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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Jul 12. 2024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13장

  최근 선유는 네이버에서 입양 부모들이 활동하는 카페를 찾아 가입했다. 매일 들어가 글을 읽는 게 일과가 되었다. 대부분 입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궁금한 질문이나 신생아를 입양한 후 행복한 일상을 올렸다. 선유네처럼 큰아이를 입양하는 가정은 거의 없었다. 선유는 희야를 만난 내용과 현재의 고민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희야를 입양하기를 바란다는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었다. 그러나 정작 선유의 고민에 이렇다 할 실제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희야의 태도가 달라진 날 선유는 보고하듯이 그 내용을 카페에 올린다. 영준 맘이라는 이름으로 댓글이 달린다. 다섯 살 남아 입양을 진행한다고 한다. 희야와 비슷하게 집에 와서 낮에는 잘 놀다가 저녁이 되면 보육원에 가고 싶다고 운단다. 집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굳어지고 말이 없어진단다. 서로 친밀한 시간을 충분히 갖기로 했다고 한다. 선유는 곧바로 댓글을 단다. 

  “어머 너무 반가워요. 정말 상황이 비슷하네요. 만난 횟수도 거의 같고요. 아이의 반응도 어쩜 그리 똑같을까요. 아이들 마음이 비슷한가 봐요. 영준 어머니는 입양하기로 마음을 굳히셨나 봐요. 저는 아직 고민 중이에요. 아이가 너무 큰 충격을 받을까 봐 그것이 저를 많이 망설이게 하네요. 아이가 우리에게 적응이 되고 정이 들어서 익숙한 곳을 떠날 용기를 갖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 아직 모르겠어요. 입양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생각도 해요. 근데 토요일 이후로 자꾸 희야가 보고 싶고 다음 만남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싶어요. 다음번에는 같은 방 언니랑 같이 오기로 했어요. 같이는 온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그 방법을 써 보기로 했어요. 희야 있는 보육원에도 남자아이들이 훨씬 많아요. 그 아이들 너무 마른 거 보고 놀랐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남자아이 입양 결정하시길 정말 잘하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진행 상황 주고받으며 격려하고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준 맘. “저희는 아이가 이미 저희를 부모로 인정한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행하려고요. 일 년을 기다려보고 정 안 되면 후원자로 남자고 남편한테 얘기했는데, 그때 되면 정이 많이 들어서 포기 못할 것 같고...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선유. “저희랑 맘이 비슷하네요. 저희도 일 년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넉 달째로 접어들었네요. 입양 못 해도 희야 옆에 항상 있어 주려고요. 나중에 희야가 컸을 때 입양 못한 거 후회하지 않게 잘 결정해야지요.” 같은 길을 가는 동지를 만난 듯 반갑고 든든하다. 

  “이제부터 매주 희야를 집에 데려오려고 해요. 희야가 솔이랑 같이 온다고 하던데, 아이들을 번갈아 데리고 오면 어떨까 싶어요. 그러면 희야가 안정감을 느낄 것 같아요.”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희야와 익숙해지는 게 힘들어질 수 있어요. 그냥 희야 혼자 데리고 가세요. 거기서 친구가 생기는 게 제일 좋아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국장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차분하지만 단호하다. 국장의 지도를 따르는 게 최선일 것이다. 국장 외에는 상의할 사람도, 구체적인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다. 희야가 친구를 사귈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과제도 만만치 않다. 누가 있지? 선유는 마음으로 크게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아, 니나가 있었지!”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니나. 선유가 만나는 러시아권 여성 중 키르기즈스탄 출신 나디라의 딸 니나가 일곱 살이었다. 선유가 입양한다고 했을 때 나디라는 몹시 흥분했었다. 감동이 된다고 하면서 니나와 친구가 되게 해주자고 했었던 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건다. “그럼, 소냐! (러시아권 여성들 사이에서 선유는 소냐로 불렸다.) 당연히 좋지. 니나도 혼자라 늘 심심해해. 우리 토요일에 물놀이가는데 같이 갈까?” 희야가 아이들에게 물총을 쏘고 노는 걸 보면서 물놀이를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쉽게 해결되다니. 수영복을 챙겨오라고 해야겠다. 기대에 부풀어 심장이 쿵쿵거린다. 

  금요일이다. 호진이 퇴근하면서 희야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 선유는 이미 청소를 깔끔히 마치고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시계를 연신 올려다본다. 현관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리며 두 여자아이가 뛰어 들어온다. 희야와 소망이다. 

“앗, 소망아! 소망이가 왔네! 어떻게 된 거야?”

“희야가 혼자 오지 않겠다고 해서. 소망이가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보내셨어.”

  희야보다 소망이가 먼저 다람쥐처럼 날쌔게 거실로 뛰어든다. 희야와 동갑이고 항상 선유에게 업어달라고 하던 소망이. 희야보다 몸집과 얼굴이 작고 귀여운 아이다. 늘 생글거리고 애교스럽고 장난치기도 좋아해 오리 방의 마스코트였다. 희야처럼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시골 아이다운 순박함이 선유는 좋았다. 자주 선유네 집에 와 보고 싶다고 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소영이는 어릴 때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빠가 키우다가 보육원에 맡긴 아이였다. 소영 아빠는 소영이를 찾아오지 않지만, 가끔 보육원에 전화해 소영의 소식을 묻는다고 했다. 소영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데려갈 계획이었다. 희야는 입양과 상관없이 곧 동갑인 은아와 소망이와 헤어지게 되어 있었다. 보육원에서 친구들이 떠난다면 희야도 떠나는 게 낫지 않을지 선유는 여러 번 헤아려봤다. 

  소망이 때문인지 희야의 얼굴이 환히 상기되어 있다. 아직 저녁 먹기는 이르다. 아파트 안의 놀이터로 두 아이를 데리고 간다. 저녁 식사 직전까지 놀이터는 네 살부터 열 살 정도 아이들로 늘 북적댄다. 소영이를 데리고 와서 놀았던 그 놀이터다. 소망이는 다른 아이들의 존재에는 관심도 없다. 그네와 시이소오, 정글짐을 자유롭게 탐험한다. 희야가 소망이처럼 거침없는 아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희야 역시 소망이와 둘이 붙어서 깔깔거리며 놀이터를 휘젓는다. 놀이터의 그네는 보육원 그네에 비하면 시시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높이 올라 봐야 남자 어른 키 정도다. 그래도 희야가 그네를 타기 시작하자 다른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네 위에서 희야는 무슨 노래인가 흥얼거린다. 희야의 얼굴은 웃고 있는데 노래의 멜로디는 구슬프다. 귀를 기울여 가사를 들어보니 유치원을 졸업할 때 부르는 이별에 대한 노래다. 희야는 전에도 그 노래를 자주 부르곤 했다. 선유는 희야가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희야에게 이별이 슬픈 사건이 되지 않기를, 행복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슬픔을 능가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희야와 소망이가 함께 철봉 쪽으로 달려간다. 제 키보다 훨씬 높은 철봉에 어떻게 오를까, 선유는 설마 하며 둘을 주시한다. 그런데 희야는 오른쪽, 소망이는 왼쪽 철봉의 지지대를 붙잡더니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작은 몸이 조금씩 땅에서 떨어져 위로 올라간다. 팔을 뻗쳐 더 위쪽을 잡으면 곧 두 다리가 따라간다. 두 마리 다람쥐가 나무를 오르듯이 날렵하다. 이내 철봉 위에 올라 두 손으로 잡고 대롱대롱 매달린다. 두 다리를 철봉 위에 걸치고 흔들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두 마리 새끼 원숭이다. 둘 갈래로 묶은 소망이의 머리카락이 아래로 쳐진다. 선유는 어릴 때 보았던 말괄량이 삐삐가 눈앞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늘 기발한 놀이로 매일의 일상을 모험으로 채웠던 삐삐가 여기 있지 않은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선유는 아이들의 귀여운 몸짓을 폰에 담는다. ‘아, 행복하다, 정말 행복해! 아이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처음 보육원에 간 날 벅차올랐던 순간이 몇 달 만에 되돌아오고 있다. 소망이도 입양 대상 아동이라면 둘을 함께 입양하고 싶다. 자매가 있다면, 희야도 소망이도 평생 의지가 될 것이다. 선유는 소망이가 아빠에게 가더라도 아이들끼리 연락하고 지낼 방법을 찾고 싶다.

  저녁 식사 후 욕조에 물을 가득 채워 둘이 물장난을 치고 놀게 한다. 닫힌 욕실 문 너머로 한 시간 이상 첨벙거리는 물소리, 꺄르륵, 호호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선유는 거실에 앉아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희야가 오 분이 멀다 하고 “엄마!”하고 부른다. 소망이도 덩달아 선유를 “엄마”라고 한다. 희야가 이렇게 쉽게 엄마를 외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면 이거 봐라, 저거 봐라, 뭘 갖다 달라, 별일도 아닌 일로 계속 호출이다. 아이들의 요구에 응해주는 것이 전혀 귀찮거나 힘들지 않아 선유는 스스로 놀란다. 아이들은 속에 있는 숨은 활력을 끌어내 주는 마법을 부릴 줄 안다. 같이 살게 되어도 이럴까? 그렇다면 매 순간이 행복으로 충만할 텐데. 아이들의 끊임없는 요구에 응하는 일이 얼마나 고역이고 지치는 일인지 선유는 감조차 잡지 못한다. 물놀이를 마친 희야와 소망이는 금세 곯아떨어진다. “아이들하고 같이 지내보니 재밌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어?” 선유의 질문에 호진은 긍정으로 답한다. 호진도 점점 희야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일곱 시가 되어 아이들이 깨어나 아침부터 집이 시끌벅적하다. 희야 혼자 올 때는 조용했던 아침이 사뭇 다르다. 두 아이의 움직임과 말, 웃음소리로 가득 찬 집안 분위기는 여느 집에서나 있는 풍경이지만, 선유에게는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이다. “오늘은 뭐해요? 어디로 가요? 누구 만나요?” 희야가 하루 일정을 꼬치꼬치 묻는다. “오늘 물놀이하러 가까운 수영장으로 갈 거야. 거기서 니나라는 아이를 만날 거야. 너하고 동갑이야. 이제 니나하고 친하게 지내야 해. 응?” 희야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희야, 보육원 생각 나?”

“아니요.”

“그럼, 이제 엄마, 아빠랑 살 거야?”

“네.”

“다음에는 혼자서도 올 수 있어?”

“네.”

“혼자 와도 울지 않을 거야?”

“네.”

희야의 말을 믿어도 될지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 희야의 모습이라면 희망적이다. 

  최근에 은아가 미국으로 떠났다. 보육원에서 미리 말해주지 않아 선유는 은아와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다. 선유에게 그 사실을 알릴 이유가 없었겠지만, 선유는 못내 서운했다.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던 은아, 새로운 가족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던 은아에게 꼭 마지막 인사와 선물이라도 하고 싶었다. 입양 간 집 주소라도 알아서 나중에 희야와 연락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비현실적이었다. 보육원에서는 그런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아기 때부터 졸곧 함께 자랐던 은아와 하루아침에 헤어졌을 때 희야의 마음은 어땠을까.

“은아 떠나서 희야 괜찮아?”

“네...나도 은아처럼 떠나는 거예요?”

“으응.”

보육원 아이들은 ‘떠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아이들과 선생님들, 후원자들이 떠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하면서 아이들은 떠남에 길들어 버렸다. 희야에게 입양의 의미는 집에 ‘오는’ 것이 아니라 보육원을 ‘떠나는’ 것이다. 지금 희야의 표정에는 불안이나 두려움이 깃들어 있지 않지만, 선유는 여전히 착잡한 심경이다. 한 생명의 뿌리를 뽑아 전혀 다른 토양에 옮겨심는 일이 아이에게 과연 어떤 경험일까. 그 어마어마한 사건을 조만간 맞이할지도 모르는데 희야는 평온하기만 하다. 캠프에서, 그리고 6월 한 달 동안 보여주었던 모습과 너무 달라서 선유는 안심이 되면서도 혼란스럽다. 

  7월의 더위는 맹렬하다. 쨍쨍 찌는 날씨가 물놀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표를 구매하기 위해 입구에 줄을 서 있는데 누군가 희야를 부른다. “희야야, 아유, 반가워라. 여기서 다 만나네.” 선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캠프에서 만났던 희진 엄마가 희진이와 유진이와 함께 뒷줄에 서 있다. 희야가 입양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밤새 유진이를 재우려고 애를 쓰던 엄마였다. 

“어머, 여기 사셨어요?”

“아니에요. 아이들이 하도 물놀이를 가자고 해서 왔어요. 한 시간 걸려 왔어요.”

희진 엄마는 선유와 동갑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 둥근 눈매와 웃을 때 활짝 벌어지는 입술이 사람 좋은 인상을 풍긴다. 희야는 기억나는지 예의 수줍은 미소로 인사한다. 소망이는 누굴까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는 아줌마야.” 선유가 살짝 소망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캠프 갔을 때 희야랑 만났어.” 소망이는 씩 웃는다. ‘여기서 만나다니 우연이 아니야.’ 선유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입양과 관련해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이 생겼다.

  수영장은 이미 아이들로 꽉 차 있다. 수영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작은 파도 풀장이 있는 시설이었다. 작은 파도로 출렁이는 물소리,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고함으로 귀가 따갑다. 파란색과 노란색 원피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희야와 소망이가 튜브를 들고 신이 나서 물속으로 뛰어든다. 선유와 호진은 타일이 깔린 바닥에 큰 타올을 펼치고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아 아이들을 시야에서 놓쳤다간 큰일이다. 희야는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있어서인지 소망이 손을 꼭 잡고 다닌다. “희야가 의젓하네, 꼭 소망이 언니 같지?” 선유는 벌써 희야의 진짜 엄마라도 된 듯 희야가 자랑스럽다. 잠시 후 입구 쪽에서 니나와 나디라, 나디라의 남편이 걸어온다. 호진이 희야와 소망이를 데리고 온다. “희야야, 이 친구가 니나야. 너랑 동갑이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니나야, 앞으로 희야랑 친하게 지내 줘.” 니나는 동그란 고양이 눈을 하고 뺨이 통통하고 균형 잡힌 체형을 갖고 있다. 똘똘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선유는 돌이 될 무렵부터 줄곧 니나를 보아왔었다. 불과 넉 달 전만 해도 니나가 입양할 아이의 친구가 될 것이라는 걸 상상이나 해 보았겠는가.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역시나 희야는 경직된다. 소망이는 태평하다. 세 아이를 섞어 놓으니 희야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소극적으로 변한다. 얌전한 성격을 가진 니나도 희야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결국 나디라의 남편이 니나와 놀아주고 희야와 소망이는 조금 떨어져서 둘만 논다. 다른 아이들과 섞여 있으면 희야의 행동은 확실히 다른 티가 난다. 전날의 씩씩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는 희야가 선유는 또 안쓰럽다. 희야에게 세상은 어떤 곳일까. 두려움 없이 세상에 다가갈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게 가능할까. 파란색의 희야 수영모를 눈길로 쫓으며 선유는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물놀이 후 아웃백에 가서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서먹서먹해한다. 소망이조차 말수가 없어졌다. ‘처음이니까 차차 친해지면 돼.’ 

  일요일이 되어 희야와 소망이를 교회에 데려간다. 희야와 소망이는 더할 나위 없이 얌전하게 주일 학교와 러시아 예배까지 모든 일정을 소화한다. 아는 사람들이 지나가며 “누구예요?”라고 한 마디씩 묻는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다. 선유는 작은 목소리로 “입양하려는 아이예요.”라고 답한다. 선유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구나.” 사람들은 희야에게 호의적인 웃음을 보내주고 친절히 말을 건넨다. 호들갑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반응이 선유는 고맙다. 희야는 왜 처음 보는 사람이 모두 자기에게 인사를 하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싫지는 않지만 어색하기만 하다. 하루 종일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러나 보육원이나 유치원에서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걸 희야는 본능적으로 안다. 선유는 그것이 희야에게 얼마나 큰 자제력을 요하는 일인지 알 턱이 없다. 

  유 집사가 아이들을 차로 보육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자청한다. 호진이 앞 좌석에 타고 희야와 소망이가 뒷좌석에 앉는다. 선유는 교회 주차장에서 아이들에게 손을 흔든다. 벌써 마음이 허전하다. 이박삼일이 꿈처럼 흘러갔다. 차가 천천히 출발하여 출구 쪽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선유는 뒷자리에 좌석 위로 빼꼼 솟은 희야의 머리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 머리가 움직이더니 희야가 서 있는 차 뒷유리를 통해 선유를 돌아본다. 순간 선유의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게 솟구친다. 작은 희야의 행동에도 선유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제 희야의 마음에 자신이 자리하고 있는 거라고. 

  집에 돌아와 전날 찍은 폰 속 사진을 들여다본다. 소파 한가운데 호진이 흐뭇한 미소를 띠고 앉아 있다. 호진의 머리 위에는 14년 전 결혼사진이 벽에 걸려있다. 소망이가 호진의 왼쪽 허벅지에 머리를 얹고 몸을 옆으로 하고 누워 있다. 오른손으로 과자를 입에 넣고 장난스레 웃는다. 반 팔 티셔츠가 올라가 배꼽이 훤히 드러나 있다. 선유는 익살스러운 소망이의 자세에 피식 웃음이 난다. 희야는 호진의 오른쪽에 앉아 몸통을 왼쪽으로 숙여 얼굴과 등이 호진의 오른쪽 가슴에 닿아있다. 그리곤 왼팔을 호진의 허벅지에 대고 손으로 턱을 괴고 있다. 호진의 오른쪽 손은 희야의 오른팔을 감싸 안고 있다. 희야의 표정은 뭔가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다.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아빠와 딸들이다. 선유는 한동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렇게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을까. 깊은 심호흡을 하며 차에서 뒤를 돌아보았던 희야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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