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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Apr 02. 2023

내 책 사랑의 시작은

“엄마, 엄마는 책이 그렇게 좋아?”

“응.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서 좋아.”

“정말 신기해. 엄마는 언제부터 책을 읽게 됐어? 제일 처음에 읽었던 책 이름 기억나?”     

햇살이 따뜻했던 주말 오후였다.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항상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나를 보며 아이가 물었다. 나의 책 사랑은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은 오래전으로 거스르고 거슬러 내가 초등학교 시절로 데려다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 교실은 도서실을 겸비했던 곳이었다. 교실이 모자라 도서실까지 교실로 사용했던 시절이었다. 우리 교실은 칠판 있는 곳을 제외하고 삼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면 항상 은은한 책 냄새가 났다. 오래 묵은 책 냄새. 우리 반에서 책은 자연스러운 배경이었고, 쉬는 시간이면 책을 하나씩 빼 들고 책으로 놀았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책장을 홱 넘겼다. 그리고 사람의 수를 하나, 둘 세었다. 다음은 진 사람이 책을 홱 넘겼다. 또 하나, 둘 셌다. 책장을 넘겼을 때, 사람 수가 더 많은 사람이 게임에서 이겼다. 나와 우리 반 친구들에게 책은 그저 놀이의 수단일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학년이 끝날 때쯤이었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학교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도서실’이라는 교실 이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교실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니 아이들 몇 명이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들어가도 되나?’ 고민하다가 슬쩍 문을 열어 보았다. 문이 스르륵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조심스럽게 교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2학년 때 교실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익숙한 분위기와 냄새를 느꼈다. 먼저 와 있던 아이들이 읽던 책을 옆에서 같이 보았다. 글자가 듬성듬성 있는 동화책이었다. 아이들은 책을 뺏다 꽂았다하며 그림만 보고 책장을 휙휙 넘겼다. 그때 복도에서 누군가 뚜벅뚜벅 교실로 향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른 발걸음 소리였다. 내가 문을 열 때처럼 이번에도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얘들아, 너희들 여기에 있으면 안 돼. 여기 정리해야 돼서 문 열어 놓은 거야. 이제 나가줄래?”     


처음 보는 어른이었는데 선생님인 듯했다. 나와 교실에 있던 아이들은 서둘러 읽던 책을 정리하고 도서실을 빠져나왔다. 

점심시간이 곧 끝났고, 담임 선생님도 학년 실에 있다가 교실로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내년 5,6학년 중에서 도서 위원을 모집하고 있으니 희망자는 선생님에게 와서 이야기해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학교가 도서 시범 학교로 뽑혀서 학교에 엄청나게 많은 책이 들어올 거라고, 책 정리하는 일을 도울 학생들을 뽑는 거라고 했다. ‘점심시간에 보았던 그 도서실에서 하는 건가?’ 호기심으로 내 심장이 요동을 쳤다. 집에 갈 때쯤 선생님께 도서 위원에 신청한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담당 선생님께 말씀드려 놓겠다고 했다. 집에 와서 나와 쌍둥이인 작은 언니에게 얘기했더니 언니도 도서 위원에 신청했다고 했다.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들은 큰언니가 웃었다.     


도서 위원 신청자는 모두 도서실로 모이라는 안내 방송을 들은 건 6학년 첫 학기가 막 시작했을 때였다. 도서실로 가니 작은 언니도 와 있었다. 도서실은 겨울 방학 동안 교실을 2개를 붙여 확장하고 칸막이 있는 책상과 의자를 새로 들였다. 제법 책 읽을 분위기가 나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는 얼굴들이 몇몇 보여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담당 선생님이 도서실로 들어오셨다. 5학년 때 도서실에서 뵀던 그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셨다. 학교로 배달되는 책에 일일이 라벨을 붙이고 도서를 정리하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했다. 매일 방과 후에 2시간씩 남아야 하고, 여름방학에는 매일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날 오후부터 도서 위원이 된 나는 매일 도서실로 가서 책을 정리했다. 엄청나게 많은 책 상자들이 도서실에 쌓여 있었다. 나와 다른 도서 위원들은 담당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책을 분류하고 라벨을 붙였다. 학교에 처음 배송된 책 상자를 열고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새 책을 여는 황홀함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책을 정리하며 그 책을 처음 열어 보는 나만의 특권이었다. 우리는 책 정리하는 시간 전후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정리하다가 제목과 그림에 이끌려서 책만 읽다가 시간이 훌쩍 지났던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담당 선생님은 서둘러 하지 않는다고 혼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도서실 정리가 완성되던 주말에 담당 선생님은 ‘석굴암’ 등반을 제안하셨다. 주말에 담당 선생님과 도서 위원들은 불국사 입구에서 ‘석굴암’까지 걸어 올라갔다. 그렇게 높은 곳까지 걸어 올라갔던 것이 생전 처음이라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날의 흙냄새와 도시락은 아주 생생하다. 힘들었지만 끝까지 완주한 마음에 보람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도서실 정리도 우리의 힘으로 해냈고, 석굴암 등반도 완주했으니 더 뿌듯한 마음이었다.


도서 위원이 된 일이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도서실이 학생들에게 공개된 후 도서실 시범 운영 학교답게 독서 행사를 많이 했다. 작은 언니와 나는 경쟁하듯도서실에 있는 책들을 읽어 치웠고, 교내에서 하는 독서 행사나 글쓰기 대회에서 항상 상을 받았다. 친구들에게 우리는 책 좋아하는 아이, 글쓰기 잘하는 아이로 증명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6학년 졸업식에서는 공로상도 받았다.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작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선생님께 안부 전화를 했는데 세월이 30년이 넘었어도 선생님은 나를 책 좋아하는 아이, 글 잘 쓰는 아이로 기억하고 계셨다. ‘그랬었다’는 나만의 착각으로 지나갈 수 있었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마흔이 넘어 담임 선생님께 들으니 뭔가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도서 위원이 된 후로 나는 책이 주는 ‘위로의 맛’을 알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도서실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으로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며 살고 있을까? 책 사랑의 시작을 떠올리니 무려 30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했다. 내 책 사랑은 첫눈에 반하는 번개 같은 사랑이 아니었다. 은은하게 서서히 스며든,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시나브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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