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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Jul 17. 2023

휴가인가, 병가인가?

편안히 쉬는 병결석

무척이나 더운 하루였다. 주말이었던 어제부터 아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동네에서 독감이 유행하고 있어서 딸도 독감이 아닐까 예상했다. 우리 가족이 다니는 병원은 동네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다. 일찍 진료받으려면 오픈런은 당연지사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9시에 진료인데 접수는 8시부터 받는다. 나는 매번 7시 30분쯤 도착하여 1번으로 접수했었다. 이번에도 같은 시각에 갔는데 벌써 앞에 두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할머니들이 줄을 제대로 서지 않고 양옆에서 끼어들 태세를 했다. 한마디 해주려고 해도 나이 드신 어른들이라 아무말도 못했다.      

오전 8시, 접수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할머니들이 줄 서 있는 내 앞으로 마구 끼어들었다. 내 앞에 줄 선 어떤 할아버지가 보다못해 한 할머니에게 줄을 제대로 서라고 한마디 했더니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눈이 튀어나올 듯 째려보았다. 내가 한마디 했다면 버릇없는 젊은 여자가 될 뻔했다. 땡볕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줄 선 보람도 없이 대기 번호는 7번이었다. 이제 집으로 가서 진료 시간이 다 되면 아이를 데리고 다시 병원으로 가야 한다.      


약간 지친 몸으로 집으로 들어가 커피에 얼음을 가득 넣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커피가 위를 가득 채우니 줄 서며 받았던 스트레스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진료 한 번 받기 위해 이렇게 줄을 서야 한다니. 동네에서 친절하기로 유명한 의사 선생님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또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이를 데리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대기 번호가 50번이 넘어섰다. 겨우 7번이라고 불만했는데 대기 번호 50번이 넘는 것을 보고 7번은 오히려 행운이었다. 병원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 아들도 어젯밤 열이 나서 병원에 왔다고 했다. 앞 순서가 빠르게 지나가고 딸의 차례가 되었다. 어제 열이 났었고, 목이 아프다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코로나와 독감 검사를 동시에 진행했다. 딸은 예상대로 a형 독감 판정을 받았다. 타미플루 주사를 링거 형태로 30분 동안 맞았다. 약으로 먹는 것보다 주사로 맞고 편안해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병원에서 만난 친구 아들은 다행히 독감이 아니라고 했다. 한 명이라도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주사를 맞고 집으로 와서 딸을 가족들과 격리했다. 사실 어제부터 격리했는데 어제보다 경계가 더 삼엄하게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다. 아예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아이는 학교도 안 가고, 학원도 안 가니 오히려 신이 난 것 같았다. 종일 넷플릭스를 열어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고 했다. 몸은 좀 불편하지만 진정한 휴가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잠오면 자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갑자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아프면 손해가 얼마인가? 아이처럼 철없이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출근하고 한참 일하고 보니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병원에서 만났던 친구가 덥고 힘든데 아이 좋아하는거 시켜 주라며 배달의 민족 쿠폰을 선물로 보내왔다. 누가 해 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건데 이렇게 감동스러운 선물이라니. 싱글벙글한 얼굴을 한동안 감출 수가 없었다.       


아이가 몸이 아파 갇혀있지만 이것 또한 쉼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말고사 치느라 밤잠 설쳤던 것이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데 큰몫을 한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아이가 많이 쉬고, 잘 먹고, 거뜬히 회복하는 과정을 보냈으면 한다. 가끔 이런 날도 있어야지. 가족 중 추가 확진자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큰딸에서 멈춰 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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