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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Mar 28. 2023

고통도 단련 시키는 시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일찍 집을 나섰다. 오래도록 알고 지낸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학교 앞 홍보를 간다고 해서다. 예체능 학원은 나라의 경제 사정이 힘들 때 많은 타격을 받는 분야 중 하나이다. 영어 수학처럼 주요 과목은 살림이 어려워져도 중단하기 어렵다. 아이들의 학교 성적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많이 저하되어서 학부모들의 고민이 많다. 학습 관련 주요 과목 능력이 부족하니 예체능을 줄이고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약간 타격을 받은 피아노 선생님도 홍보에 나선 것이다.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앞에 가니 이미 많은 학원에서 홍보를 위해 나와 있었다. 이른 봄이라 옷을 따뜻하게 입었는데도 날씨가 쌀쌀했다. 홍보 나온 선생님들은 며칠 동안 정성스럽게 준비한 홍보물들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나누어 주었다. 간절한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도 열심히 도왔다. 가져온 홍보물을 모두 다 나누어준 선생님은 아직 홍보물이 남은 선생님의 홍보물을 함께 나누어 주며 도왔다. 홍보물을 모두 나누어 주고 나니 배고 고파졌다. 학교 앞에 있던 선생님들 몇몇이 모여 국밥집으로 갔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국밥집에는 나와 선생님들뿐이었다. 주문한 국밥이 금방 우리가 앉은 식탁에 놓였다. 뜨끈뜨끈 국물을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뜨거운 김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 가며 먹었다. 밖에서 떨었던 몸이 국밥의 뜨끈한 국물에 녹아내렸다. 아이들이 많이 줄어서 걱정이 많았던 피아노 선생님도 따뜻한 국밥을 먹으며 잠시라도 미소를 되찾았다.      


“어려울 때 선생님들이랑 함께 홍보물 돌리고 이렇게 밥 먹으니 힘이 나네요”     


피아노 선생님이 한 말에 다른 선생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국밥은 배고픔만 달래던 국밥이 아니었던 거다. 힘든 시기를 잘 견디기 위해 지금을 불행으로만 여기지 않는 마음이 있었기에 고단한 마음까지도 채워주는 국밥이 되었다.     


신문에서 이화여대 이지선 교수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이지선 교수는 예전에 만취한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에서 전신 55%에 3도 중화상을 입었다. 그리고 안면 장애와 지체 장애 1급 진단을 받았다. 이지선 교수의 일을 방송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이지선 교수의 얘기가 들리면 주의 깊게 보게 된다. 이지선 교수는 일상이 공개될 때마다 자신이 당한 사고를 잘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당한 일이 불행이었던 건 맞지만 불행으로만 여기며 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이지선 교수를 응원하고 싶었다. 이지선 교수는 ‘나는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라고 했다. 사고를 당한 일은 더는 자신을 괴롭힐 수 없다는 태도로 ‘사고를 당했다’가 아니라 ‘사고를 만났다’라고 표현했다. 이지선 교수의 사고와 잘 헤어지는 방법은 ‘다시 쓰기’다. 스스로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을 달리하여 사고 난 그날을 다시 쓰는 것이다. 이지선 교수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분명히 괜찮은 해피엔딩을 맞을 거라는 기대를 놓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누군가와 슬픔도 아픔도 함께 나누면서 사고와 잘 헤어지시기 바란다.’라는 말을 남겼다.

(참고기사:23세에 사고, 23년 뒤 모교로…“지난 사고와 잘 헤어지는 중. 김정민 기자. 

중앙일보.2023.03.02.)     


울산에서 포항으로 갈 때 고속도로를 타면 아주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처음 그 터널을 지날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차가 달리다 ‘이쯤 되면 다 오지 않았나?’ 싶어도 터널은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 끝에 닿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당장 내 눈앞에 그 끝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저 멀리 밝은 빛이 보이면 비로소 안도 한다. 이제 다 왔다 싶은 마음에 터널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둡고 캄캄한 긴 터널을 지날 때는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 터널을 지나면 되는 거다. 빛이 보이는 세상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아도 묵묵히 내 길을 가다 보면 언젠간 반드시 그 끝이 있다.      


이지선 교수의 말처럼 홍보물을 함께 돌리던 선생님들은 함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시 쓰기’ 했던 거다. 나의 힘듦을 꺼내 보이며 모두 혼자 짊어지고 가려고 하지 않는 마음도 중요한 것 같다. 때로는 나에게 짊어진 무거운 짐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용기도 필요하다. 그 용기는 끝내 마음의 단단한 근육으로 자리 잡아 내가 오래도록 버티는 힘이 될 거라는 걸 알기에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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