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지킴이 Jun 24. 2024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8장


  선유의 세상이 달라졌다. 이런 행복감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호진과 연애하던 겨울 이후 처음이었다. 그때 선유는 러시아의 겨울 추위를 전혀 체감하지 못했다. 난로가 들어앉은 듯 영하의 기온에도 가슴이 훈훈했다. 사랑은 물리적인 환경마저 변화시키는 위력이 있었다. 터질듯한 충만한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있으리라고 믿지 못했다. 입양을 결정하기 전의 고민과 의심, 불안은 굴뚝을 통해 연기가 빠져나가듯 사라졌다. 이제 선유는 길에서 만나는 교복 입은 여자 청소년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아이를 입양하면 사춘기가 제일 걱정이었다. 보통 아이들도 쉽지 않은 사춘기를 입양아는 어떻게 겪어낼까. 그때 아이가 정체성 혼란으로 심각한 일탈 행동을 보이면 과연 대처할 수 있을까. 가출하거나 비행 청소년이 되면? 진짜 부모가 아니라며 반항한다면? 그래서 입양을 후회하게 된다면? 답도 없고 물어볼 곳도 없는 질문으로 괴로워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춘기 또래 여자아이들을 보고 7-8년 후의 희야 모습을 상상하면서 선유의 얼굴에는 절로 뿌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금은 촌스러운 시골 소녀가 저 나이가 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선유는 마치 근사한 조각상을 만들 구상으로 설레는 피그말리온이 된 심정이었다. 희야의 표정에 드리워진 그늘과 그리움을 깎아내어 밝고 활기찬 아이로 키워야지. 두려움 대신 자신감이 선유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보육원에 다녀온 며칠 후 임 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의 그 활달한 목소리였다.

“희야 만나고 어떠셨어요?”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입양 진행하고 싶어요.”

“그럼, 이렇게 해보시겠어요? 5월 초에 홀트 입양 가족 캠프가 있어요. 거기 희야 데리고 참석해보세요.”

“네? 이제 막 만났는데요? 희야가 가려고 할까요? 후원자로 알고 있는데요.”

“일단 입양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시고 그냥 좋은 캠프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설득해 보세요.”

“네, 일단 다음에 만나면 얘기해 보겠습니다.”

선유는 임 소장이 또 한 번 새로운 미션을 제시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시험해 보시려는 거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희야가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수줍음이 많은 아인데 낯선 곳에 가려 할까. 정 싫다고 하면 억지로 데려가지는 않을 거야.

  시간이 급물살을 타듯이 흘렀다. 약속한 토요일이 다가왔다. 벚꽃이 지고 4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보육원 정문을 들어서자 건물 앞에 희야가 나와 있었다. 희야 옆에는 국장과 오리 방 선생님, 처음 희야를 보았을 때 손을 잡고 있었던 진주와 지난번 만났을 때 선유에게 네 잎 클로버를 주었던 영은이가 서 있었다. 국장에게 미리 전화로 알려서 시간에 맞춰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희야의 머리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길었던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앞머리를 더 짧게 잘랐다. “희야, 머리 잘랐구나. 선생님이 잘라주셨어?” 끄덕끄덕. 희야는 선유와 호진이 온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홈플러스에 간다는 생각에 설레고 흥분됐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희야는 흰색 운동복 바지에 반짝거리는 금색 점퍼 차림이었다. 점퍼는 아주 얇은 천으로 된 것이라 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어쩜 옷을 이렇게 촌스럽게 입혔을까. 옷이 이것뿐인가. 이런 차림으로 홈플러스에 가면 사람들이 쳐다볼 텐데. 그리고 아이가 추워 보여. 봐, 얼굴이 빨갛잖아. 다른 옷을 입혀달라고 할까.’ 선유는 살짝 이마를 찡그렸다. 심기가 불편했지만, 아직 보육원에 뭔가를 요구하기에는 시기상조였다. 희야에게 나는 아직 후원자에 지나지 않는걸.

  희야는 날씨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홈플러스에 가서 후원자분이 무엇을 사 주실까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져 선유와 호진의 손을 덥석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육원 정문을 나섰다. 선유는 차가 없는 것이 희야에게 못내 미안했다. 이렇게 쌀쌀한 날에 차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다니. 택시를 타기 위해 논길을 걸어 큰 도로까지 나가야 했다. 희야의 작고 통통한 손을 잡고 “춥지 않아, 희야야?”라고 물었다. 희야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추운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선유는 이상한 차림새에,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두 어른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희야의 모습에 묘한 뭉클함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보호자가 없는 아이. 이제껏 이렇게 혼자 씩씩하게 살아왔구나. 이제는 우리가 네 옆에 있을 거야. 너를 혼자 두지 않을 거야. 너의 보호자가 되어줄 거야. 조금만 기다려, 희야야.

  택시는 금방 오지 않았다. 선유는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도로에 과연 택시가 올지 왼쪽,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 대책 없이 홈플러스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희야는 언제 차가 오냐고 묻지도 않고 용케 잘 참아내고 있었다. 십 분 정도 지나서였을까. 흰색 택시 한 대가 반대편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호진은 손을 크게 휘저었고 택시는 중앙선을 넘어서 멈춰 섰다. ‘차가 생길 때까지 홈플러스에는 다시 가지 않을 거야.’ 선유는 다짐하며 희야를 먼저 뒷좌석에 태우고 차에 올랐다. 이십 분 정도 달려 도착한 홈플러스 정문을 들어서자 희야는 손을 살며시 뿌리치더니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선유는 사람들이 희야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을 눈치챘다. ‘역시 옷차림이 눈에 튀는 거야. 우리를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무슨 부모가 아이를 저렇게 입혀 다니냐고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오늘 하루뿐이야. 사람들 시선이 뭐가 중요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텐데.’

 희야는 무빙워크에 올라타서는 이층의 장난감 진열대로 직진했다. 선유와 호진은 그저 희야의 뒤를 따라가며 희야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희야의 다리는 무릎이 마주 닿아야 할 곳에 길쭉한 오자 형상이 파여 있었다.

“희야 다리가 좀 심하게 오자 다리야. 나중에 교정해 줘야겠어. 근데 신기하다. 당신도 오자 다리잖아.”

“내가?”

호진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몰랐어? 당신, 어머니, 고모 다 오자 다리인 거.”

“그렇구나. 난 몰랐는데.”

“희야가 당신보다 더 심하긴 해. 그래도 크면 나아질지도 몰라.”

소영이의 사시 눈이 생각났다. 사시건, 음치건, 오자 다리건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선유는 입양을 고민할 때 장애 아동이나 선천적인 질병이 있는 아이를 입양할 자신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아이를 입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훌륭한 이들이라 할 만했다. 입양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좀 무모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다.

  오자 다리로 씩씩하게 걷는 희야의 뒷모습이 귀여웠다. 다른 행동은 소극적이지만 걷는 것만은 얼마나 힘찬 아이인가. 선유는 아직 희야 안에 담겨 있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희야는 진열대 사이를 몇 번씩 돌면서도 갖고 싶은 장난감을 고르지 못했다. 선유와 호진은 먼저 제안하지 않고 그저 희야가 고르기를 기다리며 졸졸 쫓아다니기만 했다. 그러더니 결국 뭔가를 집어 들었다. “뭘 골랐어, 희야야?” 희야는 배시시 웃으며 고른 물건을 보여주었다. 목걸이와 팔찌를 조립할 수 있는 알록달록한 구슬이 들어있는 장난감이었다.

“또 사고 싶은 거 있어?”

“아이들 과자 사다 줘야 해요.”

“응, 그러자.”

선유는 미처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 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에 올 때는 뭐라도 사 와야겠다.’ 아이들을 생각해 과자를 사 가야 한다는 희야가 기특했다. 외출을 나가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반드시 먹을 것을 사다 주는 게 보육원의 불문율이라는 것을 선유는 알 턱이 없었다. 희야가 후원자와 홈플러스에 가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이 이미 희야에게 먹을 걸 사 오라고 부탁했다는 사실도.

  과자를 파는 진열대에 가서는 희야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척척 과자와 사탕을 집어 들었다.

“젤리도 사요. 언니들이 좋아해요.”

“그래, 많이 골라.”

희야의 작은 손이 가득 차 더 이상 물건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앞에 가던 희야가 갑자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선유에게 방금 산 과자와 사탕을 불쑥 내밀었다. “엄마, 이거 들어.” 선유는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들은 말이 뭐지? 엄마? 들어? 나를 엄마라고 불렀어. 그리고 반말이라니?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선유는 얼떨결에 과자를 받아 들고는 호진을 쳐다보았다. “당신도 들었어? 나 보고 엄마래.” 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영문을 모르기는 호진도 마찬가지였다. 기분이 묘했다. 좋은 것도 같고, 이상하기도 하고 가슴이 살짝 뛰기도 했다. 지운이가 엄마라고 불렀을 때와는 또 달랐다. 낯설면서도 벌써 희야의 엄마가 된 것 같은 미묘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정작 희야는 그 말을 내뱉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씩씩한 걸음으로 저만치 앞장서고 있었다. 후일 선유가 이날의 일을 물어보았을 때 희야의 기억은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그때 희야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영원히 오리무중으로 남았다.

  이제 살 것은 다 샀지만 남은 일이 있었다. 캠프에 가는 것에 대해 말을 꺼내야 했다. 임 소장은 입양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국장의 말은 달랐다. 어차피 알게 될 텐데 조심스럽게 입양이 뭔지 설명해 보라고 권했다. 선유는 국장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홀트는 입양 사무를 담당하는 곳이지만, 아이를 입양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지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국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희야야,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까?” 희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야가 얼마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지 선유가 알 턱이 없었다. 희야의 아이스크림 사랑은 유별났는데, 다음 해 여름이 되어서야 선유는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매장이 눈에 띄었다. 테이블과 의자도 있어 앉아서 대화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셋이 아이스크림 하나씩 주문해서 자리에 앉았다. 희야는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긴장이 흘렀다. “희야야, 혹시 입양이라는 말 들어봤어?” 도리도리. “처음 들어보는구나...아까 희야가 아줌마보고 엄마라고 불렀잖아. 희야는 우리가 희야 엄마, 아빠가 됐으면 좋겠어?” 끄덕끄덕. 어? 정말? 이렇게 쉽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희야야, 사실 아줌마, 아저씨는 희야 엄마, 아빠가 되고 싶어서 너를 찾아온 거야. 아줌마가 희야를 낳지 않았지만 우리가 한 가족이 될 수 있거든. 그런 걸 입양이라고 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어?” 끄덕끄덕. 이거 참, 너무 쉽잖아. “그럼, 희야는 우리가 가족이 돼서 같이 살면 좋겠어?” 또다시 끄덕끄덕. 신기했다. 두 번째 만남에 마음이 열리다니. 선유는 감격에 겨워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실 희야에게 입양이라는 두 글자는 아무 의미 없는 외계어나 다름없었고, 엄마, 아빠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도 희미할 뿐이었다. 보육원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엄마’라고 불렀고, 국장을 ‘큰엄마’라고 불렀다. 지운이에게는 어른인 여자는 다 ‘엄마’이기도 했다. 얼마 전 희야와 동갑인 다연이 엄마가 다연이 생일에 장난감 화장대를 사 왔다. 엄마가 다녀간 후 다연이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다른 아이들이 화장대를 만지려고 하면 표독스럽게 화장대를 감싸 안았다. 희야는 신분이 달라지기라도 한 듯 당당해진 다연이가 부러웠다. 5학년인 초연 언니에게는 엄마가 종종 찾아왔다. 폰도 사 주고 자주 전화도 왔다. 초연 언니 얼굴에서는 늘 빛이 났다. 희야는 엄마가 있으면 뭔가 크게 달라진다는 막연한 관념이 머릿속에 자리 잡아 가는 중이었다. 내 엄마는 언제 나를 찾아올까. 왜 찾아오지 않는 거지. 기다림은 희야의 눈망울에 그리움을 드리웠다. 선유가 처음 보았을 때 알아챈 그리움. 희야는 그저 엄마, 아빠가 생긴다는 말이 좋았다. 이제 아이들이 나를 부러워하겠지. 엄마, 아빠라면 내가 갖고 싶은 선물을 사 주겠지. 희야에게 이해된 건 딱 거기까지였다. 가족이라는 말도 희야의 귓등을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선유와 호진은 희야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생각보다 입양이 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럼, 입양한 가족들이 가는 캠프가 있어. 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놀기도 하는 데야. 아줌마, 아저씨랑 거기 같이 갈래?”

“네.”

진한 허스키 목소리가 답했다. 이렇게 쉽게 미션이 완수되다니. 모든 게 술술 풀려가고 있었다. “그럼 다음 주에 같이 가는 거야. 아줌마, 아저씨 집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캠프에 갈 거야. 괜찮지?” 끄덕끄덕. 휴, 됐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희야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보육원 생활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누구 오빠가 어땠고, 누구 언니가 어땠고, 누가 누구랑 싸웠고...말없던 희야가 갑자기 말문이 터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좀 편안해졌나 봐. 긴장이 풀린 게 느껴져.’ 선유는 신기해서 희야에게 이런저런 질문도 하고 “그랬어?”하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희야의 이야기는 두서없이 여기저기로 튀었지만, 희야는 꽤 생생하고 재미있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조금씩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희야가 선유는 흥미롭기만 했다. 이 아이는 어떤 아이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두 번의 만남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면, 입양한 후에는 딴판으로 변할 수도 있겠는걸. 반죽한 흙덩이를 앞에 두고 어떤 조각상을 만들지 즐거워하는 조각가의 흐뭇한 미소가 선유의 얼굴에 퍼져갔다.

  보육원 마당에서 국장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희야야.”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희야는 쏜살같이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손님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난 후 선유는 홈플러스에서 있었던 일을 국장에게 전해줬다. 안경 너머로 국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희야가 엄마라고 했어요? 어머나,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희야가 웬일일까?” 국장이 말하길, 희야는 어떤 선생님도 엄마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작년에 입양하려던 부부에게도 ‘엄마’, ‘아빠’ 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장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선유로서는 어깨가 으쓱해질 일이었다. ‘거봐, 나는 아이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편으로는 누구도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던 희야의 마음은 뭐였을까 싶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정말 내가 희야에게 엄마로 선택되었다고 믿어도 되는 것일까.

  “그럼 다음 주에 캠프 데려가시는 거네요?”

“네. 금요일에 집으로 데려갔다가 일요일에 다시 데려올게요. 별일 없을지 걱정이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해보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시고요. 희야가 마음을 연 것 같으니까요.”

“그럴까요?”

“네. 저도 놀랐어요. 희야가 그렇게 쉽게 간다고 할 줄 몰랐거든요.”

“다행이네요. 저, 그런데 그 지운이 있잖아요.”

“네.”

“혹시 지운이는 입양 보낼 생각이 없으신 건가요?”

“아니요. 지운이도 어려서 좋은 가정 있으면 입양 보내고 싶어요.”

“저희가 지운이한테도 관심이 가서요. 희야랑 같이 지운이도 사귀어 볼 수 없을까요?”

국장은 의외라는 듯 선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희는 한 가정에 두 아이 입양을 동시에 진행하지는 않아요. 한 아이를 입양하는 것도 얼마나 큰일인데요. 만약 계속 관심이 가시면 희야 먼저 입양하시고 그 후에 생각하시는 게 좋아요.”

“네.”

선유는 딱 부러진 국장의 대답에 오히려 속이 시원해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들떠 있고 비현실적이었는지 금방 깨달았다. 희야만 입양하는 게 마음에 걸려 어떤 부담감에 눌려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한쪽 어깨에서 짐이 스르르 벗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지운이와도 인연이 있다면 어떻게든 이어지겠지. 지금은 희야에게 집중하는 게 맞아. 국장의 말을 들은 호진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만약 국장이 “한번 해보세요.”라고 대답했더라면 선유는 두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나설지도 몰랐다. 몇 주 후 보육원을 찾아갔을 때 지운이가 보이지 않았다.

“지운이 어디 갔니, 얘들아.”

“지운이 떠났어요.”

“어디로?”

“몰라요. 어떤 후원자님이 오셔서 데려가셨어요.”

펭귄 방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지운이를 키워보겠다고 위탁 가정에서 데려갔다고 했다. 선유는 못내 아쉬웠다. 지운이를 입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왕이면 지운이가 입양 가정으로 갔으면 했다. 그 위탁 가정에서 마음이 바뀌어 지운이를 입양하면 좋으련만. 그 후 지운이 소식은 들을 길이 없었다. 위탁 가정에서 잘 지내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다른 곳으로 또 옮겨지는 것이다. 몇 번의 만남에 불과했지만 ‘엄마’라고 처음 불러 준 지운이의 목소리와 왕방울 눈이 선유의 기억에 뚜렷이 자국을 남겼다. 부디 어디선가 잘 자라고 있기를.

  저녁 식사를 하고 희야와 손을 흔들며 작별했다. 희야는 손을 흔들더니 지난번처럼 몸을 돌려 쪼르르 언니들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조금 전에 엄마라더니 그렇게 쌩하고 가버리는 희야를 보니 선유는 약간 서운했다. 희야는 홈플러스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렸는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다음 주에 희야를 집에 데려올 생각에 다시 마음이 설렜다. 뭘 해서 먹이지. 어디서 재울까. 무사히 캠프에 다녀올 수 있을까. 온갖 시뮬레이션을 해보아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 불가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