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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Jul 30. 2024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15장

  선유는 매주 희야를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이제부터 매주 금요일에 희야를 집으로 데려와 일요일까지 이박삼일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희야는 더 이상 호진과 선유 앞에서 조심스러워하지 않는다. “이제 엄마, 아빠가 어렵지 않아?”라는 물음에 긍정적인 답이 돌아온다. 희야는 까도 까도 양파같이 새로운 매력을 가졌다. 선유는 희야와 사랑에 빠져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제 9월. 선유의 마음은 결정되었고 호진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 희야에게 “올해 말에는 함께 살게 될 거야.”라고 자주 말해준다. 희야의 마음이 준비되어 가는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호진은 출근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구운 토스트에 치즈를 얹어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선유는 늘 그렇듯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호진이 토스트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호진의 머릿속에 성경 구절 하나가 떠오른다. “마리야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이런 일은 종종 호진에게 일어나곤 했다. 아무 생각이 없는데 갑자기 툭 하고 성경 구절이 의식에서 튀어 올랐다. 그런 현상을 호진은 성령이 말씀을 주시는 것으로 이해했다. 호진은 거실 책장에서 성경을 뽑아 들어 펴 본다. 마태복음 1장 20절이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호진에게는 이 구절의 중간 부분이 “호진아 네 딸 희야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라고 들린다. ‘주님이 희야를 데려오라고 하시는 구나. 우리 딸이라고 하시는 구나.’ 호진은 이제 확신한다. 지금까지 과연 희야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희야를 입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분명하지 않아 말씀을 주시기를 기도해왔다. 단순한 성격의 호진은 한번 말씀을 받았다고 믿으면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그날 저녁 호진의 말을 들은 선유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이제 됐다. 서류 준비해야지.”

  선유의 전화를 받은 임 소장의 목소리에서 반가움이 묻어난다. 계속 신생아 입양을 권유했지만 이 가정에 희야가 가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제대로 잘 도와야 한다.

“서류 준비할 게 꽤 많아요. 우선 입양 에세이부터 쓰세요.”

“입양 에세이가 뭐예요?”

“입양을 왜 하려고 하는지, 아이를 어떻게 키울 건지, 그동안 진행해 온 절차가 어땠는지 쓰는 거예요. 희야와 만나면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적으면 도움이 될 거예요. 사진 찍은 게 있으면 첨부하세요.”

“알겠습니다.”

  선유는 꼬박 일주일 넘게 입양 에세이에 매달린다. 4월부터 8월까지 다섯 달 동안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에세이를 써 가면서 희야를 입양하는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어쩌면 희야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으리라는 믿음이 솟아난다. 희야는 2007년생이다. 선유가 우울증에서 벗어난 것이 2006년이었다. 희야가 태어난 해 선유가 입양을 결정했더라면 한 살 된 희야를 만날 수도 있었을까. 주저하고 망설이고 시댁의 눈치를 보느라 아기 때부터 희야를 키울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닐까. 생후 이틀 만에 생모에게서 분리되어 무려 칠 년 동안 부모 없이, 가정 없이 자라야 했던 희야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다. ‘우리에게 올 아이였는데, 우리가 너무 늦었어...’ 그 시간을 메꾸는 게 가능할까. 선유는 어서 가정의 울타리 안에 희야를 들여놓고 싶어 마음이 조급해진다. 입양이 법적으로 현실이 되는 순간부터 희야와 선유 부부에게 행복이 시작되리라는 데 아무 의심이 없다. 그동안 희야가 받지 못했던 사랑까지 몰아서 퍼부어주리라 자신한다. 선유는 입양 후 일어날 일에 대해 소경이나 다름없다. 누구도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고, 설혹 주더라도 에머랄드 빛 환상의 연못에 빠져 둥둥 떠다니는 선유의 귀에 들릴 리 없다.

  입양 에세이를 마치고 나머지 서류들을 준비해 법원에 제출한다. 이제 법원 판결만 남았다. 임 소장은 최소한 몇 달이 걸릴 거라고 말한다. 선유는 희야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법원 허가가 날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모든 게 순조로울 거라고. 그러던 어느 날 임 소장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희야 엄마, 문제가 생겼어요.” 이제 임 소장은 선유를 희야 엄마라고 부른다. 선유는 ‘또 무슨 일이야?’ 싶어 가슴이 콩닥거린다.

“무슨 일이요?”

“지난번에 했던 심리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선유와 호진은 일찌감치 입양 교육을 받았다. 교육이라고 해봐야 먼저 입양한 엄마가 신생아에게 필요한 물품은 무엇이고 어떻게 아기를 돌봐야 하는지 나눈 게 전부였다. 입양에 대해 아무 지식이 없는 상담사가 소월의 시 한 편을 읽어주고 감상을 나누게 한 것은 도대체 왜 필요한지 선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마 오후에 수백 문항짜리 심리검사를 한 것만은 실제로 필요한 절차라고 수긍할 수 있었다. 선유는 그 검사가 문제가 되리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희야 아빠는 괜찮은데 희야 엄마가 히스테리와 우울 지수가 높게 나왔어요. 이 상태라면 입양이 곤란해요.”

“히스테리와 우울 지수가 높게 나왔다고요?”

선유는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데. 시간이 지나서야 선유는 아직 다 마치지 못한 러시아어 교과서 집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팀 내에서 의견이 맞지 않거나 검토진이 잔뜩 수정 사항을 촉박하게 보내오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선유는 일시적으로 분통을 터뜨리곤 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어떻게 검사 결과 하나 가지고 입양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일단 상담소를 연결해 줄 테니 심리상담을 받아보세요. 상담사분이 소견서를 써 주면 법원에 함께 제출할 거예요. 소견서 내용이 중요하니까 성실하게 상담을 받으셔야 해요.”

“네, 그렇게 할게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구나. 선유는 안도한다. 상담받는 것은 일도 아니다. 어렵사리 희야의 입양을 결정했는데 못할 일이 없다. ‘심리검사 결과 때문에 입양을 못 할 수도 있다니 말도 안 돼.’ 선유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는다. 이것이 아마 마지막 난관일 것이다.

  바로 심리상담이 시작된다. 도심에 있는 오피스텔 건물 4층에 있는 사무실 두 개가 상담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십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상담사는 낮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앉아 오른손으로 둥글고 작은 공을 굴리고 있다.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상담사는 자신이 정신분석을 공부했으며 선유를 정신분석적 기법으로 상담할 것이라고 말한다. 선유는 정신분석을 받아본 적이 없다. 호기심과 기대감이 선유를 울렁이게 한다. 공을 손으로 굴리는 것이 상담사가 정신분석을 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지금 무엇이 제일 힘드세요?”

“음...”

선유의 눈에 안개가 낀다. 목에서 울컥하는 뜨거운 덩어리가 얼굴 전체로 퍼져나간다. “저희 부부가 지금 입양하려는 아이가 있는데요. 지난 4월부터 꾸준히 만나왔고 최근에 입양을 완전히 결정했어요. 그런데 심리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서 입양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해서 상담을 받게 된 건데요...정말 입양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나...” 말을 하는 도중 터진 눈물이 선유의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지금 흘리시는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음...만약 저희가 아이를 입양하지 못한다면 결국 아이는 가족을 만들지 못하게 되겠죠. 그런 생각을 하니 너무 슬퍼요.”

선유는 딸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자신의 상실감과 슬픔은 자각하지 못한다. 그저 희야가 가엾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 순간 희야는 행복한 동화의 나라에서 옮겨져 비극적인 소설의 주인공이 된다.

“이렇게 마음이 간절하신데 잘되지 않겠어요?”

“그럴까요?”

희망을 주려는 상담사의 말이 선유의 슬픔을 누그러뜨린다. 상담사는 희야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선유는 어느새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은 이야기, 우울증으로 아이 갖는 것을 포기하고 입양을 꿈꾸게 된 이야기, 희야를 만나고 나서 겪었던 다양한 감정의 파고에 대해 긴 대사를 읊듯 독백하고 있다. 상담사는 약간 고개를 숙여 테이블을 응시하고 오른손으로 연신 공을 굴리며 선유의 짧은 인생사를 듣는다. 입양하려는 여성을 내담자로 맞이해 보는 것은 그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다. 상담사는 선유의 진심을 읽는다. 선유가 아이를 입양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몇 번의 상담을 더 받으며 선유의 마음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몇 회기 후 상담은 희야에 대한 주제에서 점차 선유 자신의 불안을 탐색하는 쪽으로 선회한다. 상담사는 정신분석가답게 자주 선유가 꾸는 꿈에 대해 질문한다. 선유는 이참에 자신의 깊은 불안의 원인을 찾아내고 이 문제를 다루고 싶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담은 공회전을 계속하는 자동차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만 뱅글뱅글 돈다. 상담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임 소장의 전화가 걸려 온다.

“희야 엄마. 이제 법원에 서류 제출하려고 해요. 상담사분이 소견서를 잘 써 주셨어요. 이 정도면 괜찮겠어요.”

“그래요? 그럼, 이제 얼마나 기다려야 해요?”

“한 두세 달은 걸릴 거예요.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어요.”

“네, 감사해요.”

일단 법원에 서류를 제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선유는 안심이 된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으니 법원에서 입양 허가가 나오지 않을 리는 없다. 선유는 이 모든 과정이 희야와 가족으로 맺어지기 위해 꼭 필요한 통과의례라고 믿는다. 더 이상의 장애물은 없을 것이다. 선유는 희야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는 그림을 그린다. 그날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희야를 처음 만난 건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던 봄이었는데 벌써 초가을이다. 호진은 금요일마다 희야를 데리고 보육원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온다. 희야는 이제 매주 호진의 집에 가는 데 익숙해졌다. 호진은 곧 함께 살게 될 희야와 더 친해지기 위해 집에서 희야와 보드게임을 한다. 희야는 승부 근성이 강하다. 지기라도 하면 이길 때까지 다시 하자고 해 주말 저녁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일요일에 기차를 타기 전 역 구내에 있는 국수 가게에서 가락국수를 사 먹곤 한다. 희야는 가락국수가 맛있는지 한 그릇을 다 먹고 국물까지 싹 비운다. 국수를 다 먹고 나면 희야는 그릇을 들고 식기 반납대에 직접 가져다 놓는다. 그런 독립적인 희야의 모습이 호진은 맘에 든다. 어리광을 부리지도 않고 떼를 쓰지도 않는 희야가 편하다. 거제도에 갔을 때 호진을 함부로 대했던 태도는 쏙 들어가 버리고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 일요일 저녁에 교회 회의에 참석한 호진을 대신해 선유가 희야를 보육원에 데려다준다. 선유는 희야와 둘이 기차를 타게 되어 설렌다. 다섯 량을 연결한 무궁화호 기차는 느릿느릿 달린다. 한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면서 희야는 최근 보육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댄다.

“엄마, 탄이 알아?”

“탄이? 탄이가 누군데?”

“까만 개야. 이만큼 커.”

희야는 자기 어깨보다 넓게 두 팔을 벌려 탄이가 얼마나 큰 개인지 표현한다.

“근데?”

“탄이는 되게 무서워. 저번에 내 손을 물었어.”

희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탄이가 얼마나 사나운 개인지 표정으로 보여준다. 그 표정이 어찌나 진지하고 귀여운지 선유는 절로 웃음이 난다.

“그래? 손을 물었으면 정말 무서웠겠다. 엄마도 큰 개는 무서워.”

보육원에서는 개를 몇 마리 키웠지만, 선유는 개들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어 탄이가 어떤 개인지 알 수가 없다.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사방이 어둠에 감싸여 있다. 낮이 짧아진 탓이다. 선유는 희야의 손을 잡고 추수를 끝낸 논길을 걸어 보육원 정문을 지난다. ‘아, 날이 이렇게 빨리 어두워질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올 걸.’ 선유는 돌아갈 길이 걱정이다. 호진과 이 길을 걸었을 때야 괜찮겠지만, 작은 체구의 자신과 걷고 있는 희야가 불안해할까 봐 염려스럽다. 정문에서 희야가 지내는 건물까지 희미한 불빛 하나만 비추고 있다. 모두 건물 안에 있는지 밖에는 인기척이 전혀 없다. 선유는 희야의 손을 잡은 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희야가 지내는 방까지 이십 보 정도 남았을까. 작은 마당만 가로지르면 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시커먼 물체가 나타난다. 눈을 번득이며 컹컹 짖기 시작한다. “엄마, 나 무서워!” 눈 깜짝할 사이에 희야가 선유의 다리에 매달린다. 희야의 얼굴이 공포로 질려 있다.

“왜 그래, 희야야?”

“엄마, 쟤 탄이야, 탄이! 나 무서워.”

어두워서 처음에 잘 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시커멓고 큰 개가 두 사람 가까이에서 위협하고 짖고 있었다. 순간 선유의 머리칼이 쭈뼛하고 선다. 탄이라는 말에 선유도 바짝 긴장된다. 희야는 급기야 울기 시작한다.

“엉엉. 엄마.”

“괜찮아. 괜찮아, 희야야.”

선유는 다리에 매달린 희야를 두 팔에 안는다. 고개를 품에 파묻고 울고 있는 희야를 안고 선유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탄이는 물러설 줄을 모르고 자리에서 빙빙 돌며 두 사람을 위협한다. 선유도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어떡하지? 아, 남편이 왔어야 하는데...’ 날이 짧아진 것도 모르고 희야를 데리고 나선 게 후회막급이다.

  “여보세요! 도와주세요!” 선유는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한다. 방 안에서 선생님이 소리를 듣고 달려 나와주면 좋겠는데. 이렇게 가까운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까. 선유는 곧 달려들 기세인 탄이에게서 보호하려고 희야를 더 굳게 끌어안는다. 선유도 물릴까 봐 겁이 난다. 일촉즉발. 갑자기 탄이가 달려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선유는 간담이 서늘해져서 더 크게 소리 지른다. 이삼 분이 흘렀을까. 마당 쪽을 향해 있는 방문이 열리더니 아이들의 고개가 불쑥 나타난다.

“희야야!”
 아이들이 소리치며 달려 나온다. 곧 선생님도 따라 나온다. ‘휴, 이제 살았다!’ 선유는 팔에 힘이 풀리며 희야를 땅바닥에 내려놓는다. 평소 같았으면 체구는 작아도 제법 몸무게가 나가는 희야를 안을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로소 팔이 얼얼하며 통증이 퍼져나간다. “탄이 저리 가!” 선생님이 팔을 휘저으며 탄이에게 다가가자 탄이는 언제 짖었냐는 듯 꼬리를 내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선유는 부리나케 희야를 데리고 방으로 뛰어든다.

  “이제 괜찮아, 희야야.” 방에 들어오고 나서야 희야는 진정되어 울음을 그친다. “많이 놀랐지? 엄마도 놀랐어.” 선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희야를 안아 준다. 탄이를 보자마자 “엄마!” 하며 매달렸던 그 아찔했던 순간. 희야가 자신에게 보호를 청하고 의지했다는 사실이 먹먹하기만 하다. “아, 죄송해요. 평소에는 묶어놓는데 오늘 어쩌다 풀려버렸지?” 선생님은 미안해하며 희야의 등을 다독거린다. 아이들은 “희야야, 탄이가 무서웠어?” 하며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희야도 긴장을 풀고 웃음을 되찾는다. 조금 전의 두려웠던 상황이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나버린다. 어두운 밤길을 돌아오면서 선유는 겁에 질려 자신에게 매달리던 희야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나도 겁에 질렸던 걸 희야는 눈치챘을까?’ 선유에게 세상은 무섭고 위험한 곳이다. 그런 세상에서 희야가 자기 힘만 의지하고 살 뻔했다니. 선유는 자신에게 내재한 약자에 대한 보호 본능이 일깨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희야를 이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보호해줄 수 있다는 게 새삼스레 벅차다.

  어서 그날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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