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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Jul 09. 2024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12장


  국장은 매일 희야를 찾아오는 젊은 부부와 선유, 호진 중에 누가 희야를 입양하는 것이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희야의 나이를 고려하면 아이가 없는 선유, 호진 부부가 나을 것 같다. 갓 돌이 지난 아들이 있는 젊은 부부가 희야같이 큰아이를 감당할 정신적인 에너지가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런데 선유, 호진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젊은 부부가 먼저 결정하면 희야를 그 집으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열성적이던 젊은 부부가 최근에 돌연 태도를 바꿨다. 희야를 입양하는 것보다 위탁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국장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희야는 위탁 가정으로 보내고 싶지 않다. 선유와 호진이 결정하지 않은 마당에 그 가정으로 위탁을 보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국장은 젊은 부부가 희야를 입양하려고 했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워졌다. 혹시 아들을 챙겨줄 누나를 필요로 했던 것인가. 처음 찾아왔을 때도 아들에게 누나가 있었으면 한다고 했었다. 그게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해서 희야를 만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 마음을 다 흔들어 놓고 위탁하겠다니 그 부부를 믿을 수가 없다. 국장은 안개같이 희뿌연 이 상태를 빨리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7월 첫 주 토요일에 선유와 호진 부부가 사무실에서 국장과 마주 앉아 있다. 창밖으로 남자아이가 지나가며 “희야 후원자님이다.”라고 소리친다. 국장이 부드러운 눈길을 선유에게 고정하고 운을 뗀다.

“벌써 희야를 만난 지 세 달이 지났네요.”

“그러네요.”

선유가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한다.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가요?”

갑자기 선유의 두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이 엄마는 믿을만한 사람으로 보인다. 희야의 입양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임 소장과 몇 차례 통화를 했을 때, 이 집에 희야가 입양되었으면 좋겠다고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 임 소장은 여전히 이 가정이 신생아를 입양하기를 바라고 있다. 희야의 입양이 결렬된다면, 임 소장은 강력하게 신생아 입양을 권유할 게 뻔하다. 이 부부를 놓쳐서는 안 된다. 

“희야를 입양하고 싶다던 분들이 포기했어요.”

“진짜요?”

선유의 동그래진 눈 속에 기쁨이 출렁댄다.

“네. 그분들이 입양은 자신이 없고 희야를 위탁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입양이 아니면 희야를 보낼 수 없다고 했더니 포기하시더군요. 애초에 입양이 절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위탁이라고요? 그건 아니죠...”

선유는 순간 화가 치민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그토록 애를 태웠단 말인가. 선유에게도, 희야에게도 힘겨운 한 달이었다. 마치 갓 연애를 시작한 연인 사이에 방해꾼이 나타나 두 사람을 혼란 속에 몰아넣었다가 빠져나간 형국이었다. 역시 그 부부는 아니었던 거야. 선유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희야가 좀 상실감이 있는 것 같아요. 매일 찾아오던 후원자가 발길을 끊었으니까요. 이제 희야를 자주 집에 데리고 가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보세요.”

“네. 그런데 지난번처럼 또 울면 어떡하죠?”

“음. 친구를 한 명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희야 마음이 더 빨리 열릴 거예요.”

“친구요?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알겠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와 오리 방으로 들어간다. 희야가 배시시 웃으며 맞이한다.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선유는 얼떨떨하다. 젊은 부부가 발길을 끊은 영문을 모르는 희야는 다시 선유와 호진이 온 것이 반갑다. 이 후원자는 꽤 오래 나를 보러 와 주고 있다. 희야의 말수가 많아졌다. 오랜만에 피아노를 치는 선생님 옆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른다. 아는 노래는 죄다 부를 모양이다. 음치인 희야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선유와 호진은 티 나지 않게 속으로 키득거린다.

  “또 닭싸움할래요.”

“그럴까?”

아이들은 지난번 닭싸움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는 모양이다. 닭싸움이 끝난 다음에는 다시 물놀이가 시작된다. 돌처럼 서서 물을 맞던 희야는 자기 물총을 가지고 와서 아이들 사이에 끼여 장난을 치느라 여념이 없다. 첨벙거리는 물소리, 히히, 하하 웃음소리에 희야의 해맑은 미소가 녹아든다. 선유의 가슴에는 다시 가늘게 희망의 물줄기가 솟아오른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아이들과 매일 뛰어놀다가 아이 한 명 없는 집에 오면 너무 외롭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희야가 또 우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다.

  “책 읽어주세요.” 물놀이를 마치고 젖은 몸을 닦아낸 아이들이 호진에게 몰려든다. 호진은 성우처럼 목소리 톤을 바꿔가며 책을 읽어준다. “어흥!” 호랑이 소리를 흉내 내자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자지러지듯 웃는다. 배꼽을 잡고 방바닥에 누워버리는 아이도 있다. “희야, 책 한 번 읽어볼까?” 선유는 희야가 어느 정도 글을 읽을 줄 아는지 궁금했다.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잘 읽지는 못하겠지만, 유치원에서 배우기는 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만약 희야를 입양하게 된다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하고 싶었다. 선유는 막연하게나마 희야를 어떻게 공부시켜야 할지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희야는 책을 가져와 읽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제법 잘 읽는다. 능숙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늦지는 않다. 

  아이들이 호진의 다리에 매달리고 업어 달라고 성화다. 호진은 차례차례 한 명씩 등에 옆으로 태우고 비행기처럼 몸을 빠르게 돌린다. 

“와!”

“또 해주세요. 또요!”

어느새 희야가 호진의 곁에 가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뭘 해 달라고 한 적이 없던 희야가 “저도 태워주세요.”라고 말한다. 호진은 희야를 가뿐히 등에 태우고 빠르게 오른쪽으로 회전한다. 희야의 몸이 뱅글뱅글 돈다. “저두요, 저두요!” 아이들의 재촉에 희야만 태울 수가 없어 내려놓는다. 희야는 선유에게 다가온다. “업어주세요.” 선유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희야를 본다. “엄마, 잘 못 업는데. 자, 이리 와 업혀 봐.” 선유는 아이를 업어 본 적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화곡동에 사는 작은 외삼촌 댁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세 살 정도 되는 사촌 동생을 업어주었는데 모양새가 영 이상했나 보다. 이웃집 할머니가 선유를 보고 다 큰 아이가 아기 하나도 못 업는다고 핀잔을 주었다. 선유는 그때 얼굴이 확 붉어지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 ‘내가 형편없는 아이인가 보다.’ 수치심이 선유의 심장을 할퀴었다. 희야는 그리 무겁지는 않다. 하지만 키가 작은 선유가 아기가 아닌 희야를 업고 있으니 영 부자연스럽다. 더 어릴 때 만났으면 많이 업어줬을 텐데. 희야가 호진을 보고 “이 사람이!”라고 한다. “이 사람이 뭐야? 아빠 보고.” 선유는 살짝 나무란다. 선유에게는 줄곤 후원자라고 부른다. 호칭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희야야, 이제부터 후원자 엄마, 후원자 아빠라고 불러. 그냥 아빠, 엄마가 이상하면.” 희야는 싱긋 웃으며 그러겠다고 한다. 

  저녁 시간이 되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간다. 식당은 사무실이 있는 본관 건물 왼편에 있다.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고 들어가게 되어 있지만, 아이들은 어지럽게 신발을 벗어놓고 그냥 들어간다. 식당 바닥은 누런 장판지가 깔려 있고 두 줄로 식탁이 줄지어 놓여 있다. 식당은 방이 두 개 있는 구조인데, 한 방은 계단을 두 개쯤 올라서 조금 더 높다. 60명이 넘는 아이들과 직원들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식사를 준비해주는 아주머니들은 매일 보육원으로 출근한다. 아이들은 식판을 가지고 줄을 서 아주머니들이 밥과 국, 반찬을 담아주면 식탁으로 와 앉는다. 반찬은 늘 다섯 가지 정도로 풍성하다. 그런데 식판에 반찬을 다 담는 아이는 거의 없다. 한두 가지가 고작이다. 밥도 절반만 담아오고 국은 아예 가져오지도 않는다. 그나마도 다 먹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의 편식이 심각한 수준이다.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 옆에는 선생님이 앉아 “골고루 먹어야지.”하며 참견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억지로 밥과 반찬을 입 안에 쑤셔 넣고 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선생님이 직접 먹여주면 그나마 끝까지 식판을 다 비운다. 선생님들의 손이 일일이 모든 아이에게 가는 건 불가능하다. 선유는 아이들이 식사하는 광경을 여러번 보았다. 그때마다 ‘가정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윗니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식당은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전부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평소에는 만날 수 없었던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 중학생, 심지어 고등학생도 있다. 고등학교 아이들은 제법 선생님들과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농담도 하고 대화를 나눈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과 중학생 남자아이 중에는 눈빛이 서늘한 몇 아이가 눈에 띈다. 선유는 그 아이들의 가슴에 깊이 베인 상처가 보이는 것만 같다. 어쩌면 편견인지도 모른다.

  시끌벅적한 식사 시간이 끝나고 선유는 희야에게 “엄마, 아빠 바래다줘야지.”라고 말을 건네본다. 희야가 몸을 일으키니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나선다. 전에는 현관까지만 나왔던 아이들이 신을 신는다. 

“어디까지 가요?” 

“정문까지.”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선유와 호진을 호위한다. 희야는 “차 타는 데까지 갈래요.”라고 말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선유는 가슴이 뭉클하다. “거긴 너무 머니까 여기까지만 와도 돼. 고마워.” 선유는 무릎을 굽히고 희야를 꼭 껴안는다. 작은 희야의 몸통이 선유의 두 팔 안으로 쏙 들어온다. 탄탄한 등의 촉감이 손등에 전달된다. 희야는 싫지 않은지 몸을 빼지 않는다. 희야를 포옹한 건 처음이다. “당신도 안아줘요.” 호진이 희야를 껴안으니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길게 쑥 뺀다. 아직은 어색할 것이다.

  “희야, 다음에 아빠, 엄마 집에 올 거야?”

“네. 근데 솔이 언니랑 갈 거예요.”

“그래, 솔이랑 같이 와.”

솔이는 희야보다 두 살 많은 언니다. 진주와 함께 오리 방에서 제일 큰 언니인데, 희야가 잘 따른다. 일곱 살 다연이와 여덟 살 영은이, 아홉 살 솔이는 소위 기가 세 보이는 아이들이다. 다른 일곱 살 은아와 소망이, 아홉 살 진주는 순한 편이다. 선유의 눈에는 희야가 제일 순둥이로 보였다. 다연이와 영은이는 선유와 호진이 와 있을 때도 자주 싸우곤 했다. 아이들끼리 다툼이 있을 때 솔이가 한마디를 하면 아이들은 이내 잠잠해졌다. 온순한 선생님조차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지 못해 쩔쩔매는 게 일상이었다. 솔이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성질을 내서 아이들을 제압하는 식으로 오리 방의 최강자임을 입증했다. 그런 솔이가 희야와 같이 와 준다면 희야가 든든할 것이다. 선유는 안심이 된다. 

  정문에서 손을 흔들고 선유와 호진은 돌아서서 논길로 접어든다. 아쉬운 마음에 선유는 뒤를 돌아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벌써 저만치 뛰어가 있을 줄 알았던 희야가 뒤를 돌아보더니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선유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선다. 희야는 몇 번을 반복해서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감동이 선유의 아랫배 주변에서 파도치며 넘실댄다.

“여보, 이게 뭔 일이야! 희야가 돌아보다니! 이제 희야의 마음이 열리고 있는 걸까?”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호진은 희야를 등에 태우고 비행기를 태워줄 때 잠시 짜릿했던 기분을 떠올린다. 아빠가 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지 호진은 아직 모든 게 모호하다. 희야의 태도에 변화가 나타났지만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선유가 또 흥분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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