


“연우는 왜 기분이 안 좋아?”

“연재가 속상해하니까 나도 속상하더라고. 대신 싸워줄 수도 없고.”


큰아이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났다. 동생을 걱정하는 첫째 아이의 마음이 기특했다. 딸들은 어릴 때는 잘 싸워도 나이가 들수록 돈독해지는 경우가 많다. 나와 언니들도 자랄 때는 많이 싸웠다. 양보는 아예 모르는 사람들처럼 행동했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서로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내 아이들도 클수록 나와 언니들처럼 서로 보듬는 사이가 되겠지 싶어 하늘로부터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임아영 작가는 《진짜 나를 발견하는 중입니다》에서 친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경쟁자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경쟁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이 비슷했고, 동질성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 아빠가 세상에 없으면 언니, 오빠가 부모다.”


부모님은 어릴 때 이런 말을 자주 하셨던 것 같다. 나는 1남 3녀 중 막내라 언니들과 오빠와 함께 있으면 그 옛날 철없는 막냇동생으로 돌아가곤 한다. 이상하게도 언니들과 오빠가 있으면 나이 든 막냇동생이라도 다 받아줄 것 같아서다. 나의 아이들도 그런 마음으로 서로에게 기대며 살았으면 한다. 둘째 아이가 언니에게 속상한 마음을 기대고 싶어 털어놓고, 큰아이는 동생의 말에 속상해서 잠 못 이루는, 그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며 살아가길 바란다.


내 책으로 둘째 아이가 속상한 일을 겪은 걸 보니 너무 솔직한 글이 아이에게 독이 되었나싶어 걱정되었다. 다음 날 아이에게 물었다.


“연재야, 엄마가 책에 네 얘기를 써서 연재가 속상한 일이 있었네. 미안해.”

“아니야 엄마. 그 애가 잘못 생각한 거지. 엄마 글은 정직했어. 괜찮아 엄마.”


아이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어 보였다. 물론 그 글을 쓰기 전에 아이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막상 이런 일이 벌어지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솔직하게 쓴 나의 글이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나 하는. 그러나 나는 다시 용감해지기로 했다. 솔직한 내 글이 누구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두 아이가 이상한 막춤을 추며 거실을 누비고 있다. 온 집안에 아이들의 웃음으로 시끌시끌한 밤이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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