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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Jun 29. 2024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10장

  선유가 입양 가족을 한꺼번에 만나는 건 처음이다. 입양을 권하러 찾아왔던 현애 가족과 홀트를 찾아가기 전 소개받아 만났던 한 가족이 전부였다. 지금까지 몰랐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이었다. 희야가 또 울면 어떡하지? 데려다 줄 수도 없는데.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잘 달래서 어떻게든 여기 있어야 해. 소장님도 계시니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주시겠지. 호진과 둘이서만 희야를 상대해야 했던 집보다는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캠프 장소에는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일 층에 ‘등록’이라는 글자가 쓰인 책상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었고 거기 임 소장이 서 있었다. “희야 왔구나! 어서 와!” 임 소장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얼굴에 반가움이 활짝 피어난다. 선유는 희야를 무사히 캠프에 데려온 게 뿌듯하다. 희야는 임 소장을 보더니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수줍은 미소조차 지워졌다. ‘다시 긴장되는구나.’ 이제 선유는 표정을 보고 대충 희야의 마음을 알아차린다. 안쓰럽고 미안하다. “저기, 샛별이 엄마. 이리 좀 와 봐요.” 임 소장은 이번 캠프가 희야 입양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믿는다. 선유 부부가 희야를 입양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캠프에서 희야와 지내보면 두 사람은 자신감을 얻든지, 포기하든지 할 것이다. 만약 포기한다면 다시 신생아 입양을 적극적으로 권해 볼 셈이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 이 부부를 도와야 한다. 다른 입양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 엄마가 여자아이 손을 잡고 다가온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있을까. 우유처럼 뽀얀 살결에 통통한 볼, 야물게 다물어진 입술, 무엇보다 크고 반짝이는 눈, 두 갈래로 단정히 묶인 긴 머리. 티와 짧은 치마, 스타킹, 구두까지 옷차림도 완벽하다. 선유는 순간 희야에게 더 예쁜 옷을 입혀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아무리 예쁜 옷을 입힌들 빛나는 이 아이 옆에 서면 희야의 거뭇한 살결과 주눅 든 모습이 가려질 리 만무하다. “샛별이도 일곱 살이지요? 샛별아, 희야야. 너랑 동갑이야. 둘이 친구 되면 되겠네.” 선유는 샛별의 엄마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한다. 나이는 선유와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서글서글한 눈매에 큰 키, 샛별처럼 양 갈래로 머리를 딴 모습이 여간 멋쟁이가 아니다.

“처음 봬요. 입양 자녀?”

“아직 아니요. 만난 지 얼마 안 됐어요. 샛별 엄마가 캠프 기간 중 좀 챙겨줘요.”

임 소장이 부탁하고 자리를 뜬다. 선유는 순간 화들짝 놀란다. 샛별이의 눈에서 찌릿하고 전기가 튀어 오른다. 일 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샛별이는 희야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번개 같은 눈길로 훑어본다. ‘넌 대체 누구야?’라고 묻는 듯한 도도한 시선. 희야는 샛별이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다. 순간 선유의 가슴이 아려온다. 저토록 당당한 아이. 이토록 주눅 든 아이. 엄마가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의 차이가 한순간에 확연히 체감된다. 시샘이 연기처럼 슬그머니 피어오른다. ‘희야도 저렇게 빛나는 아이가 될 수 있을까?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선유는 희야의 손을 더 꼭 잡는다.

  배정된 방에 들어선다. 널찍한 방에 이층 침대가 여섯 개쯤 들어차 있다. 벌써 자리를 잡고 짐을 정리하는 엄마들, 방 안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고함으로 시끌시끌하다. 선유는 비어 있는 침대의 일 층을 차지한다.

“안녕하세요? 아이가 몇 살이에요?”

“일곱 살이에요.”

“우리 애보다 한 살 많네요. 언제 입양하셨어요?”

입양 가정들이라 그런가. 만나자마자 입양에 대한 화제로 급진전이다. 질문을 한 엄마 옆에는 두 명의 여자아이가 놀고 있다. 자매인 모양이다. 언니가 희야보다 한 살 어리다는 뜻일 것이다.

“아직 입양 전이에요. 알아가는 중이에요.”

“그렇구나, 희야? 희야가 꼭 입양되었으면 좋겠구나.”

희진의 엄마는 희야를 향해 얼굴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진심을 담아 말한다. “엄마가 생기면 얼마나 좋은데!” 희진 엄마는 희야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저렇게 큰아이를 입양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거라 직감한다. 선유는 희진 엄마의 말이 고맙고 든든하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같은 팀 선수의 응원을 받는 기분이다.

  속속 새로운 가족들이 도착한다. 아이들은 건물 일, 이층을 오가며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른다. 물 만난 고기 떼 같다. 모두 스스럼이 없고 당당해 보인다. 그런 아이들 틈에 끼어 있어서인지 희야는 웃음과 말을 잃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선유의 손만 꼭 잡고 어디든 따라다닌다. 선유는 특히 여자아이들을 눈여겨본다. 하나같이 해맑은 표정이다. 부러움이 계속 스멀스멀 올라온다. 우리도 저런 가정이 될 수 있을까? 희야에게도 저런 표정이 나타날 수 있을까. 돌처럼 얼어붙은 희야가 안쓰럽다. 선유는 희야에게 폭포 같은 사랑을 퍼부어주어 희야의 속에서 기쁨의 샘이 터져 나오게 만들고 싶다. 누구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아이로 변화시키고 싶다. 그런 기적을 꼭 이뤄내고 싶다는 조바심이 선유의 애를 태운다.

  저녁 식사 전에 호진이 도착했다. 식사 후 부모들은 강당에서 강의를 듣고 아이들은 별도의 방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희야는 선생님을 따라가면서도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풀리지 않는다. 부모들과 아이들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식당에서 모여 간식을 먹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날 무렵 호진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호진과 선유는 함께 고등학교 러시아어 교과서를 집필하는 팀에 참여하고 있었다. 급하게 상의할 일이 있어 팀장인 교수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유는 교과서 집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 얘기를 해야 하나. 선유는 호진을 따라 조용한 장소로 가 무슨 일인지 듣는다. 교과서를 심의하는 팀에서 수정하라고 지적한 사항이 너무 많은데,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다. 선유는 짜증이 난다. 호진과 팀장 교수가 통화하는 동안 옆에서 자리를 뜰 수가 없다. 희야가 벌써 식당에 와 있으면 어떡하지. 그래도 호진에게 전해 듣는 것보다 직접 상황을 파악하는 게 낫다.

  통화를 끝내고 식당으로 간다. 벌써 식당 안이 꽉 차 있다. 아차, 늦었네. 희야는 어디 있지? 선유는 다급한 눈길로 희야를 찾는다. 저만치 떨어진 식탁에서 진영이 엄마와 함께 있는 희야가 눈에 들어온다. 그쪽으로 다가가는데 희야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선유는 순간 아차 싶다. 낯선 사람들로 둘러싸인 데서 선유와 호진이 보이지 않으니 희야가 얼마나 불안했을까. 큰 실수를 했구나. “희야야, 많이 기다렸어? 정말 미안해.” 희야의 눈물을 닦아주며 어쩔 줄 모른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 미숙하기 짝이 없구나.’

“언니, 어디 갔다 왔어요?”

“통화하느라고요. 미안해요. 진영이 엄마는 언제 왔어요?”

“저는 좀 늦었어요. 와 보니 희야가 혼자 있지 뭐예요?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네 살 때 보고 못 본 것 같아요. 그새 많이 컸네요.”

“희야야, 선생님 생각 나?”

희야는 고개를 젓는다. 진영이도 기억하지 못한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기 때부터 함께 컸어도 어릴 때 헤어지면 영영 서로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희야와 진영이가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이라기엔 신비한 인연의 줄이 두 아이를 연결하고 있는 것만 같다.

  식사할 때도, 간식을 먹을 때도 희야는 음식을 먹다 말고 주위를 둘러본다. 옆 식탁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는 모습, 엄마, 아빠와 함께 아이가 재잘대는 모습을 물끄러미 관찰한다. 저 아이들은 뭔가 나와 다르다. 저 사람들이 엄마, 아빠인가.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희야는 본 적이 거의 없다. 저런 게 가족이라는 건가. 가족이 도대체 뭐지. 희야의 머릿속에는 모호하고 흐릿한 인상만이 축적된다. 그러나 그 인상을 처리할 개념이 없다. 나는 여기 왜 와 있는 거지. 여기서 경험하는 모든 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뭐가 뭔지 몰라 답답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희야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희야는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두고 나타나지 않은 후원자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처럼 투정할 엄두를 낼 수 없다.

  산자락 아래 있는 건물 주위로 캄캄한 어둠이 둘러싼다. 운동장은 텅 비고 숙소로 사용되는 방마다 불이 밝혀진다. 선유는 이 밤이 또 무섭다. 희야가 다시 울음을 터뜨리지나 않을지. 호진은 남자들 숙소로 갔다. 선유가 희야를 데리고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자야 한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모든 일이 다 처음이다. 희야는 침대에 누워 곧바로 잠들지 않는다. 식당에서처럼 다른 침대를 유심히 바라본다. 아이의 옷을 갈아입혀 주는 엄마, 엄마에게 떼를 쓰는 아이, 토닥토닥 아이가 잠들도록 등을 두드려주는 엄마, 아직 자기 싫어 이 침대 저 침대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아이. 이런 모습도 희야에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보육원에서는 스스로 잠옷으로 갈아입고 선생님이 펴 준 이불에 쏙 들어갔다. 아이들끼리 소곤소곤 떠들면 “빨리 자야지”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이 와서 잠을 재워주는 일은 없었다. 솔이 언니는 머리를 양옆으로 마구 흔들어대고, 영은이는 옆의 아이를 발로 걷어차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잠을 청했다.

  희야는 보육원에 가고 싶다고 하지 않는다. 선유에게 다시 보육원 이야기를 꺼낸다. 누가 다쳤고, 누구는 보육원에서 키우는 개한테 물렸고, 누구는 그림을 잘 그려 상을 받았고, 누구는 성을 바꿨고. “그랬어? 그런 일이 있었구나.” 선유는 희야에게 보육원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곳의 생활상이 점점 또렷이 그려진다. 어느덧 희야가 잠에 빠져든다. 집에서는 몰랐는데, 캠프에 와서 보니 희야는 몸을 웅크리고 잔다. 마치 자궁 속에 있는 태아처럼 어깨와 두 다리를 둥그렇게 붙인 채 꿈쩍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자세로 잠을 잘까? 불편할 텐데. 선유는 또 가슴이 아리다. 자궁 속이 가장 편안했던 그 시간에 희야는 멈춰있는 것 같다. 선유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 한다. 여기저기서 잠투정하는 아이들, 자다가 깨어 우는 아이들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낮에 처음 만났던 희진 엄마는 둘째 딸을 달래느라 고생이다. 아이가 예민한지 울다 깨다 반복한다. 소영이가 생각난다. 희야도 막상 집에 오면 자다 깨어 울까. 일곱 살이나 된 아이가 그러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그런 상황도 감당할 수 있을까. 입양을 할 수나 있을지 불투명하지만, 구름 사이로 잠깐 얼굴을 드러내는 해를 놓치지 않으려는 심정으로 선유는 입양가족이 되어 내년쯤 다시 캠프에 오는 상상을 해본다.

  다음 날 아침 희야가 맞은 편 이층 침대 위에 올라가 있다. 인한이 엄마 옆에서 뭔가 조잘거린다. 인한 엄마는 삼십 대로 성격이 활달하고 웃음이 많다. 희야는 연신 히죽 웃고 아이와 놀면서 선유에게는 관심도 보내지 않는다. 그러더니 인한 엄마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고 심지어 손까지 잡는다. 어라, 이게 뭐지. 묘한 질투심이 생긴다. 선유에게는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다. 희야가 조용한 아이라 오히려 활달한 엄마가 더 맞는 걸까. 끊임없이 희야에게 말을 시키고 희야를 웃게 만드는 인한이 엄마의 능력이 부럽다. 자기가 희야에게 맞는 엄마일지 의혹이 고개를 쳐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선유는 산란해진 마음을 희야에게는 티 내지 않는다. 호진은 “그랬어?”하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다. 강당에 모여 가족끼리 흰 바탕의 티셔츠에 그림을 그린다. 선유는 희야의 얼굴을 그리고 “희야야, 사랑해”라고 쓴다. 희야에게 보여주니 예의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희야도 열중한다. 여자 어른과 남자 어른을 그리고 “허 선유 엄마, 이 호진 아빠”라고 적는다. 이름을 외우고 있을 줄은 몰랐다. 또 하나의 티에는 빨간색으로 동그랗게 자기 얼굴을 그리고 검은색으로 웃는 눈과 입, 양쪽으로 삐삐처럼 뻗은 머리카락을 그려 넣는다. 초록색 티를 그린 후, 가슴에는 파란색 물감으로 하트 모양을 칠한다. 그리고 오른쪽 옆에 노란색 나비 한 마리를 대충 그린다. 강당 안에는 입양 가족들이 흩어져 티셔츠 만들기에 열심이다. 조용한 아이는 희야뿐이다. 왁자지껄, 깔깔대는 소리로 강당이 떠들썩하다. 선유는 그런 가족들이 못내 부럽다.

  티셔츠를 그린 후, 미니 체육대회가 열린다. 선유는 운동을 해 슬쩍 자리를 피한다. “희야야, 아빠랑 해.” 은근슬쩍 이제 호칭을 아빠, 엄마라고 한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고 풍선을 터뜨리고 줄을 잡아당긴다. 선유는 소란에서 빠져나온 몇 엄마들과 강당 가장자리 의자에 앉아서 호진과 희야를 관찰한다. “희야야, 달려, 달려!” 두 팔을 휘저으며 소리를 외친다. 희야는 선유 쪽을 힐끔 쳐다보고 경기에 열중하려고 한다. 그러나 영 신이 나지 않는다. 보육원이나 유치원이었다면 희야는 모든 경기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 속에서 희야는 평소 하던 대로 뛰고 달릴 수가 없다. 선유는 몇 년 후 이때를 회상하며 속으로 되뇌었다. ‘희야가 자기를 억누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집에 돌아가기 전에 가족별로 사진을 찍는다. 낮은 산자락 뒤로 멀리 꽤 높은 산이 보이는 곳을 배경으로 자세를 취한다. 가운데 희야가 서 있다. 홈플러스에서 산 분홍색 후드 티를 입고 목에 건 이름표를 만지작거린다. 웃는 듯 마는 듯 살짝 입을 벌리고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작아진다. 셋이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은 처음이다. 아직 가족이 아니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양쪽에 호진과 선유가 무릎을 굽히고 앉아 희야의 팔을 붙잡는다. 호진은 앉았는데도 희야보다 크다. 선유의 오른쪽 볼이 희야의 어깨에 닿는다. 찰칵. 이것이 첫 가족사진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몽글거린다.

  돌아갈 길이 막연하다. 기차역까지만 누가 태워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임 소장이 하연이 엄마라며 소개한다. “방향이 같아서 보육원까지 태워줄 수 있대요. 부탁해요, 하연 엄마.” 다시 먼 길을 몇 번씩 차를 갈아타고 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희야는 또 긴장되는지 선유와 호진 사이에서 몸을 곧추세우고 앉아 있다가 곧 스르르 잠이 든다. 선유는 희야의 머리를 기울여 어깨에 기대게 한다. ‘피곤할 거야.’ 선유는 잠든 희야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이틀 동안 새로운 세계에서 달갑지 않았을 모험을 치러낸 희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연 엄마에게 입양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생아 때 하연을 입양했는데, 입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 후 하연 엄마는 직장을 구해 혼자 하연을 키웠고 하연이는 이제 여섯 살이 되었다. 선유는 질문한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연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기만 한다. 이런 일도 있구나. 만약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저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이제 몇 년 후면 오십이 되는데 나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비극의 주인공이 된 듯 구슬퍼진다. 그래도 하연 덕분에 꿋꿋이 살 수 있었다는 하연 엄마가 존경스럽고 대단해 보인다.

  한 시간쯤 달려 보육원에 도착한다. “여기가 보육원이군요. 저는 처음 와 봐요.” 하연 엄마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내밀어 눈으로 보육원 건물을 대충 둘러본다. “꼭 희야 입양하시길 빌어요.” 하연 엄마는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하고 차를 돌려 정문을 빠져나간다. “안녕히 가세요, 감사했어요.” 선유는 두 모녀의 앞날을 빌어주며 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다. 희야는 언제 잠들었냐는 듯 차에서 내리자마자 인사도 없이 쌩하니 건물로 뛰어 들어간다. 아이들이 희야를 맞이하러 나오자 금세 낯빛이 바뀐다. 캠프에서 본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그래, 이곳이 희야의 집이지. 여기만큼 편한 곳이 없겠지. 이박삼일을 함께 지냈어도 정이 들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희야와 지낸 시간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있는 선유는 서운하기만 하다.

  캠프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주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선다. “잘 다녀오셨어요? 희야는 어땠나요?” 간단히 캠프에서 있었던 일을 전달한다. 국장은 주의 깊게 선유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 정도면 잘 지내고 왔네요. 그런데 새로운 변수가 생겼어요.”

“무슨 일이요?”

“희야를 입양하고 싶다는 가정이 또 나타났어요.”

“그래요?”

태연한 척 물었지만, 선유는 무슨 일인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멀지 않은 데 사는 가정인데요. 막 돌이 된 남자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예요. 그분들이 아들의 누나를 입양하고 싶으시대요. 희야에게 관심을 보이시네요. 좋은 분들 같아 보여요. 신앙도 좋으신 분들인 것 같고요.”

선유는 국장이 야속하다. 희야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부부에게 희야를 소개해주다니. 그러나 아직 입양을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항의할 수도 없다.

“두 분이 희야 입양을 결정하시면 그분들에게 거절의 뜻을 전하겠어요. 어떻게 결정은 하셨나요?”

“저희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만약 그분들이 먼저 희야를 입양하겠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겠죠.”

선유는 호진에게 고개를 돌린다. 호진의 마음만 확실하다면 지금이라도 확답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렇다고 호진 탓만 할 수도 없다. ‘희야에게 과연 우리가 적합한 부모일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캠프에서 인한이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던 희야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에게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그 부부와 희야를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러나 무슨 권리로?

“일단 두 가정이 동시에 희야를 만나는 것으로 진행할게요. 누구라도 먼저 결정하시면 그 가정으로 희야를 보내는 수밖에 없어요.”

“네...”

  보육원 문을 나서면서 선유는 희야가 있는 방 쪽을 돌아본다. 그 부부를 만나면 희야는 어떤 생각이 들까. 혼란스럽지는 않을까. 이렇게 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잠시 놀랐던 선유의 마음이 진정된다. 어차피 희야가 가야 갈 가정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선유는 믿는다. 그 가정이 우리라면 희야는 우리에게 올 것이다. 만약 그 가정이라면 그곳으로 가는 게 맞다. 희야를 두고 그 부부와 경쟁하겠지만, 그렇다고 확신도 없이 서두를 수는 없다. 지킬 자신이 없는 약속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선유는 더 침착해지고 냉정해진다. ‘역시 입양은 사람 뜻으로 되는 게 아닌가 봐. 부모 자식 인연을 맺는 일인데 그렇게 쉽겠어? 희야에게 제일 좋은 대로 되었으면 좋겠어. 희야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해. 우리가 아니라면 새로운 아이를 찾으면 돼.’ 선유는 희야를 믿어보기로 한다. 희야의 삶에서 가장 중차대한 선택 앞에서 희야는 자신을 위한 최선을 택할 것이다. 아무리 어린 나이지만 희야는 누가 부모가 되어야 할지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선유는 스스로 위로한다.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 희야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면서 선유의 눈이 촉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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