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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Aug 05. 2024

네가 나에게 왔다

16장


  시간의 흐름이 빨라진다. 어느덧 10월로 접어든다. 10월 첫째 주 토요일 아침 호진과 선유는 외출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같은 도에 있는 보육원들의 연합 행사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희야는 이 행사에 대해 여름 방학 때부터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거기서 희야는 뭐해?”
 “우리는 에델바이스를 부를 거야. 지금 연습하고 있어.”

“그럼, 영어로 부르는 거야?”

“응.”

“오, 한번 해 볼래?”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에브리 모닝 유 그릿 투 미...”

희야는 영어 가사를 한글로 적은 공책을 집으로 가져 와 연습하곤 했다. 음치에다 서툰 영어 발음이지만 희야는 진지했다.

“나는 합창만 해. 다연이가 중간에 혼자 부르는 데가 있어.”

“그래?”

희야와 동갑인 다연이는 노래를 잘 부른다. 선유는 희야가 무대에 올라 어떻게 노래를 부를지, 다연이는 혼자서 어떤 음색으로 노래할지 상상하며 손꼽아 그날을 기다렸다.

  얼마 전 호진에게 드디어 자동차가 생겼다. 호진의 아버지가 쓰던 자동차를 서울에 사는 호진의 외사촌 남동생 정훈이 몰고 내려왔다. 호진의 아버지는 이 년 전 파킨슨병을 진단받아 외부 활동이 불가능하다. 주차장에 붙박이장처럼 서 있던 자동차를 호진에게 가져가라고 한 것이다. 정훈과 정훈의 여자친구가 희야를 만나 친근하게 대해준다.

“아직 부모님께는 아는 척하지 마라. 우리가 조만간 직접 말씀드릴 테니.”

“알겠어요, 형. 고모나 고모부도 좋아하실 거예요.”

드디어 차가 생겼으니 더 이상 희야와 기차를 탈 일이 없어졌다.

  도시 변두리에 있는 행사장까지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린다. 호진은 마흔다섯 살에 처음으로 먼 길을 운전한다. 호진과 선유는 제법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해마다 있는 행사지만 오직 희야를 위해서만 행사에 참여하는 어른은 그들이 유일할 것이다. 희야에게 두 사람이 선물이 되고 싶다. 선유는 호진을 믿을 수 없어 집을 나서자마자 긴장감에 몸이 잔뜩 움츠러든다. 고속도로로 접어들어서는 좌불안석이다. 호진은 차선을 바꿀 때나 곡선을 주행할 때는 영 운전이 서툴다. “여보, 희야 데리고 다니려면 운전 연습 많이 해야겠다.” 희야에게 가는 길이 아니라면 굳이 이 먼 길을 차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선유에게서 몇 번의 고함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고속도로 오른쪽으로 행사장이 나타난다.

  제법 큰 홀에 사람들이 꽉 차 있다. 보육원 팻말이 홀 곳곳에 세워져 있고 각양각색의 복장으로 옷을 맞춰 입은 아이들이 앉아 있다. 홀 뒤쪽 좌석에는 후원자들이 자리를 잡는다. 와글와글 떠들고 웃는 소리로 홀은 생기에 넘쳐있다. 행사를 앞두고 아이들은 흥분하고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이렇게 많은 시설 보호 아동들을 한꺼번에 보니 선유는 묘한 감정에 휘감긴다. 이 많은 아이가 다 부모의 그늘 밖에서 자라고 있다니. 그런데도 표정에 어떤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지지 않은 게 신기하다. 선유의 눈길은 희야를 찾아 바삐 움직인다. 저쪽 앞에 오리 방 여자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에 희야도 보인다. 아이들은 모두 청바지에 흰 티를 맞춰 입고 있다. 희야의 앞머리가 짧게 잘려있다. 꽤 귀엽다.

  “희야야, 엄마 아빠 왔어.” 선유는 활짝 웃으며 희야를 향해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후원자님!” 다른 아이들이 선유를 알아보고 손을 흔든다. 그런데 정작 희야는 호두같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힐끗 선유와 호진을 보고는 고개를 돌린다.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반갑게 맞아줄 줄 알았던 희야의 행동에 선유는 또다시 희야가 낯설어진다. ‘어, 왜 그러지, 갑자기?’ 그동안 친해졌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을까. 희야 옆으로 가 이 말 저 말 시켜보아도 희야는 시큰둥하기만 하다. 일단 희야 옆자리에 앉아 공연 차례를 기다린다. 다른 팀들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희야는 앞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다. 선유는 자주 희야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뿌연 안개 속 같은 희야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난 삼 개월을 뒤로 건너뛰어 6월로 돌아가 버린 것 같다.

  공연이 시작된다. 무대 위에는 전체 스무 개 팀의 춤과 연극, 합창, 연주 등 다양한 공연이 진행된다. 복장과 도구들의 색채와 목소리, 악기의 소리가 어우러져 한바탕 즐거운 향연이 펼쳐진다. 몇 달 동안 땀 흘려 연습했을 것이다. ‘저 모습을 아이의 부모들이 와서 보아야만 하는데.’ 아이 각자 자기 한 명만을 바라봐주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한다. 선유는 특히 다섯 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에게 눈길이 간다. 저 아이들은 입양 대상일까. 입양 대상 아동이 있다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가정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가슴을 저민다.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시설 보호 아동들이 많은 것일까. 입양을 준비하는 몇 달 동안 보육원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에 대해 관심이 계속 커진다. 모든 아이를 입양할 수 없다면 다른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랄지 사명감 같은 것이 자라난다.

  희야의 보육원 차례다. 오리 방 선생님과 몇 명의 아이들이 도레미 송을 부른다. 솔이와 영은이가 무대 위에서 깡충깡충 뛰며 노래를 부른다. 희야가 자기는 도레미 송을 부르지 않는다며 부러워했다. 이어 보육원 아이들 전체가 무대에 올랐다. 세 줄로 늘어선 아이들이 오십 명이 넘는다. 키가 작은 희야는 맨 앞줄 그것도 거의 정중앙에 선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에브리 모닝 유 그릿 투 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주제로 한 공연이다. 아이들은 손을 뒷짐 지고 몸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흔들면서 합창한다. 희야는 전혀 긴장한 내색 없이 입을 한 번도 다물지 않고 열심히 노래한다. 다른 아이들은 옆을 쳐다보기도 하고 뒤를 돌아보기도 하는데, 희야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다.

  선유에게는 오로지 희야만 보인다. ‘저 아이가 내 딸이야.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다른 엄마들은 이런 순간을 여러번 경험했을 것이다. 선유는 영원히 자기 차지가 될 수 없을 줄 알았던 선물 보따리를 두 손 가득 안은 듯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다. 오늘따라 희야의 양 볼이 통통하고 발갛게 상기되어 더 예뻐 보인다. 늘 뭔가 단정하지 않았던 머리도 오늘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뒤에 묶은 큰 리본도 잘 어울린다.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보아도 선유를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희야가 호진을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그런 것도 같다. 외모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자신과 닮지 않은 희야가 낯설면서도 이미 희야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었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선유 안에서 일렁거린다.

  모든 공연이 끝난다. 희야의 보육원은 등수 안에 들지 못한다. 다른 팀들이 워낙 독창적인 공연을 선보인 까닭이다. 그래도 참가한 모든 팀이 골고루 상을 받는다. 선유와 호진은 희야와 사진을 찍고 싶어 다시 가까이 다가간다. “우리 희야 너무 잘하던걸. 정말 잘했어.” 칭찬에도 희야는 여전히 뚱하다. 5학년 초연이 옆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엄마 아빠랑 사진 찍을까?” 대꾸가 없다. “그럼, 초연 언니랑 찍을래?” 초연이의 손을 꼭 잡고 비로소 살짝 미소 지으며 사진을 찍는다. 선유는 못내 서운하지만, 더 묻지 않는다. 희야의 표정은 ‘빨리 가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홀을 빠져나갈 때도, 행사장 밖에서 전체 사진을 찍을 때도 선생님 옆에 바짝 붙어 선유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선유와 호진은 희야 뒤를 졸졸 따라갈 수밖에 없다. 몇 대의 차에 아이들이 나눠타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희야야, 후원자님에게 인사드려야지.” 선생님이 말해도 듣는 척도 않는다. “희야, 잘 가. 다음 주에 보자.” 결국 희야의 인사를 받지 못하고 차가 떠나버린다.

  선유와 호진은 희야가 탄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자동차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여보, 희야의 마음을 도무지 모르겠어. 왜 그랬을까?”

“글쎄...”

“아직은 우리보다 언니나 선생님이 더 의지가 되나 봐. 우리가 와서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우리가 부담스러운가 봐.”

“그런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 상태로 괜찮을까? 이제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나 봐. 걱정된다.”

“희야가 자꾸 변하잖아. 또 좋아지겠지.”

“그럴까? 솔직히 오늘은 선생님에게 질투가 나기까지 했어. 우리 딸이 될 아인데 우리보다 선생님을 더 따르고 의지하니까. 아직은 그게 당연한 건데. 나도 내 마음이 이런 게 당황스러워. 당신은 안 그래?”

“난 그렇진 않아.”

“희야가 우리 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봐. 마음이 조급해져. 빨리 희야랑 살고 싶어. 진짜 법적인 희야 엄마가 되고 싶어.”

선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자꾸 조바심이 난다. 이런 일방적인 관계가 끝나고 희야가 그들 부부의 품을 향해 달려 들어오는 날을 기다리는 게 힘들다. 지금까지 잘 왔으니 조금만 참자고 선유는 스스로 다독인다. 오, 희야가 선유에게 달려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았더라면 선유는 조바심을 내는 대신 다가올 입양 이후 시기를 차분히 준비하는 데 신경을 썼을 것이다.

  바로 다음 주 금요일에는 희야가 다니는 유치원과 언니, 오빠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발표회가 있다. 여름부터 아이들은 두 개의 행사를 동시에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희야는 ‘에델바이스’와 함께 크레용 팝의 ‘빠빠빠’ 춤을 연습했다. 선유는 “한번 해 볼래?” 했다가 깜짝 놀라 “다시, 다시”하며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희야가 춤을 이렇게 잘 추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표정에는 수줍음이 역력한데 희야의 몸은 음악을 타고 계속 움직인다. 특히 “점핑 예 점핑 예 에브리바디” 부분에서는 두 손을 꼭 모아쥐고 무릎을 구부렸다 펴면서 통통 탄력 있게 튀어 오른다. 선유는 “어머, 어머”를 연발한다. 아이의 재롱을 눈앞에서 보는 엄마의 호사를 선유가 누리고 있다. 희야는 에너지만 넘치는 게 아니라 끼 또한 다분한 아이다. ‘볼수록 나랑 다르네. 매력이 넘치는 아이야.’ 자신에게 없는 면을 가지고 있는 희야가 딸이 된다는 게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이렇게 한 것도 없이 자녀를 얻어도 되는 것일까. ‘너무 과분해.’ 선유가 진짜 딸을 삼는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다는 걸, 충분한 수고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걸 짐작했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선유는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걷기 시작한다. 희야가 다니는 유치원은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다. 기차역에서 가깝다고 했다. 평일이라 선유 혼자다. 가을 햇살이 뜨겁다. 작은 동네를 가로질러 길 끝까지 다다르니 저 멀리 누렇게 물든 논 한 가운데 학교 건물과 운동장이 보인다. 선유는 어떤 길로 가야 그 학교에 다다를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논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이 나 있지 않아 돌아서 가야 할 판이다. 폰을 켜 시간을 확인한다. 10시부터 시작인데 십 분밖에 남지 않았다. 목적지가 시야에 들어와도 선유의 걸음으로 십 분 안에 도착하는 건 어림없다. 선유는 초조해진다. 걸음을 재촉해보아도 학교가 더 가까워지지 않는다. 구두를 신은 발뒤꿈치가 까져서 따끔거린다.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선유는 “어떡해, 어떡해?” 하며 헉헉거리다 결국 폰을 꺼내 든다.

“희야 어머니, 지금 어디세요?”

“지금 학교가 보이는데 길을 모르겠어요. 곧 시작하죠? 늦어서 어떡해요?”

“곧 시작이니 빨리 오세요. 거기가 어딘지 설명해 보시겠어요?”

선생님이 알려준 길을 따라 땀을 뻘뻘 흘리며 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선다. 파란색 지붕에 이층 짜리 건물이다. 그런데 운동장은 왜 이리 넓은가. 벌써 시작되었을 텐데 희야 순서가 끝났으면 어쩐다지. 선유는 초조해진다. 희야가 춤추는 걸 못 본다고 생각하니 맥이 쪽 빠진다. 희야의 실망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뛰다시피 하는데 저쪽에서 선생님이 맞이하러 걸어온다.

“어서 오세요. 이제 곧 희야 순서예요.”

“휴, 다행이네요.”

선유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선생님을 따라 초등학교 건물을 돌아 강당으로 올라간다.

“희야가 엄마가 온다고 하니 기분이 이상한가 봐요. 많이 기다리는 눈치예요.”

“그래요?”

뜻밖이다. 한 주 전에는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더니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선유의 마음이 설렘으로 출렁인다. 목구멍에 감동이 단감처럼 걸려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부모 자격으로 처음 학교에 방문하는 셈이다. 낯설고 묘하고 흥분된다. 게다가 희야가 기다리고 있다니 지난 토요일처럼 외면하면 어쩌나 걱정으로 동요했던 가슴이 진정된다.

  이층에 있는 작은 강당은 입구부터 복작거린다. 무대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들락거린다. 쿵쿵거리는 음악 소리가 밖에까지 흘러나온다. 선유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고 희야가 어디 있는지 찾는다. 강당 앞쪽에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희야가 보인다. 그런데 어머나, 배꼽이 드러나는 짧은 티에 짧은 치마, 모자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거기에 진한 무대 화장. 빨간색 립스틱에 짙은 눈화장, 볼까지 메이크업을 한 희야의 모습에 선유는 절로 피식 웃음이 난다. “희야야, 잘해. 화이팅!” 선유를 발견한 희야는 수줍은 듯 발그레 볼이 상기되며 살포시 웃어준다. ‘오늘은 반가워하네. 아, 좋아라!’ 기쁨이 잔잔히 가슴 전체로 퍼져나간다.

  지난 토요일에 희야가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초연이가 사회를 본다. 동그란 눈에 늘 활짝 웃는 표정의 초연이는 어두운 그늘이 전혀 없다. 목소리에도 당당함과 자신감이 묻어난다. 부모와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 사실만으로도 아이의 얼굴에 빛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발표회에 초연의 부모는 오지 못했다. “이제 우리 막내 귀여운 유치원 친구들의 공연이 있겠습니다. 자, 힘찬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초연의 소개가 끝나자 무대 위로 우르르 올라오는 아이들. 배가 훤히 드러난 옷에다 모자를 거꾸로 쓰고 선글라스까지 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객석에서 폭소가 터진다. 일곱 명의 아이 중 여자아이는 희야와 다연 둘뿐이다. 희야는 무대 왼쪽에서 세 번째에 선다. 음악이 흐르자 아이들은 번쩍이는 조명 속에서 콩콩 뛰고 손을 위아래로 휘젓고 다리를 구른다. 희야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실수 없이 열심히 춤을 춘다. 영락없는 무대 체질이다. 선글라스 때문에 희야의 표정이 가려진 게 아쉽다. ‘희야는 지금 내가 보는 걸 의식할까?’ 오로지 자신을 봐주기 위해 와 준 단 한 사람. 희야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건지 아는 건 해저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중간에 희야의 머리에서 모자가 벗겨져 바닥에 떨어진다. 얼마나 열심히 추었으면. 희야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춤을 춘다. 희야의 머리칼이 공중으로 나부낀다. ‘빠빠빠’가 끝난 후에 바로 다른 곡이 이어진다. 가사를 들어보니 “울 엄마 울 아빠 정말로 사랑해요...”라는 내용이다. 이 곡은 집에서 연습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일곱 명의 아이 중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육원 아이들이다.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 이런 곡을 연습했다니 선유의 가슴이 아리다. 어른들은 때로 아이들에게 참으로 무심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종달새처럼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희야는 저 노래를 부르며 나와 남편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노래가 끝난 후 희야는 냉큼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집는다. 퇴장하면서 흰 장갑을 낀 손을 객석 쪽으로 흔든다. ‘혹시 나에게?’선유는 그리 믿고 싶다.

  “우리 희야 너무 잘했어.” 선유가 엄지를 치켜올린다. 희야의 쑥스러운 웃음에 부담감은 찾아볼 수 없다. ‘오늘은 덜 불편한가 보다. 다행이야.’ 행사가 끝나고 유치원 아이들은 노란색과 회색이 섞인 유치원복으로 갈아입는다. 유치원 선생님이 희야가 지내는 유치원 교실로 안내한다. 희야가 생활하는 또 다른 중요한 공간이다. 넓은 교실 하나에 아이들이 활동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선유는 천천히 교실을 둘러본다. 벽에는 희야가 그린 그림이 걸려있고, 선반에는 종이접기, 만들기 작품이 놓여 있다.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파일이 책꽂이에 꽂혀있다. 선유는 희야의 이름이 적힌 파일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희야의 글씨와 그림, 사진 등 그동안 유치원에서 무엇을 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매일 유치원 등원을 도왔을 것이고 자주 유치원에 찾아와 아이들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희야를 비롯해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그런 관심을 기울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파일을 넘기는 선유의 손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선유는 피부가 고운 오십 대인 여자 선생님이 자상하고 친절한 분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종종 희야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선생님을 막상 만나니 희야가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는 게 확인된다. “희야가 얼마나 야무지고 똑똑하고 말도 잘 듣는지 몰라요. 착하고 배려심도 많고 아이들하고도 잘 지낸답니다.” 선생님은 침이 마르게 희야를 칭찬한다. 희야는 보육원에서도 국장과 선생님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아이다. 희야가 입양되면 가정에 잘 적응하고 부모에게 만족을 안겨주리라는 걸 의심하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다. 선유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벌써 희야가 자랑스러웠다. 선생님들의 말에 기대를 걸며 희야와 적응하는 게 그다지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낙관한다. 사실 지금의 희야를 보면 뭐가 어려울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 기대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을 때 선유는 자신을 포함해 사람들이 얼마나 입양에 대해 무지한가 한탄했다.

  선유는 곧 유치원을 졸업할 희야가 나중에 그리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실 구석구석 사진을 찍는다. 창가에 놓인 선인장과 제라늄 화분들, 아이들의 작품들, 작은 책상과 의자들, 선생님의 탁자, 책장에 꽂힌 책들, 그리고 아이들과 놀고 있는 희야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희야는 유치원 졸업식 때 부를 노래를 자주 흥얼거렸다. “아침마다 모여서 재미있게 지내던 사랑하는 유치원을 떠나가게 되었네...” 왜 그 노래를 그리 일찍 배운 것일까. 구슬픈 노래 가사와 멜로디와 어울리지 않는 톤으로 희야가 천진난만하게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선유는 울적한 감상에 젖어 들곤 했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희야가 거쳐야 하는 이별이라는 통과의례를 떠올릴 때마다 선유의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앉는다. 희야의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짐이다. 그럴수록 선유는 희야의 슬픔을 씻어내고도 남음이 있게 애정의 물세례를 퍼부어줄 결심을 굳힌다. 이런 자신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때 얼마나 큰 쓰라림과 좌절을 가져올지 선유는 예측하지 못한다. 단단히 각오하라고 경계해주는 이도 없다. 인간의 결심이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가. 야생식물로 빽빽한 거대한 밀림을 헤쳐 나가기엔 잘해보겠다는 결심이란 빈약한 장비에 불과한 것이다.

  잠시 후 아이들은 놀이터로 나가 놀기 시작한다. 선유도 놀이터에 나가 희야가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아이들과 잘 어울리던 희야가 갑자기 시무룩해진다. 아이들은 모래 장난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희야만 혼자 뚝 떨어져 있다. ‘또 무슨 일이야?’ 희야의 변하는 기분과 행동에 쉬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새 양말을 벗어 맨발이고 실내화도 구겨 신고 다닌다. 새까매진 발을 보고 있자니 선유는 속이 상한다. “희야야, 양말 신고 신발도 제대로 신어야지.” 희야는 들은 척도 않고 급기야 놀이터 구석에 설치된 둥그런 통 안으로 들어가 나오지를 않는다. 선유는 조심스레 통으로 접근해 안을 들여다본다. 희야는 몸을 둥그렇게 만 채 통 안에서 꿈쩍하지 않는다. “희야야, 왜 그래? 이리 나와서 함께 놀자.” 희야는 대답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는다. 다시 뒷걸음질을 치는 듯, 선유를 거부하는 듯한 몸짓에 선유는 착잡해진다. ‘내 말에 기분이 상했나?’ 희야의 행동은 햇볕이 쨍쨍하다 먹구름으로 뒤덮이는 하늘처럼 종잡을 수 없다. 조금 전 맘껏 끼를 발산하던 희야와 이토록 축 처져있는 희야, 어느 희야가 진짜일까. 선유는 이럴 때마다 희야가 가엾다. 희야가 가엾게 느껴지는 한, 선유는 얼마든지 희야를 기다리고 품어줄 자신이 있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꼬질꼬질한 발이 선유의 속을 상하게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이런 희야의 모습은 다시 볼 날이 없을 것이다. ‘기다려, 엄마가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해 줄게. 네가 혼자 통 속에 틀어박혀 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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