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는 것
지난 2025년에 내 나이는 서른 아홉.
세상에 유혹에 굴하지 않는 다는 불혹을 앞에 두었다고 하기에는
유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이었다.
이제는 눈가와 입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올라오고,
허리가 잘록하지도 않은 몸에,
이렇다 할 성공도, 멋도 없는
그저 그런 상태.
2024년 10월로 나는 살고자 10년 넘게 하던 영어 입시학원을 접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결혼 전에는 성공한 여성이 되고 싶었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적어도 내 아이만큼은 가난하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했지만
내 숨통은 더 조여오고 있었고
나는 정말 모든걸 재쳐두고 나를 살리기 위해
하루아침에 학원을 접었다.
그 과정에서 난 나의 삶을 지탱하고 있던 큰 뼈대를 다 부수고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제일 인정 하기 싫었던 건,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가지건 나의 맨 몸, 두손과 두발, 그리고 시간과 나의 노동력 뿐이었다.
노력이 이루지 못할게 있다는 것은
나에게 마치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가진것이 없었기에
나는 언제나 공부를 하고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가며 일을했다.
모든일을 적당히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0이라는 출발선에서 시작하지만
난 이미 -5였다.
적당히 하면 당연히 쫓아갈 수 없다.
그래서 쉬지 않고 항상 2배속으로 달렸던 것 같다.
그렇게 수능이 끝나는 다음 주부터 알바를 시작해서 그때까지 일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한정식 집 서빙, 일식 집 설거지, 횟집 조리보조, 이탈리안 레스토랑 서빙
빵집 알바, 학교 내 근로, 영어 학원 보조교사, 영어학원 전임강사, 음료 공장 알바..
내 시급은 2300원이었다.
학비도 용돈도 없었기에
내 시간을 부단히 움직이는데 쓰지 않으면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에 흥미가 있는지 느낄 시간이 있다는 건 사치였다.
그렇기에 열심히라는 것은 나의 유일한 무기였고,
열심히 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난 안된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학원은 아이를 낳고도 핏덩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까지
지켜낸 일이었다.
하지만 극심한 두근거림을 연거푸어 느끼고
꾹꾹 참으며 일을하면서
이대로라면 내가 부서져 버릴거 같아
그대로 멈춰 일을 정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빛을 잃어가면서 일을 하는 건.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은 아니었다.
일을 그만두고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하루를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곤욕이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헛헛함에 바삐 몸을 움직여 집안일을 하다가
바쁜 손을 멈추고나면
몰려오는 헛헛함과
내 자신이 쓸모 없어진 거 같은
우울감이 밀려왔다.
수입없는, 생산성 없는 내 모습을
내 자신이 받아 들이기 힘들었다.
이미 일을하며 고됐던 몸을 야식으로 보상이라고 여긴 덕분에
몸은 살이 많이 쪄서 거울 속 내 모습은 추해보였고,
아이를 낳은 후 변형되고
마디마디 아픈곳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알바도 힘들겠다는 생각에
속상했다.
조건없이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
늘 공부를 잘 하려고 노력했고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다.
운동 외에 딱히 못하는 것도 없도
상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아빠 엄마에게는
그런 내 노력이 보이지 않았나보다.
항상 칭찬 받으려고 무엇이든하고
인정 받으려고 이겨내고
짐이 안되려고 돈을 벌었다.
하지만 내 삶이 나에게 버거워져버린 어느 날.
무의미하게 다가왔다.
이겨 낼 힘이 없다는 것.
수입이 없다는 것.
내가 쓸모가 없다는 것.
내 나이 서른 아홉에
나는 내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들었다.
즐길 취미도 하나 없이
돈이 안되는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기에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 때쯤 남편과의 갈등도 커졌고
나는 젊음도 체력도 능력도 없어진 내 자신을 매일 원망했다.
'나도 이런 내가 싫은데, 누가 날 좋아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