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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Jun 26. 2024

네가 나에게 왔다

9장

  두 주 후 목요일. 희야가 선유네 집 거실에 앉아 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희야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나타내지 않았다. 가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나. 당황하고 어색해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지나갔다. 차려준 저녁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 사이 희야의 머리가 자라 어깨를 살짝 덮고 있다. 제법 단발이 잘 어울린다. 가정집에 와 본 경험이 별로 없는 희야는 약간 들떠 있다. 집안의 모든 것이 신기해서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후원자 아저씨, 아줌마가 묻는 말에 생각나는 대로 대답한다. 희야는 지난번에 선유를 ‘엄마’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희야는 진한 브라운 색 가죽 소파가 맘에 든다. 이 소파 위에서는 마음껏 뛰어도 소파가 부서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희야는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소파에 얌전히 앉아 있다. 거실 창밖으로 어둠이 깔려있다. 보육원에서 아이들이 함께 샤워할 시간이다. 깔깔거리며 서로 비누를 묻혀 주고 샴푸를 손에 짜서 거품을 내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렇게 놀다가 휘리릭 몸에 물을 뿌리고 나서 한 명씩 선생님 앞으로 간다. 선생님은 큰 수건으로 몸에서 물기를 닦아주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준다.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저절로 몸의 물기가 마르기도 한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은 싫지만, 선생님의 손이 머리칼에 닿는 촉감이 부드럽다. 희야는 누군가 안으려고 하면 몸을 움츠리곤 했다. 그러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만져주면 늘 기분이 좋아졌다.

  희야의 귀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데 지금 여기는 어디지. 희야는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늘 함께 있던 아이들은 아무도 없고 얼마 전에 후원자가 된 어른 둘만 자기를 쳐다보며 공연히 웃고 있다. 바깥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이 희야의 마음 바닥에 내려앉는다. 얼굴 근육이 굳어지고 입이 꾹 다물어진다. 선유는 희야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는 순간을 포착한다. 불안하다. “희야야, 왜 그래? 심심해서 그래?” 그렇지 않아도 선유는 희야가 심심해할까 봐 두려웠다. 어떻게 하면 희야의 주의를 계속 재미있는 것으로 잡아둘까 그것이 고민이었다. 그 순간이 지금 오고야 만 것일까. 희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고개를 약간 수그린 채 표정에 변화가 없다. 선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희야의 기분을 좋아지게 할지 몰라 당황스럽다.

  “희야야, 언니들이 보고 싶어?” 무심코 던진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희야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엉엉 울기 시작한다. “집에 가고 싶어요. 아이들이 보고 싶어요. 데려다주세요.”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선유는 울고 있는 희야가 가엾다. 당장이라도 보육원에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지. 낯선 어른들과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려니 얼마나 어색하고 불안할까. 이런데 캠프는 무슨 캠프람. 선유는 희야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알았어, 희야야. 네가 힘들면 데려다줄게. 그런데 지금은 너무 늦은 밤이야. 기차도 없어. 내일 아침에 일찍 데려다줄게.” 그 말에 희야의 울음이 잦아든다. 선유는 희야의 얼굴에서 눈물 자국을 닦아준다.

  일찍 재우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저녁 여덟 시면 보육원에서도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희야야,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아침에도 캠프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보육원에 데려다줄게.” 희야는 울음을 멈춘다. 욕실에 들어가더니 혼자 이를 닦고 세수한다. 다섯 살인 소영이도 이 닦고 세수하고 옷을 입고 벗는 모든 것을 선유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했다. 일곱 살인 희야가 스스로 하는 건 당연하다. 선유네 집에는 아이 방으로 쓸만한 빈방이 없었다. 입양이 결정되면 물건을 보관하고 가끔 손님방으로 쓰는 작은 방을 아이 방으로 만들 계획이다. 그 방에 이불을 깔고 희야를 재웠다. 희야는 눕자마자 몸을 옆으로 돌리더니 곧 잠이 든다. 선유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거실로 나온 선유는 호진과 마주 앉았다.

“여보, 어떡하지? 희야 캠프에 못 갈 것 같은데. 희야가 너무 가여워. 괜히 데려왔나 봐.”

“그래도 소장님과 국장님이 해보라고 하셨잖아? 소장님에게 전화 걸어서 물어보는 게 어때?”

선유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시간이 늦었지만 따질 처지가 아니다. 사무실 번호뿐 아니라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 게 이리 고마울 수 없다. 임 소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리고 아이를 캠프에 데려갈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소장은 단호하다.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 마음을 잡지 못하면 입양에 실패할 거라고 말한다. 아이를 잘 다독여 데려와야 입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다시 잘 얘기해 볼게요. 하지만 내일 아침에도 보육원에 간다고 하면 캠프에 데려가긴 힘들 것 같아요.” 선유는 희야에게 처음부터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억지로 하고 싶지 않다. 무슨 말로 희야를 설득하지. 희야를 입양할 수 있을까. 그동안 품었던 희망이 물방울이 되어 공기 중으로 분해된다. 가슴을 내리누르는 무거운 돌을 안고 잠을 청해본다.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맡겨진 보육원에서 7년 동안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희야를 그곳에서 데려오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일까. 희야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에게서 희야를 떼어놓는 것이 과연 희야를 위한 일일까. 정말 입양이 아이에게 최선인 걸까. 희야가 느낄 상실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에게 입양은 무조건 축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선유의 의식에 자리 잡았다. 희야의 마음이 준비되어 기꺼이 오려고 할 때 입양할 것이다. 그때가 오지 않는다면 희야는 포기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머릿속 회로가 복잡하게 꼬여 당분간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선유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쳤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희야에게 아침을 먹이고 눈치를 살핀다. 호진은 출근하고 저녁에 캠프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희야가 보육원에 가겠다고 하면 선유가 데려다주기로 했다. 다행히 희야 표정이 좋아 보인다. 어제 울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선유는 약간 어리둥절하다. 희야는 거실 책꽂이에 진열된 작은 장식품들에 관심을 보인다. 하나씩 들여다보고 “이거, 가져도 돼요?”라고 묻는다. “응, 가져도 돼.” 깨자마자 보육원에 데려다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직 보육원 말이 없다. 선유는 살며시 희야에게 다가간다. “희야야, 오늘 캠프 갈래?”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보육원에 가지 않아도 돼? 언니들 보고 싶지 않아?”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와, 선유는 믿기지 않는다. 자고 나니 마음이 달라진 걸까. 설득도 필요 없어졌다. 아슬아슬했던 집에서의 첫날밤이 무사히 지나갔다. 먹구름이 살며시 왔다가 다시 햇살이 비친다.

  희야는 진한 남색 바탕에 빨간 딸기와 초록 이파리가 그려진 티를 입고 있다. 가운데 왼쪽 손가락에는 지난번에 산 구슬로 만든 반지를 꼈다. 역시 촌스러운 차림이다. 선유는 옷을 갈아입혀서 캠프에 가고 싶다. 입양 가족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이런 차림으로 데려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예쁘게 꾸며가기도 애매하다. 무난한 옷을 사 입히는 게 최선이다. 선유는 희야와 집 근처 홈플러스로 갔다. 평소에 호진과 장을 보러 다니는 곳이다. 차가 없어 카트를 끌고 공원으로 가로질러 걸어 다녔다.

  희야는 홈플러스에 와서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 홈플러스는 보육원에서 다니던 홈플러스와는 또 다르다. 일 층에 미니 자동차 같은 놀이기구가 있다. 그래도 타 보고 싶다고 하지 않고 꾹 참는다. 선유는 희야와 함께 아동복을 파는 매장들이 모여있는 삼 층으로 올라갔다. 유행하는 몸에 달라붙는 남색 바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상의만 사면 된다. 그런데 유아복과 서너 살 아이들 옷은 많은데, 희야 또래 여자아이가 입을만한 옷이 별로 없다. 무슨 아이들을 다 공주로 만들 작정인지 나풀거리는 드레스에 스타킹, 온갖 장식으로 도저히 캠프에 입혀갈 만한 편한 옷이 눈에 띄지 않는다. 삼 층을 몇 번 돌다가 결국 할인 판매대에 쌓여있는 옷 중에서 지퍼가 달린 연한 분홍색 후드 티 하나를 집는다. 예쁜 옷은 나중에 얼마든지 사 줄 수 있다. 오늘은 편하고 촌스럽지만 않으면 된다. 마침 희야가 신은 분홍색 운동화와도 잘 어울린다.

  일 층 매장으로 내려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선유는 희야의 사진을 찍어준다. 두 번째 찍는 사진이다. 희야는 반지를 낀 왼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윗니를 살짝 드러내고 미소 짓는다. 희야가 웃는다. 좋은 신호다. 점심을 먹은 후 화장실에서 상의를 갈아입힌다. 희야는 아무 내색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따른다. 캠프 장소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한참을 걸어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다. 소영이는 먼저 뛰어가며 “이모, 어서 와요.”라고 손을 흔들거나, 갑자기 길에서 멈춰 서서 걷지 않기를 반복했다. 소영이의 행동에 일일이 맞춰주는 게 꽤 힘들었다는 걸 선유는 깨닫는다. 소영에 비하면, 희야와 함께 다니는 건 얼마나 수월한가. 두 살 나이 차이가 이렇게 크구나.

  “캠프 하는 데까지 많이 멀어요?”

“응, 아줌마도 처음 가봐서 잘 모르는데, 버스 타고 한참 갈 거야. 희야, 괜찮아?”

“네.”

희야는 이제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네’라고 답한다. 이런 작은 변화가 선유는 반갑다. 또 한참을 기다린다.

“버스 언제 와요?”

“그러게,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희야, 심심해?”

“아니요.”

이제 희야의 주의를 계속 끌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긴장이 사라진다. 희야는 지루해하지 않고 얌전히 선유 옆에 서 있다. ‘에고, 애까지 고생이네. 입양이 완전히 결정되어야 차를 구하든 말든 할 텐데.’ 버스를 타고 캠프 장소까지 오는 사람은 아마 자기네뿐일 거라고 선유는 생각한다.

  마침내 버스가 도착한다. 이 버스를 타고 도시 외곽까지 가서 거기서 택시를 타고 캠프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선유와 호진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익숙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신혼생활을 할 때도, 귀국해서도 어디를 가든 버스, 기차를 몇 번씩 갈아타고 다녔다.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유럽을 여행할 때였다. 헬싱키에서 밤 기차로 핀란드 북부까지 올라가 케미라는 작은 마을을 통과해 스웨덴 국경을 넘고, 룰레오에 도착해 쉬지 않고 버스를 달려 기차로 갈아탄 후, 노르웨이 나르빅까지 가기도 했었다. 두 사람은 그런 여행을 고생이라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과 다른 루트,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여행의 참맛이라고 생각했다. 출입국을 제외하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만큼 여행의 묘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없었다. 이제 희야도 그런 두 사람의 스타일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 거리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선유의 머리를 스친다.

  희야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는다.

“저 휴대폰 갖고 놀아도 돼요?”

“그럴래?”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다. 그동안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해결된다. 희야는 버스 창밖을 내다보며 계속 사진을 찍어댄다. 뭘 찍나 보면 별것이 아니다. 주로 상점 간판을 찍는다. ‘이렇게 오래 차를 타 본 적이 없을까. 그래서 밖에 보이는 게 다 신기한가 봐.’ 희야는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히죽히죽 웃는다. 전에는 이런 놀이를 해본 적이 없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진에 담고 싶다. 기꺼이 폰을 내주어 실컷 사진 놀이를 하게 해주는 후원자가 마음에 든다.

  지난번 홈플러스에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처럼 희야는 보육원 이야기를 재잘댄다. 희야의 이야기 속에서 보육원의 일상이 그려진다. 그 이야기 속에는 아이들만 아니라, 보육원에서 키우는 닭들과 개도 등장한다. 닭들과 개가 짖는 소리가 보육원의 아침을 깨운다. 선유가 끔찍이 싫어하는 뱀 이야기도 나온다.

“뱀을 봤어? 안 무서웠어?”

“안 무서웠어요.”

“와, 희야 대단하다. 아줌마는 뱀 무서운데. 그래서 뱀을 어떻게 했어?”

“유비 오빠가 잡으려고 했는데, 너무 커서 못 잡았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불러서 선생님이 와서 막대기로 잡았어요.”

“뱀이 죽었어?‘

“아니요. 선생님이 논에다 던졌어요. 우리가 따라가서 봤어요.”

  선유는 정확히 희야 나이 때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시골 동네 뒷산에서 큰 뱀을 봤던 일을 떠올린다. 갑자기 나타나 구불거리며 기어가는 초록색 뱀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꼼짝도 안 했다. 뱀이 사라지고 나서야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산을 뛰어 내려왔다. 동네 어귀 좁은 길목에 있는 집에서 커다란 구렁이를 잡아 병에 넣고 처마 밑에 매달아 놓았다. 그 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선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이후로 선유에게는 뱀 공포증이 생겼다. ‘희야는 나랑 많이 달라.’ 그러나 사십 살의 나이 차이에도 시골 생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신비롭기까지 하다. 희야는 메뚜기도 잡아먹어 보았고 개구리를 잡아 놀기도 했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도 시골은 똑같구나. ‘희야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여행도 많이 하고 싶어.’ 좁은 세상에 갇혀 있는 희야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 곳인지 보여준다는 상상만으로도 선유의 가슴은 벅차오른다. 매일 희야가 조잘거리며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상은 선유를 행복하게 한다. 그런 날이 정말 올까. 선유는 폰을 만지작거리는 희야의 작고 통통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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