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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Jul 06. 2024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11장

  임 소장과 국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는 횟수가 잦아졌다. 둘 다 선유와 호진의 결정을 재촉했다. “아이가 크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아이에게 맡기는 건 아이를 지나치게 존중하는 겁니다.” 국장의 이 말이 선유의 뇌리를 강타했다. 선유도 비슷한 생각을 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희야의 혼란을 우리가 끝내줘야 한다. 그러나 희야의 상처가 보이기 시작한 지금 과연 희야의 아픔을 보듬고 키워낼 적합한 부모일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어쩌면 그 가정이 희야에게 더 나을지도 몰라.’ 들어보니 생활 형편도 그쪽이 더 나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젊었다. 남동생이 생기는 것이 희야에게 더 좋은 일인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언니라면 모르겠는데, 이제 막 돌이 지난 아들이 있는 가정에서 희야가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우려가 되기도 했다. 소영이의 영향이 컸다.

  벌써 6월에 접어들었다. 캠프 후 처음 희야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그 사이 희야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희야는 그 부부를 만났을까. 보육원 마당에 무리를 이루어 서 있는 아이들 가운데 희야가 있다. 그런데 선유와 호진을 보자마자 시선을 외면한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선유가 다가가 “희야, 그동안 잘 지냈어?” 묻는 말에 “네.”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숙인다. 선유는 못내 서운하다. 반가워하기는커녕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들이 훌라후프 돌리기를 한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희야가 웃음기가 싹 걷힌 얼굴을 하고 제 자리에서 훌라후프를 돌린다. 다른 아이들은 훌라후프가 떨어지기도 하고 발에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희야의 훌라후프는 희야의 허리에 걸린 채 뱅글뱅글 돌기를 멈추지 않는다. “와, 우리 희야. 훌라후프 진짜 잘 돌리네...백, 백 하나, 백 둘...” 선유는 결국 세기를 포기한다. 희야의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비로소 확인한다. 눈이라도 마주쳐 볼까 싶어 희야 곁을 맴돌아도 희야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희야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달라졌어?” 선생님이 놀리듯이 말해도 희야는 반응이 없다.

  훌라후프 돌리기에 싫증이 난 아이들은 그네를 타러 마당 가장자리로 우르르 달려간다. 희야는 아이들을 앞질러 달려가 제일 먼저 그네에 올라탄다. 순식간에 희야의 몸이 공중에 붕 떠오른다. 희야의 키에 비해 그네는 너무 높다. 그런데도 희야는 계속해서 무릎을 굽혀 힘차게 튀어 오른다. 그네 옆 커다란 나뭇가지에 몸이 닿을 것만 같다. 저러다가 그네가 뒤로 훌렁 넘어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네는 높이 치솟는다. 선유는 저렇게 그네를 높이 타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슬아슬해서 가슴을 졸인다. 그러나 희야의 얼굴에는 ‘무서운 게 뭐야? 난 그런 거 몰라.’라고 쓰여 있는 것만 같다. ‘에너지가 엄청난 아이구나. 지금까지 그걸 몰랐어.’ 희야의 새로운 매력에 선유는 다시 강하게 이끌리는 걸 느낀다. 선유와 호진은 둘 다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희야가 딸이 된다면 그들의 가정이 그려왔던 그림에는 완전히 새로운 색채가 더해질 것이다. 선유는 상상만으로도 뿌듯해진다. 그러나 희야의 냉담한 표정을 보니 그럴 날이 올 것 같지 않다. 이미 글러버린 것일까. 

  “희야에게 무슨 일이 있었어요?” 선생님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조금 난처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한다. 그 사이 희야를 입양하고 싶다던 부부가 거의 매일 희야를 보러 왔다는 것이다. 선물을 사서 그것도 아기를 데리고 오는데, 희야가 그 아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랬군요. 그래서 희야가 우리를 보고 부담스러웠나 보네요.” 선유의 짐작이 맞았다. 희야에게 제대로 한마디 붙여보지도 못한다. “엄마, 그냥 갈까?” 기다렸다는 듯이 “네.”라고 대꾸한다. 밥을 먹고 가라고 붙잡지도 않는다. “다음에 엄마 집 올 거야?” 살짝 떠본다. 그 말에 희야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선생님이 “솔이 언니랑 같이 가면 돼지.”라고 말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희야는 매일 찾아오는 젊은 부부와 그들의 아기에게 자석처럼 마음이 끌리고 있다. 선유와 호진은 두 주에 한 번씩만 자기를 보러 온다. 그들이 다녀가면 희야는 금세 그들을 잊었다. 다만 보육원이 아닌 곳에서 이틀을 지냈던 경험은 희야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다시는 그들을 따라 어디론가 가고 싶지 않았다. 매일 찾아오는 부부는 잊힐 틈이 없다. 희야는 매일 그들이 어떤 과자와 장난감을 가져올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부풀었다. 두 주 동안 그 부부에게 익숙해진 희야는 다시 나타난 선유와 호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영 불편하다. 이들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주 후 선유와 호진은 다시 보육원을 찾았다. 아이들이 방 안에서 함께 TV를 보고 있다. 선유와 호진이 방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 반갑게 맞아준다. 희야는 이번에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유난히 오랫동안 빤히 선유를 바라본다. 마치 선유의 얼굴에서 무엇인가를 캐내려는 듯 탐색하는 눈길이다. 희야의 눈은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라고 묻고 있다. 지난 두 주 사이 희야는 젊은 부부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들의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주택이었다. 집과 마당이 넓었고 마당에는 큰 개가 여름의 뜨거운 햇볕 아래 땅에 누워 크게 입을 벌렸다. 그 집에서 지낸 하루도 희야는 즐겁지 않았다. 젊은 부부는 아기 옆에 붙어있느라 희야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했다. 희야는 아기를 보고 딸랑이를 흔들며 연신 미소 짓는 젊은 부부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선유와 호진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들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 젊은 후원자 부부와 선유와 호진,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희야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틀 전이 희야의 생일이었다. 그날도 젊은 부부가 다녀갔다고 했다. 가져온 케잌에 촛불을 붙이고 노래를 불러 준다. 아이들은 두 번씩이나 생일 축하를 하고 케잌을 먹을 수 있어서 신이 나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정작 희야는 촛불을 끌 때도 무표정이다. “희야야, 너 왜 그래? 평소와는 너무 다른데. 평소대로 해.” 선생님이 다시 희야를 놀린다. “평소에는 즐겁게 지내나요?” 선유가 묻자 그렇다고 답한다. 저 조그만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하면 웃음기가 싹 가셔버렸을까. 선유는 미안하고 안쓰럽다. 빨리 이 혼란을 끝내 다시 희야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선생님은 케잌을 플라스틱 수저로 떠서 아이들에게 입에 넣어준다. 아이들은 모이를 먹는 병아리처럼 모여들어 입을 벌리고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선유는 그 장면이 낯설고 이상해 보인다. 아이들이 서로 더 많이 먹으려고 싸우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한다. 가슴 한쪽 구석이 아려온다. 희야를 입양하면 다른 아이들의 후원자가 되어주고 싶다. 가끔이라도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게 하고 싶다. 그런데 희야를 입양하지 못한다면 그런 소망도 빵 부스러기처럼 다 스러지고 말 것이다.

  한낮의 열기가 보육원 마당을 한증탕으로 만든다. 선생님들이 나무 그늘 밑에 미니 에어바운스를 설치한다. 아이들이 옷을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가 첨벙거린다. 저마다 물총을 가져와 서로를 향해 쏘아댄다. 깔깔, 하하 소리가 열기를 쫓아낸다. 선유도 아이들 틈에 들어가 놀고 싶다. 어릴 적 송탄에 사는 친구 집에 갔을 때 시냇물에서 송사리를 잡으면서 한참을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네 명의 소녀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서 해가 질 무렵까지 조약돌을 밟았다. 여름 방학이 되어 오산 큰 집에 놀러 가곤 했다. 큰아버지 댁 근처에 오산천이 흘렀는데, 오후가 되면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떼를 지어 나타났다. 천은 아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깊지 않았지만, 폭이 꽤 넓어서 물이 제법 많았다. 연붉은 노을이 지는 저녁, 아이들이 천에서 헤엄을 치고 송사리를 잡고 물장구를 치는 광경은 선유의 기억에 순수한 휴식의 상징처럼 남아있었다.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런데 희야는 아이들이 쏘는 물을 맞으며 꿈쩍하지 않고 서 있다. “희야야, 너도 총 쏴.” 선유의 말에 희야는 힐끗 선유 쪽을 쳐다본다. 가끔씩 선유와 호진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자기를 보고 있는 그들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래도 지난번과는 달리 눈길을 주는 희야가 선유는 고맙기만 하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다. 실컷 물놀이하고 낮잠이라도 잘까 싶었더니 이제는 닭싸움이다. 선유는 요즘도 아이들이 닭싸움하며 논다는 게 신기하다. 

“아줌마가 심판 봐줄까?”

“네~에!”

아이들의 외침이 고막을 찢는다. 펭귄 방과 오리 방이 있는 건물 일 층 가운데에는 넓은 거실 같은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이 순식간에 운동장으로 변한다. “자, 두 사람씩 짝을 짓는 거야. 준비~ 시작!” 선유는 어디서 이런 카리스마가 나오는지 스스로 잘 모른다. 놀이의 즐거움이 선유 안에 잠재된 어떤 힘을 끌어내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선유의 지시에 따라 적을 향해 돌격한다. 어찌나 열심인지 학교 운동회를 방불케 한다. 선유와 호진만 보기 아까울 지경이다. 이 아이들의 부모가 박수치고 소리 지르며 응원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선유와 호진 외에 지켜봐 주는 어른이 아무도 없는데도 아이들은 사생결단이라도 하듯 덤벼든다. 

  희야는 가볍게 여자아이들에게 승리를 거둔다. 왼쪽 다리를 두 손으로 잡고 맹렬하게 돌진해 툭 치기만 해도 상대 아이는 곧장 넘어진다. 남자아이들이 희야에게 싸움을 건다. 희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싸움에 응한다. 또래 남자아이들도 나가떨어진다. “우와! 희야, 대단하다!”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투지가 넘치는 희야를 보는 게 뿌듯하다. 선유는 이제 희야가 얼마나 에너지 넘치는 아이였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수줍음과 저돌적인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 희야는 상상 속 동물 키메라를 연상시킨다. 어떤 모습이 진짜 희야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한 시간 이상 거실을 종횡무진 한쪽 다리로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지쳐 방으로 돌아간다. 얼굴이 자두처럼 빨개진 희야가 슬쩍 다가와 “오늘은 늦게 가세요.”라고 말한다. 저녁을 먹고 떠날 때는 역시 쌩하고 방으로 달려 들어간다. 

  “오늘은 희야가 좀 밝아진 것 같지?”

“그래 보이네.”

“심란했는데 그래도 오늘은 마음이 한결 가볍다. 희야 상태 따라 내 마음이 오락가락해.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 그나저나 희야 마음이 그쪽으로 기운 것 같았는데 오늘 보니까 또 헷갈려. 그쪽도 빨리 결정을 못 하나 봐.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희야가 힘들어질 텐데. 우리가 빨리 결정해야 해.”

선유와 호진은 돌아오는 길에 이런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은 왜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선유는 희야가 부담스러워하는 동안에는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희야가 마음을 확 열어주면 결정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작년에 몇 달 동안 희야를 만나다가 포기했다는 부부가 생각났다. 그들도 희야의 태도를 보고 망설이다가 결국 자신이 없어진 것이리라. 처음 희야를 만났을 때의 자신감은 지니가 알라딘의 램프로 쏙 들어가 버리듯 자취를 감췄다. 어쩌면 희야를 입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자 침착했던 선유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희야를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우리가 먼저 입양을 포기했는데 그 가정마저 희야를 입양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었다. 희야에게는 꼭 엄마가 필요했다. 먼저 포기하지는 않으리라고 선유는 다짐한다. 젊은 부부가 먼저 결정한다면 상실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상념에 젖다 보면 어느새 우울감에 휩싸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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